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시작되고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뭐, 굳이 결심을 하지 않아도 언제나 방학이 시작되면 첫 주는 아프거나 지치거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주로 누워서 지냈지만, 이번 방학에는 정말 머리와 마음을 온통 비워낸 채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열심히 신생아처럼 지냈다. 틈만 나면 잠을 청하고, 잠에서 깨면 휴대폰으로 유행하는 드라마를 보는, 상상만 해도 마음이 붕 떠오르는 시간을 계획했다.
그런데 12월 말에 이어서 지난 일요일에 또 두통이 왔다. 나무와 성당에 갔고, 차를 가지고 가지 않았고, 버스도 오지 않아서 걸어가기로 했다. 조금 멀었지만 큰 길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되었다. 맞은 편에서 오는 차의 헤드라이트가 부담스럽다고 생각될 즈음 바닥의 블록들이 일그러져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는 내 두통의 증상을 알고 있다. 나무에게 전조 증상이 왔다는 사실을 알리고 손을 잡아 달라고 했다. 올해 6학년이 될 예정인 첫째는 까불까불 딴소리를 하다가 내가 심상치 않아 보였는지 손을 내밀었다.
밖에서 엄마랑 손 잡는 걸 참 싫어하는 아이인데 나는 두툼해진 나무의 손을 잡았다.
맞은 편 차도에서 오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힘들다고 하자 나무는 자기 팔을 잡고 눈을 감으라고 했다.
그렇게 40분이 넘는 길을 아이의 팔을 잡은 채 정말 눈을 감고 걸었다.
날이 포근했지만, 하늘은 흐렸고 어딘지 스산한 날이었다.
그런데 나무의 팔을 붙잡고 눈을 감고 집까지 걷는 동안 내 몸이 점점 아이에게 기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손을 잡고 걸었는데 집 근처까지 왔을 때 나는 두 손으로 아이의 팔을 부여잡고 걷고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무가 벌써 이렇게 컸다고? 덩치만 컸지 정말 아직도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무 덕분에 나는 집에 오는 길에 두통 때문에 무섭지 않았다. 우리는 평소에 친구처럼 많이 싸우는데 그날 나무는 정말 친구 같았다.
내가 낳은 나무. 나무도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며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져서 참 좋았다.
어제는 나무의 생일이었다.
2011년 1월 12일엔 참 추웠는데.
나무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