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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yoon Apr 13. 2020

일단 써보자

결과가 아니라 그 변화에 집중하는 것

김연수 작가는 '소설가의 일'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다리가 불탔으니 이로써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누군가 고민할 때, 나는 무조건 해보라고 권하는 편이다. 외부의 사건이 이끄는 삶보다는 자신의 내면이 이끄는 삶이 훨씬 더 행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심리적 변화의 곡선을 지나온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도 없겠지만 성장도 없다. 하지만 뭔가 하게 되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 심지어 시도했으나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조차도 성장한다. 그러니 일단 써보자. 다리가 불탈 때까지는 써보자. 그러고 나서 계속 쓸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자.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 하고 싶다면, 일단 해보자. 해보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달라져 있을 테니까.

결과가 아니라 그 변화에 집중하는 것. 여기에 핵심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식날 받은 표창패

대통령 훈장도 아닌 이 표창패를 25년이나 간직하고 있다니, 아직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쉬이 버리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나에게 글쓰기란 각종 상장을 받기 위한 수단이었다. 상장은 홀로 세 딸을 키우며 고생하는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는 수단으로 이어졌다. 비록 이 마지막 표창패를 받아보지 못한 채 엄마는 위암 말기의 고통 속에서 나의 졸업식에도 참석 못하고 아빠가 계신 곳으로 영영 그렇게 떠나가셨지만..

그 이후로 글쓰기란 걸 잊고 지낸 세월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일단 쓰기 시작한 건 '결과가 아니라 그 변화에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갈망하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건 어찌 막을 도리가 없는 내 본능이다.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계속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내 처지에 도저히 불가능이다, 아니다 라는 생각을 접었다 폈다를 수십 번, 어느새 대학원 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 당시 두 딸을 키우며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고, 회사에서는 회사일에 소홀할 수 있다는 명분으로 개인적인 학업을 못하게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대학원 수업은 매주 목요일 하루를 비워야 했다. 현실적으로 답이 안 나오는 문제였지만, 일단 풀어보자고 패기 있게 저질렀다. 회사에 사실을 숨기면서 대학원 수업을 해나간다는건 상상 이상으로 힘겨웠다. 처음에는 연차를 내고 수업에 참가하고(매주 목요일 연차를 낸다는 건 나 지금 딴짓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었기에 한 달에 한번 연차를 활용했다), 외근이 많은 영업부라 외근 나간다 하고 수업 듣다가 팀장한테 전화가 오면 빛의 속도로 밖으로 튀어나가 전화를 받기도 했다. 정말이지 몸과 맘이 하루가 다르게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겨우 한 달 만에 넉다운이 되기 일보직전이었고, 처음의 그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최후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팀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사실을 털어놓고 회사를 그만두라면 그만두겠다는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다. 팀장은 쿨하게 자신만 아는 걸로 하고 나에게 목요일 자유를 허락해 주었다. 대신 팀장의 각종 보고 업무를 도맡아 작성해 주었고,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대학원을 무사히 다닐 수 있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고리타분한 말이 나에게 딱 맞춤형으로 다가온 일이었다




어쩜 다들 이렇게 글을 잘 쓰는 거지? 단어와 문장들이 기가 막히게 표현된 브런치의 글들을 읽으면서 괜히 주눅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쓰자. 나의 경험들이 녹아든 생생한 (비록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일지라도) 스토리를 기록으로 남기자. 그러면서 조금 더 성장한 나를 기대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책을 쓰고 싶은 내면 깊숙이 박혀 있는 이 마음이 또 나를 흔든다.


'쓰려고 하는 것을 상상하라. 두 눈으로 보고, 온몸으로 겪어라. 암산할 때처럼 머리를 쥐어짜지 말아라. 그저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들어보고, 그 자체가 되어라. 이렇게 할 때 문장은 저절로 갖춰진다. 마술처럼. 이렇게 한다면, 쉼표나 마침표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문장을 살펴보지 않아도 된다. 계속 두 눈을, 두 귀를, 코를, 혀를, 손끝을, 온몸과 마음을 네가 문장으로 변화시키는 그것에 집중하면 된다 - 테드 휴즈'


'소설가의 일'에 나오는 문장이다. 펄펄 끓는 얼음에 이르기 위한 5단계를 읽고 또 읽으면서 감각적 세계에 안기기를 갈망한다. 이 갈망이 또 나를 어떤 곳으로 데려다 놓을지 선명하지는 않지만, 평소의 자극들을 온몸으로 받아내리라 다짐하면서 글을 쓴다. 또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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