노동의 시간
볼로냐 도서전이 끝났다. 시차 혼란을 겨우 지나고 주말이 왔다. 아랫배의 싸늘함과 벚꽃과 눈꽃, 투명한 햇빛을 한번에 만끽한 격렬한 하루가 지났다.
2018년 첫번째 미팅이 성공적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나흘 동안 이어진 볼로냐국제어린이도서전은 어린이출판물 저작권 거래에 있어서는 가장 큰 규모의 도서전이다.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도 기회의 땅이라 이제는 국내 일러스트레이터들도 개개인들이 참여해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들고 작은 지도 위를 뛰어다닌다.
세계의 내로라할 만한 출판사부터 독립 출판사 들까지 이곳에 약 여섯 관에 걸쳐 모여 있다. 에이전트이기에, 여섯 관에 걸쳐 있는 출판사들을 동분서주 다녀야 하는 것이 운명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같은 홀에 있는 출판사들과 비슷한 시간대로 미팅을 묶는 것이 체력 유지에 관건이다. 하지만 모두가 모두를 만나러 오는 이곳에서 쉽지 않다.
올해 볼로냐는 수출을 위한 미팅이 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래서 다른 때보다 책 소개에 있어 준비할 것이 많았다. 다행히도 우리가 대리하는 한 출판사의 테이블을 공유할 수 있게 된 데다 견본 도서도 따로 챙겨가지 않을 수 있어서 온전히 책 소개를 준비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제대로 길을 가고 있나 의심이 들 때면 떠올리는 말이 있다. 만약 이것이 당신의 길이면 길이 알아서 열릴 것이고 당신의 길이 아니라면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길이 열리고 있다는 느낌이 있다. 가만히 있어도 복이 뚝뚝 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니 무대가 열리는 그런 느낌.
책에 관심을 끌고 그것을 읽게 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정말 좋은 책이라도, 정말 매력적인 책이라도 눈길 한번 받지 못할 때가 많다. 예전에는 그럴 때마다 좌절하거 자책했다. 어떻게 해야 이걸 보게 할까. 내 방식을 탓했다. 경험이 쌓일수록 그것은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중요한 건 이 책을 좋아할 편집자/출판인을 꾸준히 찾는 일이다. 여기에서 퇴짜 맞았지만 저기에서는 죽고 못 살 수 있는 것이다. 죽고 못 사는 곳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에이전트는 부지런해야 한다. 그리고 질리지 않아야 한다. 출판사들은 의외로 성향, 취향, 일관성이 없다. 취향보다 좋은 책이 먼저고 자신이 믿는 책보다는 잘 될만 한 책을 고른다. 에이전트로서 나는, 그런 겁 많은 출판인들에게 자신의 안목을 믿어도 된다는, 그 안목이 아주 특별하다고 북돋워주는 지지자가 되어주고 싶다. 세상에는 다양한 취향이 있고 모든 취향에는 향기가 있다. 우리는 모두 멋진 출판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