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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 에이전트 May 16. 2018

MUTE

코그니타리아트

보이지 않는 것을 타인의 상상력에 기대서라도 볼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예술가의 표현은 가끔 너무 먼저 가 있거나 아예 다른 눈을 가지고 있어서 공감하기가 어렵지만, 그림책이라면 나를 보이지 않는 세계로 가뿐히 초대한다.

요즘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4년 전, 좁은 그 시장에 책을 꾸려보려고 노력했었는데 그때는 못 했다. 모두 아이디어들로만 떠다닐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판이 달라졌다. 한두 권이지만, 꾸준히 다양한 출판사에서 빛을 보고 있다. 아직은, 완전히 어른들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에도, 그렇다고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으로 보기에도 모호하지만, 그 애매한 호화 속에서 간지럼증을 해소한다.

글 없는 그림책 MUTE는 말(소리)을 형상화했다.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 온갖 소음을 깨끗이 쓸어담은 후 평화로운 적막 속에서 온전한 휴식을 취해보는 상상이 이 책의 스토리다. 쉼없이 달그락거리는 키보드 소리와 스피커에서 쏟아져나오는 음악 소리, 숨소리, 발소리, 경적소리, 거리에서 들어오는 말 소리… 만약 형체 있는 소리들이 세상으로 쏟아진다면, 터진 수도관처럼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잠겨버릴 것이다.

매일매일 오늘 하루의 소음을 모아서 버릴 수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소음을 배출하고 사는지 짐작이나마 할 텐데, 그렇다면 어느 정도 줄여볼 생각이라도 해볼 텐데, 소음은 형체 없이 나타나 정신을 질식시키고는 사라진다. 들리지만 보이지 않아 속만 태우는 얄미운 모기처럼.

소음에 몸이 지칠 때가 있다. TV도 끄고 음악도 끄고, 오로지 바람 소리만 들락날락 거리는 주말 오후가 좋다. 저 멀리서 몇몇 마디의 소리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반복적인 안내 멘트가 커다란 적막에 눌리는 평일의 동물원이 좋다. 귀가 먹을 것 같은 고요함이 그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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