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훈련

6.밥하는 여자

by 선주

신이 계시다면 참 고약한 취미가 있으신것 같다.


아이가 생기며 칼같고 6하 원칙에 맞춰 잘 따지던 나는 대충대충, 그러려니, 두리뭉실 세상과 타협을 했다.

길거리에 담배꽁초 버리는 애연가.

새벽녘, 대로변에 폐기물 내놓는 어르신.

담벼락에 붙어 담배피고 십원짜리 대화하는 중고등학생.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이....


내 아이도 혹여 저런 한때가 있진 않을까?

보여지는 모습보다 그들의 속내에 말못할 고민을 헤아려 보려했고 다녀간 자리의 담배꽁초를 쓸고 버스의 자리도 먼저 양보 했다.

내 기준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 번호순서대로 꼽던 책장의 책이 들쭉날쭉 순서가 바뀌고 명절에 몇 일씩 집을 비울때 빨래통의 빨래가 몇 개 남아도 쓰레기통을 꼭 씻어 엎어놓지 않아도 집을 비울 수 있었다.


조상신을 섬기는 어머니.

부처를 섬기는 언니.

하나님을 섬기는 남편.

각자의 신들에게 신실한 그들이 나쁘다 한것을 왠만하면 안하고 산것 같은데 내 인생은 늘 파도타기 같다.

인테리어 일을 하는 남편의 어깨의 석회가 힘줄을 손상시켜 시술을 하고 회복을 하는 동안 생활비를 벌겠다고 학습지 일을 하던 나는 사고를 당했다.


나를 변화시켜가며 신들에게 맞춰가는데 내 생활은 신들의 약속과 점점 멀어지는 걸까?


형제 자매의 우애가 특별했던 아버지 세대의 권유로 사촌들과 매월 2만원씩 곗돈을 모았는데 사는것이 바빠 목적한 모임을 한두번 밖에는 갖지 못해 잠자는 수천만원의 돈이 있었다.

3개월내 대출을 받아서라도 갚겠다고 하고 무이자로 꾸었다.

꾼돈으로 급한것을 대충 정리하고 힘쓰는 일을 할 수 없어 동네에서 부동산 사무실을 오픈했다.


2019~2022년 부동산 거래가 활발할때 꾼돈을 갖을 만큼은 되었으나 물들어 올때 노저어야 한다는 생각에

빌라 신축업자편에 붙었다.

다행스러운건 마땅한 신축부지가 없어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분양 절벽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2025년 1월까지 참 어둡고 답답한 부동산 거래 절벽의 시간을 코로나 대출, 곗돈등으로 버텨냈다.

부동산 암흑의 시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 알았으면 대출없이 일찌감치 폐업을 한 편이 손해가 덜 했지 싶다.


얼마전에는 난소 물혹으로 시술을 받았다.

"엄마없으면 누가 밥하냐?"

"여자인 내가 해야지."

딸의 대답이다.


동업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이였으나 가만 돌아보니 남편에게 밥상 한번을 차리게 한 적이 없었다.

우리의 시작은 투탑이였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딸의 눈에 나는 밥하는 여자였고 남편의 몸은 세월을 이기지 못한 고철이 된것같다.


"여자인 내가~~"

딸의 말이 내내 가슴을 콕콕 찌른다.


여자라서 집안일을 강요받은적은 없다.

바깥일보다 네 식구 둘러 앉은 따뜻한 밥상 머리가 좀 더 좋았고 쉬웠다.

남편은 세상의 바람막 역할을 잘 해 주었다.

때때로 세상의 파도가 넘실대기는 했지만 피하거나 막기보다 남편이 더 높고 튼튼한 바람막이를

세울 때까지 묵묵히 맞으며 기다렸던것 같다.

취업을 향해서만 달려왔는데 취업이 해결책이 아니고 새로운 도전임을 깨닫고 포기를 선택했던

나의 연약한 자아는 넘실대는 파도를 함께 막아볼 생각보다는 피하고 숨기에 급급했던것 같다.


따가운 아침해를 못 이겨 잠을 깰줄 알았는데 화장을 마치고 쇼파에 앉아 기다려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여보~ 사무실 가야지"

남편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쓴다.

어수선한 시국에 매수자는 관망새.

매도자는 발을 동동구르는 판이다.

오랜 경력과 자신감 넘치는 언변에 제법 남편을 찾는 의뢰자들이 많다.

하지만, 많은 의뢰자들의 전화나 방문이 지금은 빚독촉 같다.

스트레스가 되었을 것이다.


'오늘만 남편에게 휴가를 주자.'

'오늘만 남편이 막아서던 파도를 맞아보자.'


블라인드를 내리고 조용히 신발을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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