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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 에이전트 Dec 04. 2018

영양제

노동의 시간

퍽이나 난감했다. 평균 7일, 최대 10일이 걸린다는 우체국 직원의 말만 믿고 EMS를 14일 전에 멕시코로 보냈는데, 3주가 다 되도록 도착하지 않았다. 멕시코가 우편 배송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지나쳤다.

도서전 시작 전 일요일. 우리는 엑스포 과달라하라에 도착해 부스를 확인했다. 더할 나위 없는 자리 배정에 환호했다. 바로 앞에 전자책 강연 무대가 마련되어 오가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재고 창고로 갔다. 비록 우편 추적에는 아직도 상공 위를 날고 있었지만 트래킹 업데이트야 늦어질 수 있는 거니까.

회사 이름을 대고 우편물 확인을 요청했다. 이번에는 우편 추적 기록이 맞았다. 우리 우편물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도서전이 내일인데 초조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라고 미팅은 어찌어찌 하겠지만, 부스에 노출되어 더 많은 관계자 눈에 띌 기회가 사라진다는 생각에 열이 풀풀 올랐다.

전문가 기간은 단 3일뿐이었다. 과달라하라 국제 도서전은 총 9일 열리지만, 하나의 라틴 아메리카 축제로 취급되는 본 도서전은 이 3일을 제외하면 저작권 만남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 전까지도 우편 추적이 되지 않는 현실은 우리를 무기력 상태로 끌어내렸다.

그래서 그런지 도서전은 여러모로 작년보다 소극적으로 느껴졌다. 우리 부스는 국제관에 자리해서 라틴 아메리카 출판사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이 함께 있었다. 영국과 미국, 중국 등이 눈에 띄었고, 한국 부스로는 우리를 포함 두 곳이 참가했다. 우리는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참가인데, 솔직히 말해 우리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도서전 초반부터 국제관 부스들은 한산했다. 규모만 클 뿐인지 우리 서울 국제 도서전과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작년에 에이전트로서 저작권 테이블을 신청해 참가하면서 너무나 적극적이고 활발했던 분위기에 빠져 다음 번에는 부스로 참가해보자 하고 올해 실행한 참이었는데, 판단 착오였던 듯했다. 안 그래도 이곳에 오기 전 작년에 만났던 다수의 출판사들이 올해에는 과달라하라 도서전에 참가하지 않아 의아했는데, 그들 하나하나의 빈자리가 모여 큰 구멍을 만들어냈다.

라틴 아메리카 출판 시장에 큰 잠재력이 있다는 것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주 많은 시간을 공들이고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도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비록 아쉬운 도서전이었지만, 절대적으로 아쉬운 도서전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멕시코 일러스트레이터들과의 인연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들과의 만남은 우리 에이전시에 예기치 않은 힘과 방향성을 실어줄 것이다.

종합적으로 말해, 과달라하라 국제 도서전은 길고 고단하고 쓴 시간을 쥐어준 올해 마지막 도서전이었다. 하지만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이 있듯이, 이 시간이 우리에게 돌려줄 열매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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