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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Nov 11. 2020

당연하지 않은 삶에 대하여

- 로버트 뉴튼 펙의 아버지로부터...

부쩍 추워진 퇴근길에서 우연히 어른과 아이의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집에 가면 엄마가 맛있는 거 해주겠네.”

 “당연하지!”

  ‘응’도 아니고 ‘그럴 걸?’도 아니고 ‘당연하지.’

아이의 목소리가 너무나 확신에 차서 순간, 당연한가? 곱씹게 되었습니다.

춥고 허기진 저녁, 어린 사내아이에게 엄마의 저녁 밥상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가슴 한 쪽이 찌르르해지더니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아이에겐 당연한 것이 특별하거나 애초에 가질 수 없죠.

사진으로조차 본 적 없는 아버지의 어린 시절이 불현듯 떠오른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세 살이 되던 해 부모님을 잃으셨다는 어린 시절의 아버지는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었던 아이였습니다.

친척집에서 아버지를 거두었다지만, 그 집에도 아이들이 예닐곱이나 있었습니다.

해방 후에 태어나셨으니, 부모님이 다 있는 집 아이들도 끼니 걱정을 할 시기였던데다

아버지의 고향은 가난하기만 한 시골이었죠.

가끔 아버지에게 여쭙곤 했습니다.

 “어릴 때 뭐가 기억나세요?”

 “기억하고 싶지 않아.”

 “그래도 기억나는 건 있을 거 아니에요?”

 “몰라. 그냥 배가 고팠던 것밖에는.......”

 생애 첫 기억이 배고픔이었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서먹서먹하기만 했던 아버지를 알아가는 느낌이었죠.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가끔은 타인 같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결코 엄하거나 차가운 분은 아닌데, 왜 서먹한지 이해할 수 없었죠.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제게 아버지의 존재감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잔소리도 하지 않고 따뜻한 말도 해주지 않는 아버지는 그저 그 자리에 있는 이름일 뿐이었죠.

그러다 로버트 뉴튼 펙의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을 읽었습니다.

심심풀이로 손에 잡은 얇은 책이 뜻밖에도 마음 속을 파고들어 눈이 빨개지도록 울고 말았죠.

내 의식 속에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책갈피 속에 들어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입니다.

마을에서 돼지를 도살하는 역할을 맡은 아이의 아버지는 항상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가난하고 글도 읽고 쓸 줄 모르며 사람들이 가장 기피하는 도살 일을 직업으로 삼은 아버지는

그 나름대로 어린 아들 로버트에게 자상하지만,

로버트는 가난하면서도 가난하지 않다고 하고,

세상에 대해 희망적인 이야기 같은 것은 해줄 줄 모르는 아버지가 특히 좋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자신이 애지중지 키웠던 꼬마돼지 핑키와의 일에서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까지 있었죠.


아버지는 로버트가 다 크기도 전에 세상을 떠납니다.

도살업자인 아버지가 죽고 나니, 마을에서는 처음으로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습니다.

아직 어린 로버트가 이 아이러니한 풍경을 보고 있는데,  저는 왠지 로버트가 부러워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제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죠.


한참 생각에 잠겨 있는데, 아빠가 등 뒤로 다가왔다.
우리는 커다란 닭이 커다란 고깃점을 먹고,
아주 조그만 놈은 입도 못 대고 구경만 하는 모습을 같이 지켜보았다.
 “저건 불공평해요. 그렇지 않아요, 아빠?”  
“로버트, 어차피 이 세상은 공평한 곳이 아니야.”


로버트에게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는 너무 현실적이지 않나 하는 것까지 가감 없이 알려주는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앞으로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를 짐작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저는 그 지점에서 아버지를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겨우 세 살, 부모님과의 어떤 추억도 기억도 갖지 못하고 세상에 홀로 떨어진 아버지를 생각하니,

로버트는 정말 많은 것을 가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어린 시절이 느껴졌습니다.

그 막막함과 외로움이 말이죠.

흔히 행복하다고 하는 어린 시절의 순간들,

예를 들어 당연한 것의 목록들에서 아버지의 어린 시절 필름이 한 조각씩 현상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논으로 밭으로 뛰어다니며 심부름을 했다는 어린 시절 아버지도 해거름,

붉은 하늘 밑에 세상은 땅거미로 온통 어두울 무렵이면 집으로 발길을 돌리셨을 겁니다.

유난히 추운 경기도 북쪽의 마을에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던 아버지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짐작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차마 짐작할 수 없어서 말이죠.

늘 배가 고팠다고 하시니 그 저녁에도 배는 텅 빈 듯 했겠지만,

누군가 차려주는 맛있는 밥상이란 당연하게도 결코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당연함이란 부모 없는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목이 메어왔습니다.

어떤 추위와 배고픔이 와도 아버지는 아마 기다릴 것이 아무 것도 없었겠죠.

아무 것도 기다리지 않게 되면서 아버지는 당연히 밥상을 차려줄 엄마와 아빠 외에도 많은 것을 잃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은 것은 아닐까요?

가령 희망 같은 추상명사 말입니다.

지금은 어둑신한 이 길을 걷고 있지만, 길이 끝나면 따뜻한 아랫목이,

자신을 생각하며 차린 밥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믿으며 아이들은 희망이라는 추상명사를 몸으로 배우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지금 현재도 아버지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엄마의 밥상이 당연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아직도 희망이라는 단어가 너무 어려운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밝고 따뜻한 것들과 내내 서먹서먹해질 텐데 말이죠.


 “안녕히 주무세요, 아빠. 아빠랑 보낸 지난 13년은 정말 행복했어요.”


 독자는 겨우 13년이라고 생각하는데 소설의 아들은 그 13년 덕분에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그 13년도 없었던 아버지가 마음에 걸려 한번 여쭤보았습니다.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었던 어린 시절이 원망스럽지는 않으셨느냐고.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대신 너희들과 엄마가 이렇게 잘 해주잖아. 시절을 지나온 덕에.”

아버지는 늦게나마 희망이라는 단어를 몸으로 배울 수 있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당연하게 체득한 복은 아니지만,

바로 그랬기 때문에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법을 아버지는 알게 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통해 저도 당연한 것들을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게 되었죠.   

세상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은 삶을 사는 시절에도,

언젠가는 당연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아버지와,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가슴 속에 되살려준 책 한 권에 감사한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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