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일을 하면서도 계속 다른 일들이 떠오른다. 이걸 해야 하는데, 저걸 해야 하는데, 할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주르르 흘러나오며 시간을 걷어찬다. 저 혼자 마감에 쫓긴다. 차라리 마감이라도 있다면 마감 후 숨이라도 틀 텐데, 없는 마감에 시달리니 괴로움만 마감 없이 지속된다.
시간은 엿가락처럼 손 위에서 성형되길 기다리고 나는 그 자유스러움에 꼼짝없이 갇힌다. 시간은 간단히 굳어버린다. 매 시간 강박 위에 벗겨져 꿈틀댄다. 모래성을 짓듯 하루가 끝나면 손 안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손은 점점 거칠어가는데 내 모래성은 날마다 쓸려간다.
강박.
여기에서 벗어나보려 수시로 마음을 쓸어내리지만 돌아서면 쫓기고 있고 돌아서면 쫓기고 있다. 목적 없는 삶이 이 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하여 많은 목적들을 내려놓았는데, 인생은 지리한 욕심을 계속 불어 넣는다.
아무것도 지을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
어쩌면 모래성을 짓는 게 아니라 그 행위 자체가 목적일 수도 있는 거라고. 그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 행복도 배움도 뭐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그게 인생의 굴레일 거라고. 단단히 뭉치지 않는 모래성이 과연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그저 시간을 소진하는 일이, 별 볼일 없는 모래성이, 나약한 일생이 무슨 대의를 품을 수 있을까.
왜 나에게는 사라질 것만이 쥐어지는가. 손에 쥘 수 없는 태양, 수시로 변하는 바다, 타협이란 없는 모래.
나는, 태양도 모르고 바다도 모르고 모래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