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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Jun 30. 2020

배려를 위한 상상력

- 시골 쥐와 서울 쥐를 떠올리며...

 옛날 캐나다에 서부에 살던 원주민들은 매해 겨울 포틀래치Potlatch라는 축제를 열었습니다.  

원주민 말로 ‘선물’, ‘베풀다’라는 뜻을 가진 이 축제는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있을 때도 열렸지만, 겨울에 족장이나 부자가 베푸는 잔치가 대표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베풂의 정도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축제의 주인은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곡식과 고기, 과일과 술을 잔칫상에 내놓습니다. 그리고 창고를 열어 귀한 가죽, 보석, 노예 등을 참석한 부족민에게 나누어줍니다. 

다른 부족장과 경쟁이 붙으면 구리판이며 카누 같은 큰 재산을 아낌없이 파괴하기도 합니다. 부족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포틀래치의 주인은 이 한 번의 포틀래치로 재산을 거의 탕진합니다. 

GLady in pixabay

포틀래치는 인류학자들에게 큰 수수께끼였습니다. 

모든 재산을 부족민에게 나눠주고 파괴하기까지 한 다음 족장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잔치인가. 인류학자들은 몇 가지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족장 간의 세력 과시, 부족 내에서 명예 유지, 

그리고 선물을 주고받음으로써 유지되는 결속감과 평화가 포틀래치의 효과라고 말이죠. 

그런데 여기에 또 한 가지의 효과가 있었습니다. 

1년 동안 누군가에게 특별히 많이 쌓인 재화를 부족 구성원 전체에 증여함으로써  

재화가 부족했던 구성원들이 살 만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지요. 

선물은 받으면 갚아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에 각자 수준에 맞게 주고받았으니, 

주는 사람의 명예는 높아지되 받는 사람의 자존심도 지켜졌고요.

ally j's  in pixabay

 포틀래치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전통을 가진 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집안이 경주 최부자 댁이죠. 

그 집 안마당과 바깥마당 사이에는 사람 주먹 하나 들어갈 만한 구멍이 뚫려있어 누구나 쌀을 퍼 갈 수 있었습니다. 

구멍 뒤주라고도 불리는 이 뒤주는 지키는 사람이 없었지요. 

대부분 사람들은 도움 받는 것을 부끄러워 합니다.

 하지만 살다보면 피치 못할 어려움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죠. 

이 뒤주는 사람을 구하되 도움 받는 이가 받을지도 모를 상처까지 배려한 마음씀씀이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시대를 초월하여 들려오는 착한 이야기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베푸는 사람의 명예가 알려지지만 그 선의를 받은 사람들의 면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개인 정보가 보호되는 선행이랄까요?


 우리는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 하여 착한 일을 권하는 문화 속에 자랐습니다. 

하지만 그 행동지침까지 있었다는 것을 아는 분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추은이불리, 불성인推恩而不理 , 不成仁.

 

동양의 고전인 <순자荀子>에 나오는 이 말은 

은혜를 베풀어도 그 방법이 도리에 어긋난다면 인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착한 일을 무조건 많이 해라가 아니라, 착한 일을 할 때도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고 가르친 것이죠. 

어려운 고전을 펼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한 편의 우화에서 그 도리를 눈치 챈 적이 있습니다.     

Grandma Moses, <마을축제>

 서울에서 서울 쥐가 시골에 놀러옵니다. 

서울 쥐는 짚자리 하나 깔아놓은 시골집과 벼 이삭 같은 깔깔한 음식에 놀랍니다. 

시골 쥐가 대접하는 모든 것들에 혀를 차며 말끝마다 서울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서울 쥐는 그런 것들을 알지 못하는 시골 쥐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죠. 

그래서 시골 쥐를 서울로 초대합니다.

 서울에 간 시골 쥐는 서울 쥐 말대로 번쩍번쩍한 건물, 넓고 깔끔한 거리, 멋진 옷을 입은 사람들, 편리한 교통수단 등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모든 것이 서울 쥐의 말 대로니 음식은 또 얼마나 굉장할 것인가 기대합니다.

 

마침내 저녁 식사 시간이 돌아오고, 서울 쥐가 안내한 식탁은 과연 대단합니다.

보기만 해도 부드러운 새하얀 쌀밥, 군침이 나오는 고기반찬들, 서울 쥐의 말에 상상만 해보았던 케이크....... 

어깨를 으쓱 올리는 서울 쥐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밥을 먹으려는 찰나, 큰 발소리가 들려옵니다. 

시골 쥐는 어리둥절한데, 서울 쥐가 시골 쥐의 꼬리를 잡아당기며 쥐구멍으로 숨습니다. 

그제야 시골 쥐는 그 훌륭한 식탁이 사람들의 것이라는 것과

 그 기름진 음식이라는 것이 마음 졸이며 먹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루가 끝나고 시골 쥐는 서울 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골로 돌아갑니다. 

거친 음식과 잠자리라도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우화는 행복이란 자신이 살던 곳에서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라든가, 

서울 쥐처럼 허영심에 으스대면 안 되겠다든가 하는 교훈을 줍니다. 

하지만 책을 덮은 우리 대부분은 다시 서울 쥐가 자랑했던 그런 환경에 살기 위해 분주하게 살아왔지요. 

어릴 적 살던 환경에 큰 불만이 없었는데도,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는 무언의 주문에 매달려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 도시의 화려한 풍경에, 잘 사는 친척 집에 눈이 휘둥그레진 경험이 한 두 번씩 있어서였을까요? 

시골 아이들은 도시를 동경했고, 도시 아이들은 더 나은 아파트, 더 나은 차를 욕망하며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동경하던 환경에서 살게 된 후에도 여전히 나아져야 한다는 갈급함은 사라지지 않았죠. 

우리는 시골 쥐를 걱정하던 서울 쥐의 한 마디를 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니,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레온 박스트, <불새> 무대 디자인 스케치


서울 쥐가 이렇게 탄식했을 때, 시골 쥐가 살던 곳은 순식간에 열악한 곳이 되었습니다. 

바로 전까지 살기에 충분했던 환경과 삶의 방식이 개선되어야 할 대상으로 바뀐 것이죠. 

타인의 생활을 개선시켜주고 싶은 서울 쥐의 그 마음은 분명히 선의였겠지만, 그것이 진짜 상대가 원하고 필요한 것이었는지는 살피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선의라는 이름으로 실수를 저지릅니다.

진짜로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서 부족해 보이는 것을 채워주려고 합니다. 

그 선의 속에 상대를 가난하게 여기는 마음이 포함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말이죠. 

그러한 경솔함으로 종종 우리는 상대의 평범함을 가난으로 결정해버립니다. 

단지 수수하고 초라할 뿐인데, 그것을 불행으로 바꿔버리는 것이죠. 

그러니 선의를 행할 때는 한 번 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려 해도 쉽지 않습니다. 

역지사지에 필요한 능력은 상상력인데,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그럴 여유가 없어진 것이죠. 

그럴 때는 나와 상대가 전혀 다른 종種이라고 생각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인간과 인간이 아니라, 가령 새와 말 같은 존재라고 한다면, 

상대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Kevan Craft in pixabay



공간은 모든 동물의 삶에서 주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모든 동물이 똑같은 방식으로 공간을 경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 <떡갈나무 바라보기>, 주디스 콜, 허버트 콜 지음, 후박나무 옮김, 사계절, 31쪽  


 <떡갈나무 바라보기>는 인간과 애완견의 세계가 얼마나 다른지 살펴보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고 생각하지만, 인간과 개가 느끼는 공간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줍니다. 

서로 사랑하지만 인간과 개는 전혀 다른 세상 속에 살고 있지요. 

책은 개에서 개미로, 원숭이로, 떡갈나무로, 오리로, 여러 세계의 환경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얇은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행성이 수 천 수 만 개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동물, 식물, 곤충의 세계를 종횡무진 하다가 돌아오면 

드디어 곁에 있는 인간에 대한 상상력이 열리게 됩니다. 

적어도 사람은 같은 종種이니까 상상하기가 더 쉽죠. 열린 상상력으로 상대를 보고 행동하면 

그의 행복과 가치관, 그의 세계가 온전히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한 번 더 상대를 생각할 때, 우리의 모든 행동에는 배려가 스며들어 있겠죠. 

딱히 선한 행동이라 생각하지 않아도 상대는 그 배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지 모릅니다.  

Granma Moses, "It Snows, Oh It Snows"


                                                             - 이 글은 <살맛나는 세상, 1~2월호> 에 실렸던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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