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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Jun 14. 2023

유재하! 혹은 아름다움

- 유재하를 듣던 시절에 대하여...

유재하!

이 분의 성함에 반드시 느낌표가 붙어야 한다는 데 한국사람이라면 동의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재하!!!

개인적으로 이 분의 성함에는 자중하여 느낌표 세 개를 붙여봅니다.

아마도 이 분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솔직한 마음으로 매겨본다면 백 개는 넘을 겁니다.

이 음악가를 만난 첫 시절이 언제여야 가장 완벽할까를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제가 가장 완벽했다고 마음대로 주장하기 위해서 말이에요.

저는 인생에서 가장 감수성이 풍부한 시절에 유재하를 만났지요.

유재하라고 할 때 이 명사는 제게 고유명사가 아니라 그 시절 음악을 가리키는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이런 정사각형 디스크를 살 돈은 없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살던 청소년이었던 제게는 테이프가 더 나았습니다.

1987년 8월 20일에 발매되었다고 하네요.

좀더 완벽했으려면 9월쯤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저는 당시 라디오도 듣지 않고 어둠속에 살던 영혼이라 대중문화를 잘 모르던 아이였습니다.

아마 전날 밤에 <별밤>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드는 반 아이들이 없었다면 한참 뒤에야 알 수 있었겠죠.

11월 어느 쌀쌀한 날, 

저는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많은 가수들을 슬프게 하고 있다는 가수의 테이프를 샀습니다.



9곡...

이제 세어보았네요.

그 시절 이 테이프는 제게 무한이어서 몇 곡이나 담겼는지 별로 의미가 없었거든요.

9라는 숫자가 의미심장하네요.

교향곡 작곡가들 중에는 9번째 교향곡에 9번이라고 붙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죠.

많은 작곡가들이 9번 교향곡을 끝으로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에 말이에요.

곡 하나하나에 담긴 개인적인 영감의 수를 생각하면 교향곡 못지 않은 무게인데, 하필 9곡이니 뒤늦게 속상하고 의미심장합니다. 


그 시절의 원픽을 꼽으라면 <지난날>입니다.

정말 뭐라 할 수 없을 만큼 없던 추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세상을 20년도 안 살았는데, 그 수많은 감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요?

알 수 없는 추억들로 떠오르는 그 영감들......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반드시 이 노래들로 이야기를 만들 거라고요.

그때는 뮤지컬도 몰랐고, 뮤직비디오도 어쩌다 한두 개 분식집에서 본 게 전부였으니 나름 새로운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이야기였는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사랑 이야기가 될 거라는 건 알았습니다.

앨범 자체가 <사랑하기 때문에>이기는 하지만,

유재하의 사랑 노래가 맞다는 후일담도 있지만,

그런 것도 몰랐습니다.

앨범을 무한대로 들으면 애상 깊은 사랑이야기가 떠오를 듯 했거든요.

테이프의 좋은점은 뒤로가기를 해도 정확하게 그 지점에 멈출 수 없다는 겁니다.

간주점프도 가능한 지금은 특별히 선택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음악 감상 방법...


지금 음악가들은 안타깝습니다.

한 곡이 아니라 한 앨범에 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건 마찬가지일 텐데, 정말 닿기 힘든 시절이 되었으니 말이에요. 경쟁, 상품, 현상... 그런 도구가 아니라 그저 음악이고 싶은 음악가들에게는 한번 듣기 시작하면 끝까지 들어야만 하는 방식의 음악감상 시절이 그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가요사에서 한 음악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담은 그 시작이 바로 이 앨범이라고 하더군요.

작사, 작곡, 노래까지 

정말 소중한 이에게 보내는 온전한 핸드메이드 선물로서의 음악은요. 

그러니 십대의 아이가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진 정성스런 편지모음을 온 영혼으로 느낀 것도 당연합니다. 

그 편지가 누구를 향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죠.

세상으로 나온 예술이란 모두의 것이니까요.

게다가 정말 좋은 예술은 정말로 많은 것을 되살려주니까 말이에요.


그래서 그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스스로 물어봅니다.

아니, 왜 못 썼느냐고 탓해 봅니다.

사랑을 주제로 쓴 것은 있지만, 분명히 유재하를 듣던 시절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소설가가 되고나서 알았거든요.

그렇게 아름답고 가슴아프고 오래 여운을 남기는 사랑 이야기는 비슷한 감정이 영혼에 닿은 적이 있어야만 쓸 수 있다는 것을요.


솔직히 사랑을 모릅니다.

슬프거나 웃긴 사랑 이야기는 좀 알지만 말이죠.


그래서 가끔 궁금합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사람의 영혼에는 어떤 부드러운 기억이 새겨져있을까 말이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죠.

유재하의 이 앨범이 많은 걸 담았다지만, 영혼에 담긴 것의 100분의 1도 담지 못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아까운 음악가...

다시 한번 전 앨범을 들으며,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그 시절 사랑 이야기의 몽상에 잠겨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가와 청소년들의 영혼에 보석 같은 사랑이 새겨지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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