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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든기억 깨우기 Sep 10. 2020

오늘은 가지튀김을 한다

오늘은 가지튀김을 한다. 진보라의 짙은 색감과 불룩하게 나온 배 모양새가 탐스러워 없던 식욕도 돋게 한다. 태풍이 한차례 지나가던 터라 채소가격이 몇 배는 껑충 뛰었다. 초여름 지천으로 자라던 상추도 예쁘게 투명한 유기농 무늬 비닐 옷을 입으니 4천 원이 훌쩍 넘어버렸다. 비싸져야 맛있어 보이고 냉장고 속의 과일도 마지막에 남은 게 제일 달고 맛있는 법이다. 가지를 잘 드는 칼로 쓱쓱 어슷썰기를 해준다. 동그란 동전 모양의 썰기는 보기에도 밋밋하고 심심하다. 타원형 모양으로 길게 내민 혀 모양으로 썰어야 예쁘다. 잘 썰어진 가지에 밀가루 솔솔 뿌려 풀어놓은 계란 물이 잘 묻게 덮어준다. 밀가루를 많이 뿌려도 맛없고 덜 묻혀도 심심하다. 노한 계란 물에 코팅 후 프라이팬에 닿는 순간 칙 하고 노릇노릇 구워진다.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던데 아삭아삭한 채소에 고소한 기름칠이 더해지니 오죽 맛이 날까. 고소한 가지튀김에 화룡정점을 찍는건 양념간장이다. 조선간장 과 샘표간장을 적당히 섞어 고춧가루도 한 수저 넣어주고 파, 마늘 양념하고 땡초 송송썰어 풀어주면 단출한 저녁 막걸리 안주로 최고다. 아삭하고 익숙한 호박전과는 생소하지만 바쁜 저녁 제법 풍성한 술안주나 밥반찬으로는 가지튀김이 최고다.

요즘 나오는 가지도 예전에 내가 보던 가지는 아닌 거 같다. 할머니와 텃밭을 지나다 “할머니 잠깐만“ 하고 밭으로 내려가 약간 거친 이파리 사이로 땅끝에 질질 끌려 흙이 적당히 묻은 가지는 아니다. 가지 하나 끊어 옷에 쓱쓱 문질러 입에 한입 물면 단단한 모양새와 다르게 속이 푹신푹신하고 향긋한 향내가 나는 게 맹숭맹숭한 입에 잠시나마 주전부리를 잊게 하는 맛이다.

지금도 먹을까 있을까 싶지만 쉽지 않겠지!

슴슴하고 담백한 가지를 누가 지금 먹을까?

가지 하나를 다 먹을라치면 할머니는 

“너무 많아먹지 말아라 많이 먹으면 입병 난다”. 

늘 가지를 따 먹으면 할머니는 밭까지 나와 먹지 말라고 늘 나무라셨다.

가지는 아이들도 그렇고 어려서 먹던 나도 한동안 많이 못 먹어본 채소가 돼 버렸다.

요즘 가지로 만들어 먹던 음식은 다양하다. 가지찜, 가지튀김, 가지 탕수 등 수만 가지는 아니더라도 가지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다양해졌다. 내가 가지요리 중에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말린 가지로 볶은 가지나물 볶음이다. 좋아하는만큼 손도 많이 가는 음식이다. 일단 가지를 말려야 한다. 하루 이틀에 끝나는 일도 아니다. 가지를 길게 잘라 햇빛 좋은 볕에 여러 날을 말려야 한다. 바짝 말리지 못하면 상해 버리기도 쉽다. 어머니는 늘 여름철이면 옥상 한편에 가지를 잘라 말려 놓으셨다. 아들이 가지나물을 좋아해서 일수도 있고 습관적으로 가을이 오면 고추며 가지도 말려야 하고 실타래처럼 꼬불꼬불 늘어선 호박꼬지도 널어 놓으셨다. 집 옥상에 여름이 지나갈 무렵 산산이 바람이 불 때면 희끄무레한 시멘트 바닥이 빨강, 보라, 초록으로 덮을정도로 많이 말리셨다. 

 잘 말린 가지를 물에 불려 기름 적당히 둘러 파, 마늘 양념하고 조선간장 한 수저 얹으면 쫄깃하고 고소한 맛깔스러운 나물이 탄생한다. 날 좋은 햇볕에 말려 영양분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식이섬유와 무기질 정도가 있겠지. 참기름이 들어가니 지방도 들어 있을 테고 적당량의 나트륨과 향신료, 그리고 뜨끈한 밥 위에 오른 탄수화물의 조화는 허기진 한 끼를 채우기에 든든했다. 

가지나물의 백미는 싱싱한 가지를 바로 밭에서 따와 무쳐 먹는 가지나물이다. 밭에서 바로 따온 가지 몇 개를 시원한 우물물에 씻어 가마솥 밥 위에 무심한 듯 몇 개 던져 놓는다. 가마솥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면 할머닌 그제야 무거운 가마솥 뚜껑을 여신다, 높디높은 부엌이 순식간에 밥 안개로 가득해 할머니의 모습도 사라져 버린다. 젓가락으로 보라색이 사라지고 가무잡잡해진 무른가지를 쇠젓가락으로 쭉쭉 찢어 주둥이 큰 양푼에 담아 두신다. 바가지에 조선간장 한 수저, 숭덩숭덩 썬 파와 다진 마늘 한 수저 올려놓고 깨소금 한 꼬집 넣으시고 고춧가루 한 수저 얹어 수저로 휘휘 저어 파란 줄무늬 백자 접시에 넣으면 오늘 저녁 가지무침은 완성된다.

겉은 질깃하고 속은 부드럽다. 수저에 밥 한 수저 올려놓고 손으로 가지나물 하나 집어 밥 위에 둘둘 말아 입속으로 넣어주면 뜨끈한 밥 사이로 시원한 가지무침이 꿀떡 넘어간다. 가지의 맛보다는 양념의 맛이다. 고소한 참기름과 짭조름한 조선간장, 그리고 매콤한 고춧가루까지 한여름 밍밍한 입맛에 최고다. 할머니가 해주시던 가지요리의 두 번째는 가지 냉국이다. 커다란 양푼에 쪄낸 가지 쭉쭉 찢어 양푼에 넣고 나물이랑 똑같이 조선간장 넣고 파, 마늘 넣고 고춧가루 넣고 조물조물 버무리신다. 가지나물과 다르게 가지냉국에는 조선간장 몇 수저와 오이가 들어간다. 다 무쳐진 가지나물은 짜다 못해 양념 맛이 하나도 안 난다. 여기에 바로 우물물을 한바가지 넣어주고 스텐사발에 내어주면 가지 냉국이 완성된다.

할머니의 모든 요리는 거무튀튀하고 날이 선 무쇠 칼과 가운데가 푹 파인 도마, 젓가락, 수저 하나면 완성되었다. 그릇도 철사로 한 귀퉁이 얼기설기 때운 바가지 하나, 양푼 두어개,파란색 줄무늬가 두 줄 그려진 접시와 국그릇 몇 개가 할머니의 살림이었다. 그릇이 뭐 중요할까? 모든 재료가 들어가면 구수하고 질펀하고 잘 익혀 나오는 커다란 가마솥이 두 개나 떡하니 부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으니 말이다.

가지 냉국엔 찬밥이 제격이다. 더운밥을 말면 냉국이 데워져 가지냉국의 맛이 덜해진다. 밥도 찰기가 남아있어 국물도 탁해진다. 시원한 냉국에 밥알이 잘 풀리는 찬밥을 넣고 수저로 휘휘저어 입으로 훌훌 털어 넣어야 가지냉국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가지나물도 그렇고 가지냉국도 그렇고 만드는 방법과 양념은 다 똑같다. 심심하게 무치면 나물이고 짭조름하고 무쳐 물 부으면 냉국이 되는 것이다. 쉼지만 금방 잊혀 지지도 않는 맛이다. 할머니의 정성과 어머니의 사랑이 버무려져서 오래 기억되는 것이다. 음식은 본연의 맛에 충실할수록 오래 기억되고 질리지 않는 것이다. 복잡해지고 노련해지는 세상일수록 단순하고 단백한 게 그리워진다. 옛 노랫자락처럼 기타코드 하나로 질퍽하게 늘어지는 멜로디도 그립다. 이젠 할머니가 어두운 부엌에서 해주시던 가지나물과 냉국을 마냥 바라보던 시절로 속도를 늦추고 살고 싶을 때가 있다. 휴게소도 안보고 앞만 보고 달려오면 일출이 멋지고 풍경이 끝내주는 여행지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마음에 썩 드는 풍경은 없을 때가 더 많았다. 설사 끝내주는 풍경이라도 그 순간뿐인 것이다. 

우리의 인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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