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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동재 Mar 08. 2023

노동시간 개편안을 비판한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라고 한다. 주 최대 69시간을 일할 수 있게끔 하자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이 확정되었다. 국회통과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측되지만,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대응으로 지지율에 재미를 본 윤석열 정부는 노동 의제를 저글링 하듯이 흔드는 모양새다.


사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당시 이미 공언해왔던 공약이기도 해서 그리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다만 그때도 의아했던 건 하필 예로 들었던 것이 게임산업이었다는 것이다.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당시 대통령 후보의 살벌한 노동관은  2016년에만 게임회사 직원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돌연사했던 현실과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어서 '시대착오도 정도가 있지' 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의식의 흐름대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노동시간이 그렇게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건가? 근데 노동시간 이야기 누가 처음했지? 아마도 프레더릭 테일러? 테일러가 살아 돌아온다면 뭐라고 말할까? 갑분 테일러로 점프해서 테일러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1. 테일러는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최초의 경영컨설턴트다. 테일러주의는 테일러 이후 더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왜곡되지만 정작 테일러 자신은 경영자와 노동자의 협동과 이익공유에 진심이었다.


2. 1911년 쓰인 과학적 관리론은 알려진 것처럼 현대경영학의 출발을 알리는 이론인데, 실제로 포디즘으로 대표되는 테일러의 성공방정식은 미국을 패권국가로 만들어내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과학적 관리론은 사실 ‘사람들이 왜 열심히 일하지 않을까?’라는 굉장히 순수한 질문에서 출발해서 본인의 컨설팅 경험과 이론을 펼쳐나가는데,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로봇에게나 요구할 법한 ‘모던타임즈’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당시 미국은 여성참정권조차 인정되지 않았던 시대적 한계가 있었다.


3. 누군가는 노동자를 해방시킨 것은 맑스가 아니라 생산성의 증대로 높은 임금을 보장하고 여가시간을 가져다준 테일러라고도 하는데, 실제로 ‘지식노동자’개념으로 21세기 경영학의 문을 연 드러커는 테일러를 비판할 것 같지만 당시에 직관에 의존해왔던 경영에 지식을 응용한 테일러를 프로이트, 다윈과 더불어서 현대 세계를 창조한 사람이라고 상당히 리스펙트 했다.


4. 테일러의 과학적관리론은 단순히 시간연구나 동작연구뿐만이 아니라 매뉴얼워커를 동기부여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론들도 제시한다. 다만 지금은 유효하지 않은 것들이 테일러의 망령이 되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경영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여전히 많다. 대표적인 것이 탑에서부터 캐스케이딩(Cascading)되는 목표관리, KPI나 목표달성도에 의한 실적평가, 그에 의한 인센티브 같은 것들이다.


위에도 썼지만 재미있게도 테일러는 생산성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가 말하는 과학적관리론을 적용한 공장들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줄어들었고 임금은 늘어났다. 테일러는 심지어 피로도에 대한 연구도 했다. 무거운 물건을 들고 있는 동안 팔근육조직이 퇴화될 수 있으므로 충분한 혈액공급으로 근육조직이 평상시 상태를 회복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어야 한다며 잦은 휴식을 취할 수 있게끔 작업자에게 습관형성을 유도하기도 했다.


이런 테일러가 2023년 대한민국에 다시 돌아온다면 어떤 말을 하게 될까?


우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노동시간에 대한 논의가 그렇게 의미 있는 상황인지 질문할 것이고,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노동시간이 증가한다는 건 생산성 향상과 음의 상관성이 있다는 것을 밝혀낼 것이고,
주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고 했을 때 69시간은 어떤 과학적 근거에 의해서 나온 것인지 질문할 것이다.


테일러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일수도 부정적일수도 있지만, 테일러는 컨설턴트 이전에 적어도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관찰한 조직장이었다. 노동시간 개편안은 누구를 위해서, 어떤 고민의 결과인걸까? 테일러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노동시간 개편안은 그 누구도 이롭게 하는 안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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