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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동재 Nov 05. 2022

책임없는 시스템

1.

이제 조금씩 정신이 든다. 지난 일주일간 그날의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지만 되레 무력감이 쌓여간다. 이태원에서 일어난 비통한  뿐만 아니라  이면에 진실들까지 포함해 더욱  참사처럼 느껴진다. 지난 일주일간 많은 시민들이 그러하듯 ‘책임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영어로 책임을 나타내는 단어는 크게  가지가 있다. 하나는 responsibility  하나는 accountability. 비슷한 듯하면서  단어의 뉘앙스가 미묘하게 다른데       


한국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라고 보나요?”

“이렇게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요?”


responsibility는 response + ability 이니까 반응하는 능력인데 직무수행을 통해서 결과에 공헌하는 책임을 말한다.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내가 이 역할을 맡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왠지 이 정도까지는 커버해야 할 것 같은데' 라고 할 때 그 정도. 책임감에 가까운 개념이다.     


“질문 나온 걸 다 소화해야 하는 건가요?”


accountability는 account + ability 이니까 설명하는 능력인데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만들어내야 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뜻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법률은 안전에 대해 더 높은 수준의 책임을 요구한다’고 하면 이때 책임은 accountability다. 그래서 accountability를 성과책임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냥 여기서는 책임성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매뉴얼이 없어서’, ‘행사 주최가 없어서’, ‘권한이 없어서’ (책임지지 못하겠다)라는 것은 책임(accountability)을 회피하고 싶어서 책임(responsibility)이라는 영혼을 팔아버린 기계에 불과하다는 걸 의미한다. 설명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상황(112 녹취록 공개)이 도래하고 나서야 뒤늦게 공직자로써 무한한 책임감(responsibility)을 느낀다고 말했지만 이미 늦었다.     


책임(responsibility)은 없고 책임(accountability)만 전가하려고 하니 그 책임(accountability)마져도 없는 사회. 당연하게도 일선 경찰관 한명 한명의 잘못이기 보다 충분히 예측 가능했고 약한 신호가 있었지만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시스템의 잘못이라는 게 밝혀지고 있다. 결국 시스템이 잘 작동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야할 책임이 있는 고위공직자가 처음부터 책임지고 사과했어야 했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이 누구 하나 사퇴한다고 끝날 일은 아닌 것 같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할까?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야 위험을 더 잘 관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저런 공직자들을 더 이상 보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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