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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Dec 15. 2020

엎어질 때 쉬어가는 배짱

- 쉽지는 않지만, 한번쯤 가져볼 만한...

2020년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올 한 해가 통째로 사라진 것만 같은 분들도 많으시겠죠? 정말 올 한 해는 계속 어려운 시절입니다. 마음이 지치는 것도 힘든 일인데 생업까지 달린 분들의 사정을 생각하니, 마음의 어려움 같은 건 말할 가치도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누구를 막론하고 마음에 먹구름이 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이 언제 희망이 없다고 느낄까를 생각해보면, 앞날이 가늠되지 않을 때와 자신의 잘못이 하나도 없는데 상황이 악화될 때인 것 같습니다. 둘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일 때이지요. 


우리나라 사람들 중 많은 이는 입시 때 처음 이런 경험을 할 것 같습니다. 예측할 수 없고, 최선을 다한다고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면에서요. 여기에 작은 실수라도 하나 생각나기라도 하면, 자신을 바보 취급하며 괴로워하기 일쑤지요. 때로는 남들이 그 실수를 용서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부터 보통 사람들은 실수하는 사람보다 작은 실수를 용서하지 않는 사람을 손가락질 했습니다. 옹졸하다는 표현은 그럴 때 쓰라고 나온 말이었지요.  

 

 

옛 이야기 중에 방귀 때문에 소박맞은 아내, 며느리의 이야기가 꽤 있습니다. 옹졸한 사람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이야기들이지요. 그런데 막상 진짜 신혼부부들은 이 유머를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신혼부부에게 방귀는 웃을 수만은 없는 소재지요. 모든 사람이 방귀를 뀌어도 상대는 뀌지 않을 것 같은, 완벽한 남자, 완벽한 여자일 것 같은 환상이 아직 남아 있을 때니까요. 이렇게 완벽이라는 환상은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천재, 스타, 위인....... 둘러싼 명패는 달라도 완벽하다 칭송받는 사람들의 고충을 우리는 종종 듣지요. 이미지 유지의 어려움, 완벽함이 깨질 때 받는 비난에 대해서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들에게도 각자 대단하다고 칭찬받는 점들이 있습니다. 생업에 종사하다가 ‘생활의 달인’이 된 경우, 취미가 프로 수준이 된 경우, 유난히 우스갯소리를 잘 하는 사람, 성격이 좋아 ‘보살’ 소리를 듣는 사람...,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박수를 치고, 조언을 듣기도 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그러한 평판이 보통 사람들을 더 발전하게 만들곤 합니다. 여기까지는 참 행복한 이야기지요.

 하지만 칭찬받는 사람과 칭찬하는 사람들 사이에 환상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러니까 새신랑이 새색시에게 그랬던 것처럼 완벽한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조금씩 피곤해지기 시작합니다. 어떤 요조숙녀도 방귀를 안 뀔 수는 없듯이, 아무리 나무를 잘 타는 원숭이라도 인생에 몇 번쯤은 나무에서 떨어지게 마련이니까요. 


 우리는 실수를 과장하는 문화가 있지요.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것을 실패라고 평가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수가 노래를 부르다가 음정 하나를 놓치면 ‘삑사리’가 났다고 하고, 한동안 쉬었던 배우가 살이 좀 쪘다 치면 ‘관리 실패’라 합니다. 학문이나 산업 분야도 마찬가지라서 연구를 하다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거나 제품의 반응이 좋지 않으면 실패로 낙인찍는 분위기죠. 요즘은 실패 사례에서도 배울 수 있으므로 그 경험을 공유하자는 문화도 있지만, 실패 자체를 성과로 인정해주는 외국 기업이나 연구 분야에 비해서는 아직 야박한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일필휘지(一筆揮之), 

붓을 한번 휘두르면 그대로 명문장이 된다는 이 말은 진정한 고수에 대한 환상을 담은 사자성어입니다. 완벽한 천재는 실수나 실패 없이 완성작을 만들어낸다는 뜻이니까요. 명문장가로 유명했던 소동파도 이 명성을 지키기 위해 꽤나 노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 소동파에게 <적벽가>를 며칠 만에 지었느냐고 묻습니다. 소동파는 갑자기 시상이 떠올라 단 한 순간에 지었다 말하죠. 친구는 역시 소동파라고 감탄했는데, 그가 방을 나간 뒤 앉은 자리가 불룩하여 살펴보니 <적벽가>를 고쳐 쓴 종이가 수북하더랍니다. 그런데 그가 고쳐 쓴 종이들은 실수나 실패의 흔적이었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그것은 <적벽가>라는 명작을 완성하기 위한 ‘과정’이지요. 


그런데 글쓰기와 달리 어떤 것들은 그 ‘과정’이 눈에 잘 띕니다.

가령 아기의 엉덩방아처럼 말이지요. 걸음마 배우는 아기를 지켜본 분이라면 그 엉덩방아를 ‘실수’나 ‘실패’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저 걷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원숭이가 나무를 타는 과정도 마찬가지지요. 엄마 원숭이의 목이나 엉덩이에 매달려 팔 힘을 기르고 몇 번이고 연습한 후에야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니는 원숭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는 이미 숙련된 달인이지요. 나무타기에 관한한 모두에게 칭찬을 받고, 심지어 실수할 것 같지 않은 환상을 심어줄 정도로 잘해내는 고수인 것입니다.  


 그런 고수가 한번쯤 떨어진다고 큰일이 일어날 리 없습니다. 나무타기의 연습과정에는 떨어지는 낙법도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므로 큰 실수를 했다고 느낀다면 말 그대로 느낌일 뿐입니다. 누군가가 완벽하다는 환상이 깨졌다고 할 수야 있겠지만, 환상이란 원래 본질이 아니니 생각에 따라 잘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연인이 가진 환상을 평생 유지해야 한다면 이 세상 커플들은 얼마나 피곤할까요? 요는, 나무에서 떨어진 원숭이는 잠깐 땅에 엎어져 좀 우스워졌을지 몰라도, 나무를 잘 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무에서 떨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가지는 하지 말고 한 가지는 해야 합니다. 우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자책입니다. 왜 바보같이 나무에서 떨어졌냐고 자신을 꾸중하고 후회하거나 그 상황을 곱씹으며 평가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연습 과정이 아닌 우발적인 실수는 되새겨봐야 스스로를 발전시키는데 어떤 도움도 되지 않으니까요. 반면, 우리는 그 실수 자체가 아니라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살펴봐야만 합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낙천적인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 
덜 가지고도 더 많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전에는 무심히 관심 갖지 않던 인간관계도 더욱 살뜰히 챙겨야 한다. 
더 검소하고 작은 것으로써 기쁨을 느껴야 한다.       
  -<산에는 꽃이 피네>,  법정스님, 동쪽나라, 64쪽   


 


인생을 살다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수렁에 빠진 듯 되는 일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안 좋은 쪽으로 빠지는 때, 인생경험이 많은 어르신들은 이렇게 충고해주십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

 

쉬다보면 가장 먼저 건강을 챙기고 그 다음에 주위를 챙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쉬다 보면 실수의 진짜 원인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운동선수들은 보이지 않는 미세한 부상 때문에 실수를 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이때 당장의 욕심을 접지 않고 경기를 계속 하면 나중에 큰 부상을 당한다고 하지요. 


이렇게 어떤 실수는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마음에 가득한 욕심을 크게 덜어놓고 땅 냄새도 맡고 새 소리도 들으라는 신호. 떨어진 게 창피하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다가 어딘가 크게 부러질 수도 있으니, 까진 무릎을 호호 불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것이 다시 일어나는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몸은 건강한지, 마음에 생채기 난 곳은 없는지 꼼꼼하게 점검하다 보면 어느 새 다시 시작할 힘이 채워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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