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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Sep 18. 2020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free but lonely

낯익은 제목의 드라마를 보게 되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왠지 프랑스 여배우 같은  소설가 프랑스와즈 사강의 유명한 소설과 같은 제목 같죠?

하지만 드라마 제목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물음표입니다.

말줄임표와 느낌표, 그러니 엄연히 다른 제목.......

저는 누벨바그 시절의 프랑스 영화처럼 프랑스 소설도  잘 읽히지 않지만,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반짝이던 시절의 파리 문화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기는 합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이러한 멋진 말로 자신을 옹호할 수 있는 소설가이니,

소설 제목 정도는 알고 있죠.

제목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센스 있는 작가들은 제목을 참 잘 짓습니다.

여기서의 센스란 사람을 유혹하는 기술 같은 건데,

약물 중독으로 끌려가면서도 저렇게 멋진 말을 할 수 있는 수준이니 제목 정도는 쉬웠을까요?

하지만 소설 제목으로 끌려온 '브람스'는 그런 센스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스틸 컷

그러고보니, 제가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이유와 지금도 챙겨 보는 이유가 같네요.

물론 처음에는 브람스 음악이 나오는 드라마를 기대했지만,

사랑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도 계속 보았던 건

브람스처럼 센스없는 사람들의  드라마라고 느꼈기 때문이지요...


여기 주인공들이 약삭 빠르거나 유혹의 기술이 있거나 하지 못한.. 한 마디로 곰 과인데,

이 둘을 연기하는 두 배우도 제가 느끼기에는 곰 과인 것 같기에

픽션과 현실이 비슷하다고 느껴졌어요.


두 배우...

얼굴은 낯이 익은데, 이름은 지금 검색해서 확실히 알았습니다.

박은빈, 김민재.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지만 텔레비전을 안보는 도 아니고,

이렇게나 예쁘고 멋지고 젊은 배우들인데, 얼굴은 낯익고 이름은 모르다니...

얼굴이 낯이 익은 건 그들이 자주 나와서가 아니었어요.

좋은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름을 모른다는 건, 그들이 스타가 되는 작품만 선택한 것이 아니라

연기자로서 자신의 길을 찾아갔다는 의미라고 마음대로 해석했지요.

물론 스타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캐스팅이 안 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보여주었던 모습들을 볼 때 곰 같이 걸어갔다는 것은 알겠더라구요.


드라마 속 인물들의 요령 없고 답답한 모습과

현실 속 배우들의 우직하고 곰 같은 행보가

그 자체로 '브람스'처럼 느껴졌습니다.


젊은 시절의 브람스

좀 덜 고전스럽고 덜 곰 같아 보이기 위해 젊은 시절 사진을 찾아봤습니다.

뭐... 발랄하거나 센스있어 보이지 않는 건 인생이 스포인 탓이겠죠?

전 브람스를 낭만파에 끼워넣을 때마다 화들짝 놀라는데요,

아무리 들어도 그의 음악은 그가 평생 존경했던 베토벤과 쌍벽을 이룰만큼 웅장하고 심각하게 들립니다.

한 교향곡을 20년 동안 쓴다고 남들은 놀라는데,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저는 안 놀랍니다.

그 소심한 마음을 너무나 잘 알겠고,

저 역시 기본 decade 단위로 품고 있는.......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어>

 내 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작품을 어떻게 세상에.......

예술은 신성하고 독자는 위대하니까, 최대한 정성을 다해 한 땀 한 땀....

그런데 요즘은 그런 걸 싫어한다고 합니다.

사실, 아주 오래 전부터 들었던 충고였죠.

작품 보다는 유명세가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아주 많이 들었고요.

하지만 알아도 곰 과들은 할 수가 없습니다. 유혹을 책으로 배우면 참사밖에 더 나나요?

그러니 하던대로 곰 길을 가는 수밖에요.

출처: 책식주의
출처: 인터파크

니체는 진지한 노력이나 철학 등을 무시하는 가벼운 세태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지만,

저는 여우에 대해 '르상티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대로 반성합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더라고요.


만년의 브람스

물론 브람스는 천재 곰이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아직까지도 가슴 뭉클해하며 음악을 듣고 있겠지요.

여우 같은 소설가의 소설 제목에도 등장하고, 드라마 제목에도 등장하고 말이죠.

그리고 드라마의 배우들도 천재라고 생각합니다.(벌써 외모부터..)

제임스 터렐 <구겐하임>

언택트 시대라 전시회도 공연도 온라인으로 본다고 하지만,

저는 그 효과를 믿지 않습니다.

영상으로 분리될 예술은 이미 분리되어 나갔고,

그 나머지들이 어렵게 순수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명맥을 이어가고 있던 것이니까요.


예를 들어, 제임스 터렐의 작품은

진짜 전시장에 가서 봐야 혼이 빠질 만큼 충격적인 예술적 경험을 얻습니다.

연극도 뮤지컬도 무용도 콘서트도,

다 현장의 호흡이 필요한 이유가 있는 거라고 믿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편리성이나 '좋은 게 좋은 것'에 다 퉁 쳐버리려 하죠.

제가 가고 있는 글이라는 예술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만,

곰은 곰이니까, 북극곰처럼 빙하가 다 녹아도 저는 북극에 남으려 합니다.


그리고..

저는 천재 곰은 아니지만,

눈물겹게 그 길을 걷고 있는 곰들을 보면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요즘 드라마 치고는 느리디 느린 연애 이야기를 보고 있습니다.

브람스의 로맨스에서 차용한 것 같은 삼각 로맨스 때문이 아니라,

곰 과인 브람스를 닮은 등장인물과 배우와 그리고 예술을 대하는 신산한 삶에 대한 상념 때문에요.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
브람스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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