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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Apr 09. 2020

4월 16일, 너희의 유산

-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정부, 정부를 감시하는 시민

케테 콜비츠, <피에타>

2014년 4월 16일.

그날에 인지능력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날짜일 것입니다.

가족이 아니었더라도 우리는 가슴 미어지는 고통을, 몇 달 간 이어지는 불면을, 한밤 중에 일어나 가슴에 일어나는 불을 꺼야 하는 애도의 시간을 가졌으니까요.

수학여행 간다고 나갔던 생때 같은 아이들이 한 날 한 시에......

심장없는 누군가는 교통사고에 왜 나라가 떠들썩해야 하냐, 대통령을 들먹이냐, 경제가 어렵다 이야기했지요.

우리는 일차적으로는 그들을 욕했고, 분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석하게 되었지요.

엄청난 사고가 일어나 몇 백 명이 죽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이 세계,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가슴이 미어졌을까? 왜 이 아이들을 놓치 못했을까? 왜 슬픔은 가슴 속을 파고들어가 기어이 트라우마로 우리의 집단무의식 속에 저장되었을까....... 그 이유는 우리 역시 아이들의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토록 미워하던 사람들, 그러니까 '교통사고'라던, 그래서 '대통령의 권위'를 지켜야 한다던, '경제'를 우선 살려야 한다던 사람들의 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반대편에 서있다고 주장하고 싶었지만, 우리는 계속 그들 쪽에 가까이 서 있어 권력이라는 중력이 그쪽으로 기울도록 도와준 공범이었던 것입니다.

<세월호>는 우리의 죄를 가장 아프게 드러내준 사건이었던 것이죠.


   


민주주의를 싫어하는 권력자들이 시민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입니다.

아이를 가르치거나 키워본 어른들은 잘 알죠. 아이와 대화하기 힘들 때, 말로 설득하기 어려울 때, 체력이 달릴 때, 윽박지르거나 무논리로 '가만히 있어.', '그냥 하라는 대로 해.'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는 것을요.

정치와 경제라는 단어는 동양에서는 전부 나라의 살림살이와 관련있는 단어였습니다.

그것을 하겠다고 나선 자들이 정치인이고 관료들이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귀찮아, 시민에게 윽박지르듯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정치인과 관료들은 필시 개인의 쾌락과 이익에 탐닉하게 되어 있고, 나라는 부패하게 됩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시민들은 속기 쉽습니다.

"부자 되세요~"이라는 문구에 혹해서...

"살림 좀 나아지셨습니까? 대기업을 해본 사람으로서...",  "경제 기적을 만든 독재자의 딸" 이라는 타이틀에  속아서 우리는 사람이 먼저라는 가치에 대해 '순진하다'라든가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 소리'라며 무시했죠. 그렇게 사람을 경시하는 사건들이 터지고 터진 끝에, 우리는 세월호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배에서 아이들은 그예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었다죠...

그 이후의 시간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진실 규명을 위한 싸움은 국가에서 조직적으로 막았고, 슬픔을 추스려도 모자랄 유족들이 거리에서 싸워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조용히 분노하는 것 같았지만, 그 시간 내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슴에 새겼죠.

 



지금 이 전염병의 시대에 우리가 만일 전 세계에서 가장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미리 준비한 정부를 갖게 된 것이라면, 그것은 <세월호>의 아이들을 무시하고 핍박한 권력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지켜본 정치인과 관료들의 학습효과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가 스스로 나서서 자신의 일인 양 서로 조심하고 서로를 돕는 시민이라면, 저는 그것도 가만히 수동적으로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주인이 되어 행동하라는 <세월호>의 아이들이 가르쳐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중일보
"민주적 자유는 참여 습관, 자조정신, 협력, 그리고 도덕성이 각 시민의 일상적 생각과 행동 속으로 들어가 있지 않으면 꽃을 피울 수 없다." -토크빌

              

고마움을 전한다고 해서, 슬픔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3.1절, 4.3, 4.19, 5.18.... 그것만으로 모자라 하나 더해진 4.16.......

우리나라의 봄은 유난히 잔인해서, 근대사를 생각하면 화려한 꽃들이 무채색으로 보이기까지 하지요.

하지만 올해의 봄은 슬픔만은 아니어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경제 우선을 내세우는 목소리가 분탕질을 하지 않아서,

경제를 살린다고 정말 중요한 것들을 숨기고 가만히 있으라고 속이지 않아서,

결국 이런 사회를 만들어낼 힘을 우리에게 이끌어내주어서 ... 봄날의 슬픔이 헛되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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