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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든기억 깨우기 Jan 22. 2021

먹는게 뭔지...

엄마는 음식솜씨가 좋다. 대한민국에서 우리 엄마는 음식 못한다고 말하는 자식은 드물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정말 음식을 잘 만드셨다. 지금도 엄마 솜씨가 좋다고 인정하는 것은 손수 재료를 준비하시고 정갈하게 만들어 주셨다. 처갓집 양념통닭이 전국적으로 유행할 땐 손수 닭을 사서 고추장과 케첩만으로도 그맛을 내주셨다. 롯데리아가 인기 있을 땐 제과점 빵을 사와 소시지와 계란으로도 충분히 맛난 햄버거를 만들어 주셨다. 어머니는 집에서 음식재료를 만드시냐고 늘 분주했다. 봄이면 나물을 캐다 말리기 시작했다. 냉이부터 취나물, 쑥 모든 산나물을 잘도 알아보고 뜯어오셨다. 떡 먹고 싶다고 하면 방앗간에 가서 쌀가루를 만들어 검은콩 몇 알 뿌리시곤 쑥개떡도 금방 만들어 주셨다. 여름이면 날이 선선해지는 추석 때까지 냉장고에는 늘 콩물이 빠지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서 경동시장에 가서 엄마만 아는 레세피의 한약재를 사다 아버지에게 아침마다 한 잔씩 드렸다. 찐득한 삼복더위가 지나가면 식구들은 비상이 걸린다. 어머니가 고추를 말리시기 때문이다. 4층이 넘는 옥상에 하루에도 열두 번씩 고추를 어깨에 짊어지고 날라야 한다. 갑자기 비가 올라치면 그 동작은 두 배로 빨라져야 한다. 더욱 더 황당한 건 소나기라도 내리면 안방이고 작은방이고 때 아닌 보일러를 돌려 집안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집안의 주인이 고추가 된다. 우리는 마루 쪽 끄트머리에 창문열고 담요 한 장 반으로 접어 자기 일쑤였다. 아버지가 얼큰하게 한잔하고 들어오시면

“해마다 이게 뭔 난리야” 하고 큰 소리를 내시면

“김장에 빨간색이 예쁜 김장김치 먹는 게 다 내 덕인 줄 알아요” 

하시면서 들은 척도 안 하셨다.

가을이면 산에 가서 도토리를 주워 오신다. 도토리를 몇 가마를 갈아 몇 날 며칠 커다란 고무 통에 물을 바꿔가며 기어이 도토리 가루를 만들어 내신다. 겨울이 돼도 엄마의 손은 멈추질 않는다. 쌀 튀밥으로 만든 강정은 물론이고 엿기름으로 땅콩과 깨를 넣은 엿도 만드신다. 명절이 되면 냉동실 가득 찹쌀떡을 만들어 놓으시고 항아리엔 흰떡이 한 가득 준비하셨다. 그 중에 엄마의 최고요리는 죽이다. 입맛이 없거나 별식이 먹고 싶을 땐 어머니는 늘 죽을 끓여 주셨다. 특히 난 엄마가 해주시는 콩죽과 녹두가 들어간 닭죽을 좋아했다. 깨끗하고 뽀얀 콩죽에 소금을 적당히 넣어 식힌 다음 먹으면 고소한 맛이 어지러울 정도로 맛있다. 여름에는 닭죽을 자주 해 주신다. 고기를 다 발려내고 당근과 양파를 잘게 썰어 녹두를 넣고 푹 끊인 닭죽은 비 오는 날 눅눅한 날 가슴까지 따뜻하게 해주는 마술을 부린다. 그런 죽을 지금은 자주 못 해 먹는다. 결혼하고 독립 한지도 수십 년이고 일부러 어머니의 죽을 먹고 싶어 달려갈 정도로 효자도 아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정말 먹고 싶으면 내가 직접 만들어 먹는다. 내가 생각해도 뚝딱뚝딱 잘 만들어 먹는다. 엄마를 많이 닮았다. 손으로 쌀을 여러 번 일어 정갈하게 씻어 놓고 콩을 삶아 곱게 간 다음 쌀과 함께 뭉근하게 끓여내면 아이들까지 한 그릇 싹 비우는 엄마표 콩죽을 만들어 낸다. 음식을 잘하는건 둘째치고 깨끗하 뒷정리도 잘한다. 음식을 만들면서 웬만한 설거지는 다 마무리해 조리가 끝난 싱크대는 깨끗하다. 어머니가 그러셨다. 직장 가까이 이사 오면서 몇 해 전부터 아내보다는 내가 더 일찍 퇴근한다. 아이들이 얼추 성장해 지금은 저녁을 해결하고 오는 경우도 많지만 한창 성장기의 아이들이 저녁을 안 먹으면 처마밑 제비 새끼처럼

“아빠 오늘 저녁 뭐야 ?”

“저녁을 왜 아빠한테 물어보냐”

하지만, 이미 손은 주방으로 가서 쌀을 씻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저녁 메뉴는 정갈한 반찬을 준비한다. 최소한의 양념을 넣고 조린 고등어자반 찜, 진간장과 파, 마늘, 고춧가루만 들어간 호박선, 채소 큼직하게 썰어 넣고 뭉근하게 끓인 카레, 통조림 넣고 짭조름하게 끊여낸 꽁치조림은 우리 집 식구들도 인정하는 반찬이다. 금요일 저녁 술 한잔 생각나면 꼬막을 사다 재빠르게 해감해 놓고 양념장을 만들어 놓는다. 해감된 꼬막을 한쪽으로 저어 삶아낸 뒤 한쪽껍질만 남겨두고 양념장으로 버무리면 짭조름한 꼬막무침이 된다. 시원한 막걸리 한잔에 꼬막무침이면 일주일 피로가 싹 가시는 일품 안주가 된다.

직장에서 오후 늦게 늘 부서 여직원들이 나에게  물어본다.

“오늘은 뭐해 드실 거예요”

“음... 오늘은 비도 오고 출출하니 집에 있는 신 김치에 오징어나 썰어놓고 김치 빈대떡이나 먹어야겠다”

“집에서 하면 빈대떡이 별로 맛이 없던데 비법이 있나요?”

“반죽이 너무 되면 맛이 없고 빈대떡 소를 너무 많이 넣어도 뻑뻑하게 되니 적당히 걸쭉하게 얇게 부쳐야 해”

그리곤 집에 가서 각자 부친 빈대떡을 인증 사진으로 다음 날 아침 화젯거리가 된다.

“처음엔 그냥 하시는 소린 줄 알았어요”

“정말 다 만드시네요”

여직원들은 이런 나를 신기해했다.

엄마는 나에게 요리하는 재능을 주신 건 확실하다. 지금도 음식 만들기는 나에겐 스트레스는 아니다. 가금 피곤해서 주방에 서기가 귀찮을 때 빼고는 음식을 만들 때는 즐겁다. 나의 요리의 원칙은 최소한의 양념으로 원재료의 맛을 충분히 낼 수 있도록 슴슴하고 담백하게 만들려고 애를 쓴다. 양념을 많이 쓰고 사람의 혀를 혼동시키는 MSG가 없더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려고 애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명품과 세련된 말투를 상대를 현혹해 눈멀게 하는 사람은 싫다. 말은 없지만, 묵묵히 맡은 자리에서 성실히 일하고 옅은 미소로 답을 하는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이 오래가고 진국이다. 엄마가 그랬다. 어릴 적 엄마 머리맡에 앉아 엄마의 손 냄새를 맡으면 그날 저녁에 만들어 주신 저녁 냄새가 났다. 짭조름한 조선간장 냄새도 났고 고소한 참기름 냄새도 났다.

“아! 좋다! 엄마 냄새“

하룻밤 사이 눈이 한가득 왔다. 퇴근하는 길 모처럼 엄마에게 전화 한 통을 드렸다.

“엄마 오늘 저녁에 뭐 해 드셨어요”

“입맛도 없고 그냥 김칫국 끓여 먹었다”

“엄마! 콩나물 넣고 끓였어요?“

“그럼 멸치 몇 마리 넣고 콩나물 넣고 시원하게 끓여 먹었지”

속으로는

“엄마 나도 시원한 김칫국 한 그릇 먹고 싶어요”를 외쳤지만

“맨날 김칫국만 먹어 고깃국도 드시지”

“걱정하지 마라. 너나 잘 챙겨 먹고 다녀”

“알았어! 난 오늘 고기 구워 먹을 거야” 하고 전화를 끊지만,

머릿속에 벌서 멸치 몇 마리 넣고 콩나물 넣고 시원하게 끊인 콩나물국이 한가득하다. 휘날리는 눈발 사이 가로등 불빛 사이로 희미하게 그려지는 어머니 얼굴을 떠올리며 소심하게 한마디 속삭였다.

“엄마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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