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a Feb 26. 2022

나의 하와이

- 이제 해외 여행이 그리워질 무렵...

글쓰는 직업이다보니 한참 글을 쓸 때는 기록을 잘 남기지 않는 편이지만, 

코로나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 것을 보니 다시 해외 여행을 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더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여행 기록을 남겨보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분들이 그럴 겁니다. 마지막 해외 여행은 2019년 12월 이전 어디께쯤이라고.......

저 역시 마찬가지인데, 아마 코로나가 창궐하지 않았어도 해외 여행은 지금까지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코로나 전, 마지막 여행에 전 재산의 30% 정도는 쏟아부었으니까요.

전 재산이라고 하니 엄청 럭셔리 여행을 한 것 같지만, 총액이 워낙 적어서 30%라고 해도 다른 가족들의 가족여행 금액쯤일 겁니다. 세계 어느 호텔 방의 1박 가격에 못 미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저 나름대로의 큰 결심이었다는 말입니다.

 

목적지는 하와이.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여행지였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끌리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멀기도 하고 비싸기도 하고, 그렇게나 좋은 곳이라면 짧게 가고 싶지 않기도 했고요.

하와이에 가기로 한 이유는 부모님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여행을 많이 다닌 분들입니다. 

하지만 언어 문제 등의 이유로 대부분 패키지 여행이었죠.

패키지 여행을 해본 분은 아시겠지만, 아주 편안합니다.

주로 편안한 좌석이 있는 버스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죠.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패키지 여행으로 다녀온 곳은 기억이 거의 나지 않습니다.

뭐든 느린 탓인지, 오래 내 발로 땅을 밟으며 수줍게나마 겪어본 땅들 만이 여행이라는 기억에 남았지요.

부모님의 연세가 드시니 패키지 여행도 불편해진 것이 생겼습니다. 

비행기.. 늘 먼 곳을 동경하는 분들이니 비행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데,

이코노미석 이상을 타본 적이 없으셨죠.

연세가 드실수록 이코노미 석도 비행시간도 힘드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행 횟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죠.


 그러던 어느 봄,

저는 백수가 되었습니다.

불안정한 직업인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던 저는 다음 취업까지의 시간 동안 뭘 해볼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부모님께 이렇게 물어봤죠.

"지금까지 다닌 곳 중에서 딱 한 곳만 다시 갈 수 있다면 어디에 가고 싶으세요?"

 "하와이."


그렇게 여행 계획을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엄마와 아빠가 연세드시는 것이 눈에 보일 즈음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한 해가 더 지나면 떠나기 더 어렵겠구나.

돈이 많더라도 체력이 안 좋아지셔서 멀리 가자고 못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수 주제에 전 재산의 30%를 써버리기로 한 것은 저도 그만큼 나이 먹었기 때문이지요.

시간과 돈이 함께 있을 때는 드물고,

돈은 채워질 가능성이 있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백수이고 혼자였으니까 가능했던 일이죠.

아이가 있고 가정이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고 하고 싶어도 실행하기 힘들다는 걸 너무 잘 압니다.

혼자니까 미친 짓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이죠.


가장 먼저 챙긴 것은 편한 비행기 좌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1등석을 태워드린 건 아니에요.

비지니스석을 끊기 위해 갈아타는 번거로움을 감수했죠.

여행기간은 15일, 

평생 패키지만으로 여행해본 부모님께 

가장 좋았다고 하시는 여행지에서 살아보는 느낌을 가져보시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안 되는 영어로 에어비앤비 주인에게 밥통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죠.

운전연수를 받은지 몇 달도 안 되었으면서 국제면허증도 발급받았습니다.

그걸 쓸 일이 없을 거라는 걸 그때는 몰랐지만.......


이코노미석보다 일찍 비행기에 들어갈 수 있는 경험도, 

다리를 쭉 뻗고 심지어 누울 수도 있는 자리도 처음이었던 엄마와 아빠.......

하지만 부모님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체력이 안 좋다는 걸 이 비행으로 알았습니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이지만 좀 넓은 좌석에서 한숨 푹 주무시고 도착하면 

시차 말고는 부모님의 체력을 빼앗을 것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고요.

 아름다운 하와이에 내리자마자 저는 렌터카를 취소하고 우버를 찾아야 했습니다.

너무 지친 두 분이 간절하게 숙소에 가기를 바랐기 때문이지요.

아직 호스트가 청소 중인 숙소에 부모님 사정을 이야기하고 일찍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기 싫다는 아버지를 안타까워 하며

쌀을 사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라며 따라 나선 어머니도 실은 오기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편의점에서 쌀을 찾아 돌아오면서 말이죠...


유명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없어서 조급한 마음이 없었던 게 다행입니다.

하지만 생각도 못한 하와이 여행이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한 단어에 하나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