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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Sep 27. 2020

환상이 사라진 곳, 유일한 진짜 위로

삶을 살아내는 사람.

사람은 언어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마치 책처럼, 스스로 만들었으나 그것으로 발전하는 것이죠.

그래서 단어들은 생각보다 의미심장합니다.

Life 와 live가 유사성이 있듯이,

삶과 사람도 그렇게 보입니다.

삶은 살다의 명사형인 동시에 사람의 줄임 형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인간이란 한자어가 사람의 공간적 양식을 정의내린 것이라면 사람이란 시간적 양식을 정의한 것 같습니다.


'인간' 과 '사람'을 함께 쓰는 한반도의 호모 사피엔스가 생각하는 종 정체성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사람 사이의 공간에서

시간적으로 생명을 붙들고 살아내는 존재.


늑대처럼 무리지어 사는 우리는 공동체를 자키려 하고, 교류를 못하는 상황에 괴로워하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삶 자체가 존재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쉽게 잊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비인간적이라 죽고싶다고 하지만, 실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사람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묻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도 합니다.

괴로움이 계속 되면 삶이 벌을 받는 것처럼 느껴져 살아있을 이유를 찾지 못하기도 하죠. 인생이라면 뭔가 좀더 기쁨이 커야할 것 같은데, 반복되는 괴로움과 불안 때문에  현실에 절망도 커집니다.  행복해지고자 하는 그 마음을 환상이라 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한 많은 이 세상'이라는 노래가 절절하더라도 살아갈 무언가를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됩니다. 


君子无中心之憂則无中心之智,
无中心之智則无中心之悅,
无中心之悅則不安,
不安則不樂, 不安則不德

군자는 마음의 근심이 없으면 마음의 지혜가 없고,
 마음의 지혜가 없으면 마음의 기쁨이 없다.
마음의 기쁨이 없으면 불안하고,
불안하면 즐겁지 않고, 즐겁지 않으면 덕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최경열, <기록자의 윤리, 역사의 마음을 생각하다>, 233쪽



군자의 기쁨은 근심에 있다는 고대 유교 경전 인용문을 보았습니다. 근심은 누구나 피하고 싶은 것인데, 기쁨의 근원이 불안을 일으키는 근심이라니.... 그러고보니, 신영복 선생님도 무일無逸에 대한 강의에서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생은 불편함의 연속
-신영복, <강의>


불교의 고해와 비슷한 듯 하지만 그보단 쉽게 이해가 됩니다. 

가령 내가 아이 엄마라면, 아이에 대한 근심이 보살핌을 만들고 그것이 아이를 안전하게 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웃으면 나는 진정으로 기쁘겠지요. 받아들이면 어떤 불행이나 근심도 그저 맞이할 수 있게 됩니다. 괴롭고 가슴 미어지지만, 그것이 삶이라고.. 그래도 살아가는 게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행복과 풍요 속에 살아야 행복하다는 환상을 깬다면요...


저는 원하는 대로 하라는 위로를 잘 안 믿습니다.

삶이 단편이 아니라 이어지는 것이기에,

당장 때려치우고 훌쩍 떠날 수 없고,

죽기 전에는

거추장스럽다고 사람들을 외면할 수도 없죠.


쿨하고 냉소적이라는 말이

삶에 진지하지 않다는 뜻으로 쓰이는 것도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자기 책임인 인생에 깔끔하고 단정하기만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기에 버리고 포기하는 위로는 도망치는 것이라 생각하죠.


결국 사람은 요즘 말로 존버할 수밖에 없는 존재고,

어느 시대 누구나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괴로워하며 사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나쁠 때도 있지만, 좋을 때도 있는 게 인생이라고 하니까요.


<악마의 사전>이라는 냉소적인 단어장을 만든 미국 작가 앰브로스 비어스도 이 하나의 단어에 대해서만큼은 따뜻하게 풀었습니다.


등: 고난이 닥쳤을 때 의지할 특권이 있는 친구의 몸 한 부위


모든 환상이 사라지고 도망칠 수 없어도 우리에게 위로가 남아있는 이유는 우리가 사람인 동시에 인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공간적으로 얽히고 설키며 맺어진 친구가 하나는 있는, 그런 존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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