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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든기억 깨우기 Jan 03. 2021

캠핑의 즐거움

요즘 나의 취미는 캠핑이다. 혼자 다닐 생각으로 캠핑용품을 샀지만 지금까지 혼자 다닌 적은 없다. 사실 캠핑은 오래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10여 년 전 캠핑이 한창 유행할 때 친구들이 너나 할 거 없이 캠핑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캠핑장 소개, 캠핑 요리라는 콘텐츠로 글을 쓰고 책을 발간한 친구들도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도 몇 번 따라가 본 적이 있다. 아기자기한 캠핑용품을 가지고 2명 내지 4식구가 단출히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하지만 시골 출신인 아내는 캠핑을 강력히 거부했다. 이유는 너무 좀스럽다는 것이다. 나는 이해가 된다. 처가에 가서 시골 사람들이 놀러 가는 것을 보면 감성 캠핑과는 거리가 먼 장비들이다. 커다란 LPG 통을 일단 트럭에 하나 싣고 가마솥도 두어 개 싣고 떠난다. 양파 한 자루 감자 한 자루 파 두어 단을 싣고 떠난다. 두부도 큰 모판 하나를 싣고 떠난다. 막걸리는 둥글둥글한 말통 하나를 차에 싣고 떠난다. 들어가는 재료는 동네에서 잡은 돼지고기를 크게 한 덩이를 가지고 간다. 강가에 둘러앉아 잡아 온 피라미를 솥에 잔뜩 넣고 된장 풀고 각종 채소를 넣어 고기와 함께 한소끔 끓여 한 그릇씩 나눠 먹는다. 굽는 고기도 스케일이 틀리다. 커다란 드럼통을 자른 통에 커다란 석판이나 철망을 넣고 돼지고기를 대여섯 근 이상 올려놓고 푸짐하게 구워 먹는다. 강물에 담가둔 막걸리는 시원하게 준비된 도시의 맥주보다 더 상쾌하고 풍미가 가득하다. 도시에서 떠나는 캠핑 요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시골 천렵은 그만의 매력이 가득하다. 어려서부터 그런 천렵하러 다녔으니 지금의 캠핑이 양에 안 차는 게 당연하다.

내가 캠핑을 좋아하는 이유는 몇 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내가 아는 친구와 식구들에게 대접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캠핑은 가면 솔직히 귀찮다. 특히 일박이일은 텐트 치고 잠깐 누웠다 다시 텐트 걷고 돌아오는 게 다인 거 같다. 종일 부산하게 움직여야 한다. 텐트 치고 잠자리도 깔아놔야 하고 테이블과 의자도 세팅해야 한다. 요즘은 감성 캠핑이 대세라 호롱불도 몇 개 세팅되어야 하고 장작불도 미리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나도 캠핑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름 조근조근 정리하는 게 내 성격에 맞는다. 친구들에게 난 이런 게 좋다고 하면 말도 안 된다고 하지만 나는 좋다. 그래서 나는 캠핑이 좋다. 같이 고기도 구워 먹고 술도 한잔하고 불도 피워 불멍도 한다. 졸졸 흐르는 계곡에 달빛 벗 삼아 얘기하다 보면 일상의 고단함도 사라진다. 친구와 식구들과 평소에 못 하던 얘기도 술술 나와 풀리고 서로 간의 관계도 돈독해진다. 언제까지 계속할지는 모르지만, 기부의 행복을 느낄 기회이다.

또 하나의 매력은 내가 해보고 싶은 요리를 만들어보는 재미가 있다. 요즘은 캠핑장에 가면 그리들이 유행이다. 커다란 쇠뚜껑같이 생긴 철판에 고기도 구워 먹고 찌개도 끓여 먹는다. 화롯대나 화력 좋은 버너를 밑에 두고 그리들을 올려놓으면 시골 잔칫날 솥뚜껑에 요리하는 모양새가 된다. 레트로의 감성이 유행인지 아니면 솥뚜껑의 맛이 살아나서인지 모르지만, 요즘은 한 텐트 건너 하나씩은 그리들 요리를 즐긴다. 하지만 나는 캠핑을 하러 가면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단출한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집에서도 요리를 즐기지만 캠핑을 하러 가면 예전에 할머니나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을 흉내 내는 걸 좋아한다. 코펠에 밥을 안쳐 가지를 올려놓고 잘 익은 가지를 젓가락으로 쭉쭉 갈라 진간장하고, 파 마늘 놓고 손으로 조물조물 무친 가지나물을 제일 좋아한다. 한여름엔 오이를 채를 썰고 미역을 삶아 얼음 동동 띄운 냉국을 잘 만들어 먹는다. 친구들과 같이 갈 때는 막걸리 몇 병과 김치전이나 파전을 부쳐 먹는다. 집에서 미리 빈대떡 소를 준비해 간다. 그러면 캠핑장 가서 밀가루만 물에 반죽하면 금방 먹을 수 있다. 한 번은 할머니가 구워주신 김이 먹고 싶어 김을 가지고 솔가지 하나 구해 굵은 소금 슬슬 뿌려 화롯불에 김도 한번 구워 먹어봤다. 시골스럽고 슴슴한 요리의 재미가 남다르다.

캠핑의 또 하나의 매력은 느긋함에 있다. 추운 겨울 전기장판 하나 가지고 바닥에 누우면 마치 시골집에 내려온 기분이 든다. 코는 시리고 텐트 안엔 찬바람이 돌지만, 이불속은 뜨끈해 시골집 구들장에 누운 느낌이 든다. 그곳에 등유 난로 위에서 익어지는 고구마와 밤 냄새는 시골 정취를 느끼기에 딱 맞다. 하룻밤 잘 자고 난 아침의 풍경은 덤이다. 아침햇살이 비치면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은은히 퍼지는 아침햇살을 즐긴다. 물을 끓여 아메리카노 한 잔 내려 따뜻한 이불속에서 느긋한 여유를 즐긴다. 따뜻한 우유 거품에 퍼지는 에스프레소 커피처럼 텐트 안의 햇빛은 부드럽고 달큰하다. 아직 뷰 맛집을 못 가봤다. 가보고 싶은 곳이 몇 군데 있다. 한 군데는 낙조가 아름다운 만리포 캠핑장이다. 붉으면서 차분히 가라앉는 서해의 석양을 보고 싶다. 해 질 녘 밀물 때면 동해안의 파도처럼 금빛 물결이 잔잔히 대지를 적시며 들이닥치기 시작한다. 점점 붉어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친구와 회 한 접시에 소주 한잔을 걸쳐보고 싶다. 또 한군데는 산세 좋은 동강 전망대 캠핑장을 가 보고 싶다. 이른 아침 산꼭대기에 내려다보는 출렁이는 운해를 바라보고 싶다. 운해에 갇혀 보이지 않고 내가 서 있는 곳이 천상의 세계로 느껴질 만큼 짙은 안개 속에 갇혀 아침을 맞이해 보고 싶다. 해발 700m에서 느껴지는 편한 숨을 맘껏 쉬어보고 싶다.

아직은 몇 번 다니지 않은 캠핑이다. 하지만 코로나가 진정되면 캠핑을 더 자주 다니고 싶다.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 속에 스스로 환승역 같은 삶의 휴식을 주고 싶어서이다. 환승은 좋을 때가 많다. 목적지를 빨리 가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또 이정표를 잘못 봐서 바른길로 가기 위해서도 좋다. 여행길에 몸이 불편하여 좀 쉬기 위해서도 환승은 필요하다, 나에게 캠핑은 환승역 같은 존재이다. 뜸을 잘 들여야 맛있는 밥이 된다. 앞만 보고 왔으니 잠시 뜸 들이는 시간을 가져보자. 캠핑이 되었던지 책을 읽는다든지 자신만의 환승역은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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