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여행은 집에서 시작된다.
독서가 왜 중요한지 말해주는 사람은 많습니다.
이 말은 운동이 건강에 중요하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죠.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세세한 실천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그 첫 번째 방법은 글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요즘 사람들은 생각보다 글에 접할 기회가 적습니다.
학생들의 교과서, 사무직 직장인의 판에 박힌 보고서와 기안서 등을 빼면 말이죠.
아, 포털에 전시된 가십 뉴스들이나 웹툰, 웹소설도 글에 포함시킬 수 있겠군요.
하지만 여기에서는 문해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글들을 대상으로 삼겠습니다.
기승전결, 내적논리, 정제된 문장, 사상적 깊이, 인간과 사회와 자연에 대한 교양.
이러한 조건을 갖춘 책들. 즉, 호흡이 길어서 읽는 근력이 필요하고 읽고 나면 선순환으로 독서력이 늘어나고 어떤 분야든 이해의 폭이 넓어지며, 관련 단어들이 어느새 스며드는 그런 책 말이죠.
이런 조건에 맞는 책이라고 하면 뭔가 떠오르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추천도서' 목록 말이죠.
정확한 정보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표에 나열된 목록은 분명히 어느 추천도서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책들입니다. 굉장히 좋은 책들이죠. 개인적으로 이 책들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목록의 책을 다 읽었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아닙니다. 영 손에 안 잡히는 책들도 있고, 억지로 들었다가 내려놓은 책들도 있지요. 하지만 억지로 들었다가 완전히 팬이 되어버린 책들도 꽤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고등학생들에게 추천하겠느냐고 한다면 저는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이 추천도서 목록을 고등학생에게 권하려면 시간여행이 좀 필요하거든요.
1960년대나 1970년대에 대학에 갈 고등학생들이라면 이 책들을 무리없이 읽었을 겁니다.
대부분의 국민이 못 살던 시대, 대학 진학이 무리없는 고등학생이란 중산층 이상의 집안 출신이라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때의 중심 미디어란 책, 신문, 잡지 등의 텍스트 위주였죠. 만일 중산층 이상이 아닌데 대학 진학을 준비하게 하는 집안이었다면, 대대로 문文을 숭상하던 집안이었을 겁니다. 양반이었거나 선비처럼 한학 漢學의 뿌리가 남아있는 집안이죠. 대부분의 진학 준비생은 이 두 조건이 부합되는 집안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얼마 전에 문해력에 대해 쓴 글 중에서 '교양'이나 '분위기'가 잡힌 집안 출신이 아닌 경우, 입시 후 책읽기가 어렵다고 쓴 적이 있는데, 60~70년대의 집안 분위기는 텍스트 읽기가 기본 중의 기본이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이들 중에도 독서가들은 생각보다 흔했죠.
집안은 가난하지만 분위기는 문文에 뿌리를 둔 경우도 많았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텍스트 읽기가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만 해도 전형적인 농부, 상인, 일용노동자... 이런 어르신들이 매일 아침 신문을 열독하시던 장면을 기억하니까요. 신문은 가볍고 아무렇게나 접어도 되기 때문에 어르신들은 이 신문을 하루 종일 갖고 다니면서 읽었습니다. 게다가 신문지는 물건을 싸거나 폐지로서의 가치도 있었기에 물건을 산 사람, 파는 사람, 폐지를 줍는 사람도 눈길 가는대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신문은 당시 일종의 기본 교양으로서 실리는 글의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신문이니 당연히 뉴스가 주를 이루었고, 신문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설(논설)도 실렸죠. 사설과 혼동이 되기도 했지만, 당대 최고의 석학이라 평가받는 점잖은 분들의 에세이나 시평 등도 실렸습니다. 그리고 신문의 흥행을 위한 소설도 연재가 되었고, 음악, 미술 등에 대한 평가를 담은 평론도 실렸죠. 즉 누구나 다양한 분야의 텍스트를 매일 한 편씩은 읽었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텍스트 읽기 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세종대왕의 공입니다. 서너 살 아이들이 저절로 깨우치기도 할 정도로 쉬운 한글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신문이 흔한들 전 국민이 읽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이러한 텍스트 읽기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서울대 추천도서쯤은 가벼운 소일거리였을 겁니다.
요즘 세대에게 텍스트 읽기는 특별한 경험입니다.
어린 백성을 위하여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은 문자 기호로만 소비되고 있죠. 하지만 이를 탓할 수는 없겠죠. 누군가 말했듯, 게으름이 모든 것을 이기니까 말이죠.
하지만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피하다가 결국 건강을 위하여 억지로 운동을 시작하는 것처럼, 각자 문해력이 꼭 필요할 시간이 오기도 합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회사 일을 잘 하고 싶다거나, 하다못해 자식의 교과서를 함께 읽고 숙제를 돕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만일 어린 시절의 책읽기 능력이 사라져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라면 두 가지를 기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하루에 몇 분 혹은 몇 페이지를 정해놓고 무조건 읽기.
2. 나에게 익숙한 환경이 배경인 소설로 시작하기.
첫 번째는 운동에 필요한 근력을 키우는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어릴 때 숙제를 통해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을 늘려갔던 것처럼 말이죠.
두 번째는 레퍼런스 문제입니다.
레퍼런스 문제는 기회가 되면 또 써볼까 하지만, 어쨌든 책읽는 세포를 깨우려면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곳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어책을 읽어야 할 때, 유치원 수준의 책에서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즉, 모르는 단어가 거의 없는 책이 책읽기의 어려움을 덜해준다는 거죠.
그렇다고 성인이 동화를 읽기는 힘듭니다. 물론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이나 <사자왕 형제 이야기> 등 어른에게도 감동을 줄 만한 동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동화를 찾으려면 적어도 독서에 취미가 생길 정도의 시간이 되어야 하죠.
취향이랄 것도 없고 그저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청소년 소설'이라 이름붙인 소설 중에서 끌리는 책으로부터 시작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는 이 분야의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동화 보다는 현실적이고, 플롯도 적당히 복잡하고, 가끔은 성인에게도 해당되는 문제를 다룬 소설들이 있어서 책읽는 맛을 느끼며 읽기에 적합합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해해야 할 배경지식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청소년 소설'이기에 우리 모두 경험했던 학교, 대부분 알만한 학생 문제가 배경입니다. 모르는 단어도 거의 없는, 레퍼런스 공부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물이 많지 않아 잊고 있다가 다시 책을 펼쳐도 금방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또 분량이 많지 않으니 매일 일정한 페이지를 읽어나가면 금세 한 권을 독파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성인의 독서량을 뛰어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 문제죠.
취향에 맞는지 알기 위해 멀리 책방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청소년 소설을 검색해보면 각각의 책이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습니다.
스포는 건드리지 않지만 취향인지는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를 본 후 책을 선택해도 될 겁니다.
소설로 문해력이 완성되지는 않지만, 시작으로서의 장르로 청소년 소설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