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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Oct 01. 2020

한 나라의 전체 지식의 양

2. 한 나라의 지식의 양은 얼마나 될까?

찾고 싶은 책을 찾지 못하게 되는 일이 많아지자, 도서관이나 대형 서점에 갈 때마다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책이 많은데, 왜 필요한 책은 없는 것일까? 책이란 우선은 정보를 말하는 건데, 어떤 분야의 정보는 왜 아예 없는 것일까? 이 생각은 필요한 지식은 모두 갖고 있다는 도서관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

보석으로 치자면 도서관은 보석상에 해당됩니다. 시중에 있는 모든 보석을 모아놓을 수 있는 곳이라 해도 일단은 보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보석을 얻으려면 원광석을 가공하는 사람들을 통해야 합니다. 원광석조차 없다면 보석은 기대할 수 없죠. 그 원광석이란 책에 있어서는 사람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나 혹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팀 말이죠. 그래서 좋은 출판사들은 하나의 연구소를 꾸준히 지원하며 좋은 원광석을 모으곤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출판사들이 있지요. 우리가 지금 고전, 사회학, 역사학 등에서 쉽고 좋은 우리 저자의 책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은 그런 출판사들의 발굴 노력 덕분입니다. 그들이 캐낸 보물들이 우리나라 전체의 지식知識의 양과 질을 풍부하게 만들어준 것이죠.  


예전에도 지식을 모으고자 하는 노력은 많았습니다. 역사 이래로 강력한 나라,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왕들이 있었던 나라에는 빠지지 않는 유물이 있습니다. 책과 도서관입니다.





집현전 직제학 김돈(金墩) (중략) 등에게 일을 주장하게 맡기고, 경연에 간직한 《효순사실(孝順事實)》·《위선음즐(爲善陰騭)》·《논어》 등 책의 자형(字形)을 자본으로 삼아, (중략) 주자(鑄字) 20여 만 자(字)를 만들어, 이것으로 하루의 박은 바가 40여 장[紙]에 이르니(하략) 
–세종실록 65권, 세종 16년 7월 2일 정축 1번째 기사
        

흔히 집현전은 학자들이 공부를 한 곳으로 알고 있지만, 동시에 책을 만드는 출판소 겸 도서관 역할도 했습니다. 공부에 까다로운 세종대왕이 고르고 고른 천재들을 모아놓은 집현전이니, 지식을 모으고, 널리 퍼뜨리는데 온갖 정성을 다했다는 것은 자명하지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인류 최초의 도서관이라고 알려져 있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알렉산드리아 항에 정박한 배의 책(양피지)을 모두 수거해서 지식을 저장했습니다.

물론 약탈이라는 말을 피하기 위해 솜씨 좋은 필경사에게 완벽하게 베끼게 해서는 원본을 남기고 필사본을 원 주인에게 돌려주었다고 하죠.






지혜의 전당

고대 아바스 왕조의 '지혜의 전당'은 외국어 전문가들이 번역에 몰두한 곳이었지만, 그렇게 번역한 책들을 모아놓기도 했으니 당시 세계의 모든 지적 자산을 수집하고자 한 왕조의 집요한 열망을 알 수 있는 도서관이었습니다.






이러한 도서관, 지식을 모으는데 늘 배고파했던 도서관들이 왜 필요한지는 역사가 말해줍니다. 모아놓은 지식은 대부분 먼지가 쌓이고 찾는 사람이 없을지 몰라도, 임자를 만나는 순간 그 빛을 발하게 됩니다. 왕조의 주인도 상상하지 못한 시너지가 그 지식을 갈망하는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 폭발합니다. 그렇기에 찬란한 문명들은 지식을 모으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옛날과 다릅니다.

예전에는 인쇄술이 국가 기밀인 때도 있었고 책이 귀한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책이 넘쳐납니다. 필요한 책이 없을 리 없을 것 같은 착각을 줄만큼 차고 넘치도록 많죠. 그래도 왜 필요한 책이 없다고 할까요?

출처: 알라딘

이 시대의 책은 상품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팔리지 않으면 사라져야 하는 운명이지요. 그래서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국립중앙도서관에 가게 됩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하는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가 지식을 모으는 일이라, 발행된 책 대부분은 그곳으로 가니까요. 사라진 책이라도 그곳에는 남아있는 것이니, 지식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예 만들어지지 않은 책은 그곳에도 없습니다.

광활한 우주에 분명히 존재하는 정보지만 우리는 찾을 길이 없는 것이지요. 그 지식이 있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그 정보를 활용한 기술과 업계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뿐입니다. 그 정보를 흡수하려면 그 도제방식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죠. 마치 예전 조선 도공들의 기술처럼, 유명한 요리사의 비법처럼, 입에서 입으로, 손에서 손으로 전수되고 있을 뿐이라는 겁니다.


그 분야에 유명한 사람이 없어서, 그 분야의 예상 독자가 거의 없어서, 그 분야를 쓰고자 하는 사람도 없어서.

사장되는 지식이 얼마나 될까요? 전문 영역이니까, 전문가들끼리 잘 배우고 익히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진짜 좋은 지식과 정보는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잠재력을 위해 수집하는 것입니다. 흔히 영감이라고 하는 것은 無에서 오지 않습니다. 출처조차 잊은 양질의 지식의 혼돈 속에서 번뜩 다가오는 것입니다. 수많은 예술가들,  우리 사회가 그토록 대단하게 여기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도 도서관에서 읽은 잡다한 정보들을 통해 두뇌에서 뭔가가 일어났을 겁니다. 

그러기에 저는 전문가들이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곧 절판이 되더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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