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a Nov 05. 2021

띠풀을 찾으며

- 나의 글도 선물이 될 수 있을까?

향모를 땋으며

시작은 이 책이었습니다.

포타와토미족의 신화로 시작하는 책, <향모를 땋으며>.

하늘 여인이 땅으로 떨어지자 새와 거북이들이 그녀가 추락하지 않도록 땅을 만들어주고

여인은 감사한 마음으로 세계를 위해 자신을 나눕니다.

이러한  거북이섬(아메리카) 원래 주인들의 감사 문화가

위기에 처한 생물권과 식물학이라는 과학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책입니다.

자연에 대한 감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갖고 있는 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인간은 파괴적인 것이 더 부자연스러운 동물이겠죠.

자본에 방심하지만 않는다면요.

이 책은 동양인들에게는 익숙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두껍지만 어렵지 않고, 작가 로빈 윌 키머러가 제안하는 것들도 낯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특별함이 없는 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제게 이 책은 슬픔과 부끄러움을 주었으니까요.

안다고 생각하는 슬픔의 역사들이 실은 화석과도 같은 지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조금만 닿아도 핏기가 돌며 생생하게 슬픔을 증언하는 진실의 힘.

부족의 언어를 잃고 서구의 과학 수련을 받은 인디언 후손의 육성은 안다고 치는 게으름이 얼마나 잔인한 짓인지를 깨닫게 했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 언어를 잃지 않고 빼앗기지도 않은 땅에서 살아가는 제가 띠풀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부끄러움을 갖게 되었지요.

  

출처: 미디어경남거제/ 70년대 초가집 이엉 엮는 모습

제목의 향모는 우리 말로는 띠풀의 일종이라는데,

포타와토미족에게는 하늘여인, 즉 어머니 대지의 머리카락이라고 합니다.  

조금 찾아보니 띠풀은 벼와 친척인 것 같습니다.

포타와토미족이 온갖 데에 띠풀을 이용했듯이 우리나라에서도 띠풀로 이엉을 만들어 지붕을 만들고

도롱이를 만들어 비를 피하고, 자리도 만들어 사용했죠.

벼를 키우면 볏집으로 밀을 키우면 밀집으로 전 세계에서 띠풀은 감사한 종류의 풀이었습니다.

띠풀은 아니지만, 저도 벼를 대하는 할아버지의 경건한 마음이 어떤지 곁에서 보며 자랐습니다.

벼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풀로 생명 그 자체였죠.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고된 노동을 하는 이유는 낟알에 있었지만,

낟알을 훑고 나면 잘 말린 볏짚을 이어 지붕을 새로 덮고,

남은 것은 낟가리를 쌓아 겨우내 구들을 덥혔습니다.

낟알에서 벗겨낸 껍질은 소키우는 여물에 넣었고, 불씨를 만드는 데도 요긴했죠.

어느 하나 버리는 것 없이 사람을 살리는데 쓰인 풀이 바로 벼였으니,

벼농사를 짓는 문화에서 벼라는 풀은 어떤 감사를 받아도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벼에 대한 감사가 몸에 새겨진 저도 띠풀이 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띠풀은 진짜 농사를 짓던 사람들, 배고픔에 힘겨운 시절을 보내본 분들에게는 모를 수 없는 풀이었죠.

삘기라고도 불린 띠는 그 향긋함에 배고픔을 잊게 해준 풀이었다고 하니까요.


낟가리/ 출처: 한겨레

어쩌면 부끄러울 것 없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벼농사가 쉽지 않았던 고대  시에 나오는 곡식은 피나 수수, 조입니다.

벼농사가 주가 되면서는 한여름 제거해야 할 잡초나 잡곡이라 불리죠.

땋은 향모/ 출처: 에이도스

그래도 하늘여인의 머리카락이라는 풀의 정체를 알고 싶었던 것은 감사가 고파서였던 것 같습니다.

작가 로빈은 거북이섬 원주민의 선물 개념과 서양의 선물 개념은 다르다고 말합니다.

서양의 선물은 어떤 상징이지만, 원주민의 선물은 좀더 경제적인 것이죠.

선물을 받으면 상대에게 주어야 합니다. 대략적으로 비슷한 가치의 것들을 말이죠.

하지만 형편에 따라서는 크게 받아 작게 주는 것도 상관없습니다.

형편이 달라지면 그것이 역전될 수 있는 사회니까요.

선물을 받으면 자신도 선물로 갚아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부담'이라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경제가 없는 사회에서 누구도 상처받지 않으면서도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아주 좋은 장치라고 생각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응답하라1988 1화 중

<응답하라 1988>에서 저녁 먹기 전 계속되는 심부름에 결국 한 마을의 밥상이 다 똑같아지는 신기한 광경과

포토와토미 족(그리고 수많은 원주민들의 풍습)의 선물 의례는 맞닿아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우리에게 선물의 도돌이표는 익숙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고 받고를 계속 하면서 인생에 필요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쌓아 풍족해지고

더불어 감사가 일상인 삶을 살고 있다고요.  

하지만 작가 로빈이 안타까워 했듯이, 이러한 내면이 당연한 것은 아닙니다.

작가는 현대 문명이 감사를 잃어 생태학적 위기를 맞이했다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실은 사람살이가 어려워지면 감사는 어느새 남의 일이 되곤 하죠.

  

정선 <모옥독서>


팔월 늦가을에 바람이 사나워
우리집 지붕에 띠풀 세겹으로 이엉을 이었네
띠풀 이엉 강 건너 날아가 흩뿌리니
높이 난 것은 숲 깊은 곳 나뭇가지 위에 걸렸고
낮게 날아간 것은 빙글빙글 웅덩이에 빠졌네.
남촌 아이들은 내가 늙고 힘없는 걸 보고
빤히 눈앞에서 훔쳐가네.
이엉을 쥐고 대나무 숲으로 숨으니
입술이 타고 입안이 말라 소리도 칠 수 없어
돌아와 지팡이에 기대 홀로 한탄하네
이내 바람은 멎고 구름이 흑빛이니
가을 하늘 막막하게 저녁을 향해 어두워지네
삼베 이불 오래되어 쇠처럼 차가운데
예쁜 아이는 잠버릇이 나빠 속을 밟아 찢어졌네
침대마다 지붕이 새서 마른 곳이 없는데
빗줄기는 삼 줄기처럼 내려 멈추지 않고
난리를 겪은 뒤로는 잠도 오지 않으니
긴긴 밤 축축하게 젖어 어이 밤을 새려나
어찌하면 천만 칸 넓은 집 얻어
세상의 가난한 선비들 보살피며 모두 즐거운 얼굴로
비바람에도 바쁘지 않고 산처럼 편안할 수 있을까?
아, 어느 때라도 눈앞에 우똑한 집 볼 날 있다면
내 집만 부서져 얼어죽더라도 만족할텐데.
- 두보, <茅屋爲秋風所破歌모옥위추풍소파가>


두보는 워낙 어려운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어서 눈물 젖은 그의 시가 과장되었다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시는 헤어진 가족과 친구를 그리워하는 것도 아니고,

폐허가 된 고장을 슬퍼하는 것도 아닙니다.

읽는 이까지 으슬거리게 하는 풍경은 더도 덜도 아닌

늙은 노인의 생계난...

한 줄 한 줄 체을 낮추는 늦가을 비를 뜬눈으로  지켜보는 밤.

모아둔 띠풀을 심술궂은 바람과 어린애들에게 빼앗기고 나니, 내일의 희망이랄 것도 나아지리라 다짐할 수없는

늙은 두보의 지나치게 현실적인 슬픔...

그래도 시가 아름다운 건

두보가 자신이 아닌 타인들을 위해 꾸는 꿈 때문입니다.

비 샐 걱정 없고 추위와 젖은 잠자리에 시름하지 않아도 될 아주 너른 집.

추위에 잠못 이룬 채 덜덜 떨면서도 두보는 밀합니다.

내 집이 부서지더라도 다른 선비들이 편안해지면 좋겠다고.

한탄 끝에 마침내는 이런 몽상을

고대 시인의 아름다움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출처: https://blog.daum.net/blackjntl/17449994

두보는 몰랐겠죠.

그 아름다운 슬픔이 천 년을 넘어 간직되리라는 것을.......

아직도 가난한 시인들이 초라한 집에 사는 세상이지만,

띠풀을 날려버린 바람과 훔쳐간 아이들이 짓게 만든 시가 오래도록 선물이 되었다는 것을.

글쓰는 사람으로 가끔 이 세상이 춥고, 외롭습니다.

글은 원래 혼자 쓰는 것이지만, 내가 낸 책이 누군가에게 닿았다는 것을 느끼는 일은 드물죠.

그래서 가끔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띠풀을 찾으며,

더불어 두보의 오래 전 슬픈 가을밤을 만나며,

내 글이 누구에게든 선물인 적이 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렇게나 많은 선물을 받은 나는 어땠는지 말이죠.

일본 위성 하야부사가 마지막 임무로 찍은 지구/ 출처: 나무위키


작가의 이전글 이럴 땐 쉬어도 된다고 조상님이 말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