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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Jun 26. 2020

지구의 최빈층, 멸종위기종들

-인간인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다고..

지구, 그 중에서 인간의 밀집 서식지에 밤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인간 밀집 서식지는 십중팔구 생물도 살기 좋은 곳이라 요령 있는 것들은 어디선가 숨죽여 지냅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시간의 호르몬에 홀려, 개굴거리고 귀뚤거리죠.

요령없는 부엉이나 늑대는 견디다 못해 떠난, 이 불면의 낙원에서요...

저도 운전을 하고,

그 언젠가 깎아냈을 산 언저리에 우뚝 선 오래된 아 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벌레라면 질색이고  화분 하나 못 살리는 부자연스러운 생물이죠.

하지만 4만 마리의 흰발농게를 집단 이주시켰다는 뉴스를 읽으니, 죄책감을 외면할 수 없는 밤입니다.

흰발농게는 멸종위기종입니다.

2016년에는 해양생태지표종으로 정해졌다고도 하네요.

생물이 살기 힘든 지구에서 이런 타이틀은 중요합니다. 법적 보호장치가 되어주니까요.

일종의 생존면허라고 할까요?

아마 멸종위기종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은 4만 마리나 되는 게를 이사시킨다는 발상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래와 같은 기사도 없었을 겁니다.

물론 뉴스 거리가 될 이벤트도 없었겠죠.


헤드라인 만 봐도 대충 이해가 됩니다.

해수욕장을 활성화시켜서 관광객이 편하도록 시설을 좀 만들고 싶은데, 하필 거기에 멸종위기종이 살아있는 겁니다. 포인트는 농게가 아니라 생존 면허증을 가진 생명체라는 것이죠.

다른 갯벌이 있으니 그리로 옮기면 되겠다는 생각..

이왕이면 생태도시 이미지도 보여주자는 생각...

그래서 흰발농게 이사는 생중계되었다고 합니다.


매스컴 대부분은 환경/갯벌생물/생태 분류 속에서 명랑하고 즐거운 분위기로 보도한 것 같습니다. 이를 기획한 단체의 의도대로, 마치 100년된 초가삼간에서 강남의 초호화 아파트로 거주지를 옮겼다는 것처럼 말이죠.

jtbc 뉴스 중

하지만 그 명랑한 뉴스를 들여다보면 사실이 한 조각쯤 떨어집니다.

고작 주차장을 넓히자고 4만의 생명이 오랜 터전을 영원히 떠나야한다는 사실.

멸종위기종이 아닌 다른 생물들도 수 만이 살고 있을 갯벌.. 그 자체가 생명인 갯벌을 콘크리트로 막기 위해서 입막음을 하는 대상조차 헤아릴 수 없이 고통받는다는 것이 사실이겠죠.


아파트 단지를 짓겠다고 용역 깡패를 내세워 주민들을 쫓아냈던 그 옛날(!)의 사고방식이 겹치는 건 과민반응일까요?

넌 꽃게도 안 먹느냐고, 경제가 망하는데 사람이 먼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런 물음에 머뭇거리다가 우린 모두 공범자가 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비겁하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반발하지면, 어떤 생명도 다른 생명을 멸종시킬 권리는 없다는 겁니다.

생명은 모두 자신 외의 것을 취해 삶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주차장이 부족하다고 멸종위기를 악화시키지는 않죠.

인간은 영리하여 배고프지 않아도 먹잇감을 저장하는 죄를 짓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멸종시키고자 마음먹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불편과 가난과 욕심에 수많은 생물에다 멸종위기종 타이틀을 붙여놨죠.

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

하필 6.25전쟁 발발일에 그 기사를 봐서 더 마음이 안 좋았는지 모릅니다.

발굴사진이 유난히 포털에 많이 걸려,

가난하고 걸리적거려서 어디론가 쫓기는 흰옷의 추레한 사람들을 너무 본 탓입니다.


세계의 모든 동물은 팽창하는 인간의 바다에 쓸려나간다. 빈민도 그들과 같은 배에 타고 있다.
-<소리와 몸짓>, 칼 사피나/김병화, 돌베개, 207쪽

가난한 사람들은 쫓겨다니고,

생물들은 자연스럽게 살다가 멸종위기종이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그늘에서 이미 많은 생물이 멸종되었습니다.


우린 혜성이 아니라, 같은 DNA와 비슷한 뇌를 가진 생물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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