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a Nov 21. 2021

어떤 초상화

- 가르침은 충분하지만, 아픔은 각각의 몫이라는 것을.

오늘 글쓰기를 마치려다가 들릅니다.

실은 쓰고 싶은 만큼 쓰지를 못했어요.

하지만 이 정도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오랜 경험 상 느낍니다.

대신 니콜라이 고골의 <초상화>로 위로 혹은 시공을 초월한 동지애를 느낀 기록을 남기려 합니다.

<초상화>는 화가 이야기입니다. 1, 2부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을 모른 체 읽은 것이 좋았습니다.

스포일러 당하지 않고 반전 영화를 본 기분이랄까.... 하지만 이 소설에서 반전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2부가 없어도 충분히 소설로서 완성도를 갖추었다는 의미입니다. 

소설 평론가라면 2부가 꼭 있었어야 하나, 꼬투리를 잡을 만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평론가가 아니라, 저 나름 소설가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사는 인간이기에 2부가 좋았습니다.

소설 1부는 재능 있는 어떤 화가가 전 재산을 털어 오래된 초상화 하나를 구입한 후 겪은 불가사의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너무나 가난하여 세낸 방에서 쫓겨날 지경인 화가, 교수들도 인정하는 재능을 지니고 있지만 삶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쫓겨날 위기에 처한 화가는 재능을 의심합니다.

세속에 휘둘리지 말고 배움을 계속하라는 늙은 교수의 잔소리가 무책임하게 느껴지는 밤, 

젊을 땐 항상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불안정한 생활, 인생이라는 것을 꾸릴 수도 없는 이 재능은 사실 저주가 아닐까......

아니,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이 재주가 진짜 재능은 맞을까?

하지만 네 생각이 맞는다고, 혹은 틀리다고 확답해주는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꿈을 꿔본 이라면 그것이 예술이 아니라도 한번쯤 가졌을 의심들...

저도 익숙합니다.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는 의심이며 답답함이니까요.

젊을 땐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말이 그렇게 절망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정답이 없다지만 놓을 수도 가져갈 수도 없는 재능, 혹은 재능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어떤 일..

천재에는 모자르고 보통사람이기엔 넘치는 이도저도 아닌 재주... 놓지도 올인하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한 못난 자신을 저주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이 쌓이며 나이를 먹은 것 같습니다. 

<초상화> 속 화가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자신을 향한 저주와 현실적 괴로움에 시달리던 그는 문득 자신이 사온 <초상화> 그림을 봅니다.

강렬한 눈동자에 홀려 사온 초상화가 살아 움직일 것만 같습니다.

그는 악마가 깃든 듯 무서운 눈동자가 두려워 시트를 덮어버린 채 잠이 듭니다.

꿈에서 초상화 속 노인은 금화가 잔뜩 든 주머니를 갖고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버리지요.

화가는 꿈 속의 꿈 속의 꿈에서 깨어나 실제로 그 금화를 찾게 됩니다.

방세를 내고 먹을 것을 사고도 남을 금화.

화가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이 금화로 더 열심히 그림에 매진하거나 유행을 따라 좀 즐기며 사는 것.

화가는 후자를 택합니다. 비싼 동네로 이사하고, 좋은 옷을 입고, 그에 걸맞은 사교클럽에 다니고, 돈으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호평도 신문에 싣습니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귀족 계층의 초상화가가 되지요. 처음에는 구역질 나는 일이었지만, 요령을 얻고 나니 이처럼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없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 화가 소리를 들으며 승승장구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동학이었던 한 친구가 봐달라고 하는 그림에 충격을 받습니다.

 자신이 허영에 들떠 살았던 시간 동안 순수한 예술의 세계를 탐구했던 친구의 진정한 걸작을 본 후에야, 더이상 새로 시작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서야 자신이 젊었던 시절에 갖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었던 꽃씨였습니다. 재능을 가진 순수한 젊음이었습니다.


천사는 영혼이 깨끗하여 더럽지 않은 빛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만으로도
악마의 무한한 힘이나 그 오만한 욕망보다 몇 배나 가치가 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보다 몇 배나 더 가치 있는 것이 바로
숭고한 예술작품인 것이다.
예술에 모든 것을 바치고 정열을 다하여 예술을 사랑하여라.
속세의 정욕으로 숨쉬는 정열이 아니라 조용한 하늘의 정열로 사랑해라.
이 정열이 없으면 인간은 지상에서 날아 올라갈 수 없고,
기적적인 평화의 소리도 줄 수 없다.
왜냐하면 숭고한 예술작품은 만인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하늘에서 세상으로 강림한 것이기 때문이다.  

                                - <초상화>,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고골, 조주관 옮김, 민음사, P221



더 어린 나이에 읽었다면 그저 작품의 한 구절로 읽었을 내용들이, 고골이 후배에게 주는 진심어린 충고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고골은 천재를 지닌 후배들을 생각했겠지만 말이지요...... 하지만 예술이 아닌 이 삶 자체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제대로 살아낸 인생이야말로 만인에게 평화를 줄 최고의 보물이라고요.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그것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카라바조


<초상화>를 읽으며 이 그림이 생각났습니다.

몇 년 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갔을 때 강렬함에 눈을 뗄 수 없었던 기억이 제게도 있었거든요.

카라바조의 작품들, 그 중에서도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이었거든요. 

우피치 미술관의 수많은 걸작 중에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강렬함. 

골리앗의 끔찍한 머리보다 회환 가득한 다윗의 표정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잘린 머리의 얼굴이 카라바조 자신의 자화상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카라바조는 그림 실력으로 살인죄를 용서받은 화가로 유명하지요.

미치광이 예술가, 인간말종이나 다름없었던 화가 카라바조.

만년의 이 그림에 대해 평론가들은 젊은 시절의 자신이 잘못된 인생을 산 자신을 단죄하는 것이라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초상화>의 화가는 자신이 젊음과 재능을 낭비하고, 악마가 깃든 초상화에 홀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잃었다는 후회에 걸작들을 사모아 망가뜨리는 것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죽어가는데, 카라바조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그렇게 참회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평온과 화해와는 거리가 멀지만, 후세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는 데는 충분한 작품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까발린 것은 아닌지....


 


  

앉아라, 내가 너에게 말해주겠다.
인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어리석음이다.
총명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방종이다.
믿음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좁음이다.
곧음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어지러움이다.
굳셈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경솔함이다. 

                                                                                                -<논어>, 양화편


공자님은 평생을 걸쳐 배움의 중요성을 말했습니다.

재능인지 아닌지도 모를 것은 버리지도 몰두하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함에 울고 있을 때, 너에게 재능이 있다고, 버리거나 올인하라고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시간을 어찌 보내면 되는지는 많은 선배들이 말했습니다. 답답함과 두려움에 울고 난 다음에는, 배우라고요. 


재능이라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최고로 가치 있는 귀한 선물이니
그것을 망쳐서는 안 된다.
보이는 모든 것을 탐구하고 공부해라. 붓을 네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길들여라. 

                                                                                                              - 위의 책, 220 


같은 사람이 말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비슷한 이야기죠.

진리는 하나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봅니다.

다행히도 우유부단하게 이어온 세월의 내공이 있어 무너지지 않고 오늘 하루는 보내지만,

역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선배들의 글들을 배워보렵니다. 



작가의 이전글 띠풀을 찾으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