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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Apr 01. 2021

보이지 않게 들이는 정성

- 무너지지 않아요.

말차 라떼를 한 잔 테이크아웃 했습니다.

뚜껑을 열었을 때, 예쁜 하트를 보고 따뜻한 한 잔을 내주신 분께 감사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데 정성을 다 하는 분,

그런 정성을 뜻밖에 발견하는 기쁨이 참 큽니다.


하지만 이 "뜻밖에"가 쉽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건 끝까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죠.

그것이 정성일 때는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곤란하죠.

얄궂기도 해요.

미움이나 짝사랑은 숨기려 해도 드러나는데 말이에요.


보이지 않다보니 감사를 받을 일도 적습니다.

그래서 대가 없는 정성을 들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SNS가 '좋아요' '하트' '엄지'를 바라고,

좋은 댓글을 고대하는 건 자신의 정성에 대해 정직한 반응이죠.


공든 탑이 무너진다.

애 키운 공은 없다.

해준 공도 모르고 배은망덕하게..


속담도 다양하죠.


하지만 보이지 않는 정성은 티를 냅니다.

알든 모르든 세상을 바꿉니다.

아이가 자라게 하고, 꽃을 피게 하고, 애완동물을 윤기나게 하죠.


그래서 저는 무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충분한 감사를 표하지 않고,

제자가 스승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고,

꽃이 물 주는 손에 인사하지 않아도 충분한 것처럼요.


우리는 자연에게 일일이 감사하고 매일 떠오르는 해에게 경배하지 않죠.

우리 삶이 자연의 보이지 않는 정성에 빚졌는데도요.

자연이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다고 우리를 원망한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자연스러움을 잃고 두려워하는 존재가 될 겁니다.

살아가되 아름답지는 않겠죠.


가끔

되받을 수 없는 과한 정성을 주는 사람을 안타까워 하기도 합니다.

무골호인, 뼈가 없는 좋은 사람이라는 말도 비웃을 때 더 많이 쓰이고요.

자신의 이익이나 귀찮음 때문에 뼈도 모난 데도 없이 자신의 정성을 디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런 정성이 주변을 바꾸지는 못할 겁니다.


대가나 남이 알아주는 것을 바라지 않는,

끝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향한 정성은

그 방향이 올곧게 닿아있죠.

그렇대도 사람이 들이는 정성은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히늘을, 해를, 달을, 그리고

어느새 온 봄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심함에 상처입은 분들께

누군가 그리신 귀여운 문어 그림으로 연대하고 싶습니다.


가까이 내 친구들로부터

저 먼 곳에서 우리의 과거를 살고 계신 미얀마, 티벳, 신장... 차마 알지 못하는 싸움들까지도요...


뭔가 어울리지 않는 마무리지만,

미래와 역시를 위한 싸움도 결국은 다 보이지 않는 정성을 들일 수 있는 심성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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