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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위 Dec 15. 2022

그리운, 다정함

눈이 온다. 그것도 아주 많이. 


12월이 되면 언제나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정신 없고 조금은 쓸쓸했는데. 

올해는 유독 쓸쓸하다. 


아주 빈번하게 편두통이 오진 않지만, 매일 출근길에 컨디션은 최악이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어떤 냄새를 맡는데, 매번 다른 냄새이지만 매번 긴장한다. 이 냄새가 또 편두통의 트리거가 되면 어쩌지. 그런 불안을 안고,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버스와 버스와 지하철과 경전철과 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한다. 


내 의지로 학교를 옮긴지 1년이 다되어 간다. 그리고 나는 초빙해지로 내년에 다시 학교를 옮길 예정이다. 

초빙해지의 사유는 편두통. 출근길이 멀어지면서 올해 유독 많이 아팠고, 가을이 시작되면서부터는 감당할 수 없을만큼 두통이 잦아졌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시각훼손 전조증상이 두려워서 운전도 못하게 되었고, 나는 매일 편도 한시간 40분 거리를 대중교통으로 이동한다.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한 이유가 비단 편두통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1년여의 시간 동안 학교에서 겪은 일들의 대부분은 편두통의 횟수 증가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많이 울었고, 많이 절망했고, 의미를 찾으려고 부단히 애썼고, 그리고 어느 순간 체념했다. 그렇게 1학기를 보내고, 2학기를 맞았는데 더 버틸 수는 없었다. 새 학교에 적응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지만, 이 학교에서 나는 참 외로웠다. 울컥 하던 어떤 마음들을 꾹. 꾹. 누르고 또 누르며 버텼고, 버티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서인지 깜깜한 새벽의 출근길이 더 시리다. 


부끄럽지만. 

올해 3월 2일의 출근길을 기억한다. 새벽에 광역버스에 앉아서 학교로 향하는 길 위에서 내 마음은 퐁퐁 뛰고 있었다.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까. 어떤 동료들을 만나게 될까. 설레고 또 설레었던 것 같다. 처음 타보는 우이경전철도 신기했고, 학교가 산 아래에 있어 공기가 참 좋다고도 생각했다. 너무나 당연히 그때의 나는 12월의 나를 알지 못했겠지만, 그때의 나는 분명 12월의 나가 이렇게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학교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의 일에는, 어떤 흐름이 있는 것 같다. 

다 지나고 나면 찾을 수 있지만, 그 일을 겪는 동안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가는지 가늠이 잘 안되는 그런 흐름 말이다. 


올해 2월에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3월에는 쉬는 시간마다 병원 예약을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에 전화를 했었다. 

여름 방학을 앞두고, 아버지는 수술을 하셨고

이를 악물고 2학기를 버텨낼 때 아버지는 항암을 하셨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검사에서 아버지의 암세포가 전이 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 몇 번이고 무너졌지만 우리는 잘 버텨낼 것이다. 

말은 하지 않지만 우리 가족 사이에 다정한 무언가가 전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일 모레, 오빠가 결혼을 한다. 

영영 결혼을 안할 것 같던 오빠가, 결혼을 한다. 

과묵한 오빠는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그의 어떤 다정함이 아버지에게 전해지고 있을 것이다. 


눈이 많이 온다. 

눈이 온다고 폴짝 폴짝 뛰며 좋아할 나이는 아니지만,

눈을 보고 있는데 무엇 때문인지 자꾸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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