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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Oct 03. 2020

조금은 짓궂은 인생의 미소

원하는 것과 좋은 것

옛날 아라비아 어느 바다 깊은 곳에 항아리 하나가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항아리는 솔로몬 왕의 저주로 봉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마인이 갇혀 있었죠.

그렇게 1800년 째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항아리 뚜껑이 열렸습니다. 어느 늙은 어부가 호기심에 구리 항아리를 열었던 것입니다. 그 오랜 세월, 솔로몬 왕의 저주 때문에 좁은 항아리에 갇혔던 마인은, 뜻밖의 거인에 혼이 빠진 어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은혜를 갚기 위해 네놈을 죽이겠다.


서봉재 그림

기다리고 기다렸던 일이 생겼지만, 기쁨보다는 원망이 많은 마인... 어릴 적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을 어른이 되면서 알았습니다.

간절하게 원하는 것 때문에 힘들었던 시간을 겪으면서 말이죠.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살면서 느낀 것은 간절한 모든 것들이 제 옆을  떠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욕망이 곧 괴로움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정말 비울 수 있는 인생이 있을까요? 특히나 젊음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말라는 건 너무 어렵죠.


저도 정말로 간절하게 원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지독하게 붙잡고 매달리고 집중했지만, 잡혀주었던 것들은 하나도 없었죠. 작게는 글에 대한 열망이었지만, 남들에게는 쉬운 것조차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내 인생만 불공평하다고 운 날도 많았습니다. 이제는 그런 절망 속에 다소 과장된 자기 연민도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절대적인 불공평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인생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간절히 불러야 하는 그런 운명들이 있죠. 어린아이라면 가져야 할 부모, 건강, 최소한의 의식주, 최소한의 평화... 다행히도  그 모든 것 전부를 다 애써 가져야 하삶은 아니었지만, 단 몇 가지가 비어 있었던 것만으로.. 인생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당연한 것들조차 붙잡히지 않는데,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야 말할 가치가 있을까...

실은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내 것이 아닌데 인생을 걸고 최선을 다했던 시간들.. 손에서 빠져나가는 희망 앞에서 마지막을 생각했던 날들이...


..마지막으로 100년만 더 기다리기로 했지. 이번에 구해주는 사람에겐 무슨 소원이든 다 이루어 주기로 하고...... 나는 그때까지 1300년 동안이나 항아리 속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번에는 만일 나를 구해주는 녀석이 있으면, 당장에 죽여버리기로 결심했다.
-<항아리 속 마인>, <아라비안 나이트 > 백시종 옮김, 국민서관


그렇게 저는  마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죠. 아마 지금도 그 이해를 얻어가는 젊음이 있겠죠?

저는 몇 번이고 바닥으로 고꾸라지며 그 시간들을 지나갔습니다. 고비를 넘길 때마다 조금씩 시야가 넓어져서 기다림의 인생이 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생이 주는 미소 같은 것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마인처럼, 지옥도 제법 적응이 되었는데 적선하듯 던져주는 빛이 얄밉기도 했죠.

짓궂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신비롭다고 느낀 건...
그토록 간절하게 바랐던 것들이... 다 잊어버린 순간에 되돌아오는 것을 경험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이제는 간절하지도, 사실은 바라지도 않게 된 것들이 곁으로 다가오는데.. 전혀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랬기에 생긴 보너스가 있었습니다.

바로, 여유...

너무나 크고 대단하고 나를 작게 만들었던 것들에 휘둘리지 않는 여유. 그것에 인생을 논하지 않을 거리감...

간절하게 떨리는 마음이 사라진 채 내 곁에 온 소원을 내려다보며, 다만 짓궂다고 인생에게 한번 말해줄 뿐이었습니다.

뒤늦게 온 소원은 철 지난 부채처럼 이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지도, 빛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겨우 내 몫이 된 그 소원을 자세히 보게 됩니다. 그것을 간절하게 원했을 때, 진심으로 원했던 감정은 행복이었는지도 몰랐다는 것을 깨달으면서요... 어쩌면 그때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몰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령, 목숨 대신 좋은 글을 원한다는 제 치기 어린 소원은 실은 좀 더 행복한 인생에 대한 포장지였을지도...
그저  붙잡게 되면 인생이 환해질 것 같아서,
인생의 환상 같은 것을 원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좋고 싫음이 없는 시기에  것들은 인생의 속 깊은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 돌려줘도 괜찮고 다시 떠나도 마음의 동요가 없는 평온함으로, 제대로 그것을 다룰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인생의 지혜는 늦게 찾아오고 그것도 괜찮은 일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실은 아직도 오롯이 앓고 난 에는 인생에게 불평을 합니다.
간절하게 불렀을 때, 단 하나라도 내 손을 붙잡아주었더라면
나는 좀 더 생생하게 행복해지지 않았을까?
나는 좀 더 격렬하게 불행해지지 않았을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이 끝나기 전에는 누구나 젊음이 남아있고, 인생을 바치고자 하는 어리석음도 여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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