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신학기는 아이들의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새 학년이 되면서 익숙했던 반, 선생님과 친구들이 바뀐다. 작년 내내 적응했던 모든 것들이 변해 아이들의 신학기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학교 가기 전부터 우리 아이들은 반 배정과 친구들의 명단을 ‘쓱’ 훑어본 뒤, 나랑 마주칠 때마다 찡찡거리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나 찡찡거림의 강도는 똑같았다. 드디어 ‘귀가 긴 토끼 엄마’의 상담이 시작될 시기가 온 것이다.
그림책 제목 ‘귀가 긴 토끼의 상담소’에 엄마의 단어를 덧붙여 ‘귀가 긴 토끼 엄마의 상담’으로 말을 바꾸어 보았다. ‘귀가 긴 토끼의 상담소’라는 책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제목만으로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된다. ‘귀가 긴 토끼’는 긴 두 귀로 많은 동물의 어려움과 고민을 잘 들어주고 해결해 주지 않을까 상상을 해 본다. 그렇다면, ‘귀가 긴 토끼 엄마’도 역시 긴 두 뒤로 아이들의 찡찡거림을 잘 듣고 달래주며 감싸 줄 수 있지 않을까. 3월 첫째, 둘째 주의 나의 주 임무는 바로 이런 것이다.
올 3월, ‘귀가 긴 토끼 엄마의 상담소’ 문을 두드린 첫 번째 고객은 올 고2가 되는 큰 애였다. 그 녀석은 집에서 뒹굴뒹굴하던 틈틈이 며칠 전부터 학교 홈페이지에서 올해 반과 기숙사 방 배정을 열심히 확인했다. 그리고 지른 외마디,
“악, 반에 친한 친구들이 한 명도 없어요! 게다가 기숙사 방에 나만 고2야. 고3이 3명, 고1이 2명! 나 어떻게 해요?”
원래 큰 애 기숙사 방은 고1-3학년이 2명씩 배정받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올해 1분기의 큰 애 기숙사 방은 그 녀석만 고2, 나머지는 고3, 고1로 배정되었다. 안 그래도 그 녀석은 올해부터 고2라 달랑 3개 있는 이 층 침대에서 이 층이 아니라 일 층 침대를 쓴다고 신나 했는데, 그 방에는 고3이 3명이라 그 일은 아예 물 건너갔다. 올 1분기는 꼼짝없이 시어머니 같은 3명의 고3을 모시고 천둥벌거숭이 같은 2명의 고1을 단속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 영향인지 큰 애는 눈을 마주칠 때마다 “어떻게 하죠?”라고 물어댔고, ‘하늘이 무너진 듯한 한숨’을 내 쉬며 나를 향해 찡찡거리기 시작했다
‘귀가 긴 토끼 엄마’의 두 번째 상담 고객은 올 중 3이 되는 둘째였다. 앞서 찡찡거리는 진상 고객(?) 같은 형을 봤으면 좀 자중하면 좋으련만, 이 녀석을 한 술을 더 떴다. 한 반에 친한 친구들이 없는 것을 비롯해 이렇게 확진자가 많은 상황에서 온라인 수업이 아니라 왜 학교에 가냐며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고 녀석이 우리나라 코로나 상황을 그렇게 걱정했다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온갖 논리를 동원해서 코로나 상황에서 학교에 가면 안 되는 수만 가지 이유를 대며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울 남편님도 ‘네가 학교 안 가면 나도 회사 안 간다’라며 중3 아들을 대상으로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울 남편님은 살아온 세월이 있어서인지 나를 보고 찡찡거리지 않지만, 울 아들들은 볼 때마다 애처로운 눈과 말로 연신 하소연해댔다. 그나마 큰 애는 남편이 마지막까지 중얼거리는 그 녀석을 얼른 붙들고 어젯밤 기숙사에 떨궈준 덕분에 ‘귀가 긴 토끼 엄마’의 상담 명단에서는 제외되었지만, 둘째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오늘 학교 가기 직전까지 ‘왜 이 시국에 학교를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비장하게 외쳤다. ‘이 녀석아, 네가 지금 학교 안 가면 어쩌려고’라고 외치며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다가도 꾹 눌러 참았다. 그래, 아직 3월 초 중반까지는 ‘귀가 긴 토끼 엄마 상담소’를 유지해야 하니까. 지금 이 시기만 지나면 그 녀석들의 찡찡거림도 좀 덜 할 것이다.
3월 초중반은 아이들의 신학기 스트레스 못지않게 엄마들의 스트레스도 심해지는 시기다. 그래서 ‘귀가 긴 토끼 엄마의 상담소’는 연일 성황 중이다. 이 시기는 잘 들어주고, 반응하고 꾹 참는 등 아이들을 향한 굳센 인내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혹 아이들이 새 학기에 적응을 못 해 전화라도 오지 않을까, 혹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봐 온종일 노심초사다. 가끔은 ‘귀가 긴 토끼 엄마의 상담소’는 모두 문을 닫고 ‘귀가 짧은 토끼 엄마’가 되어 내 고민과 일들에만 집중하고 싶다. 아이들의 찡찡거림은 모두 저 바람에 흘려보내고, 가끔 ‘왜 자신들의 말을 못 들은 척하냐’는 아이들의 투덜거림도 ‘짧은 귀’ 탓에 들을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이 녀석들은 엄마 아빠의 고민은 항상 모른 체하면서 자기 고민만 연신 떠들어댄다. ‘그래, 이런 것도 한순간이겠지.’ 그렇게 스스로 시끄러운 내 마음을 다독거려 본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는 이발사의 하소연을 끊임없이 들었던 대나무 숲의 고충을 생각하며 이번 3월도 잘 견뎌 보리라. 자, 덤비거라. 울 아이들의 고민들. 들을 준비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