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회복탄력성과 함께, Love Myself!
3월 첫날, 봄비가 대지 속으로 촉촉이 스며들어 있다. 주중에 끼어 있는 황금 같은 휴일 삼일절, 느지막이 눈을 뜨고 보니 이미 비는 한 차례 지나갔다. 온 세상을 어두컴컴 하게 가린 흐린 구름만이 ‘금방, 비가 내렸어’라며 간만의 비 소식을 알려준다.
3월에 내리는 비는 봄 발자국이다. 2월에 내리는 비는 왠지 겨울 느낌이 강해 추운 날씨가 아니어도 내리는 물방울들마다 스산하게 한기가 서려 있다. 하지만 3월의 비는 차가운 날씨에 자꾸만 옷깃을 여며도 한층 다가온 듯한 봄의 자취를 연상시킨다. 저마다 힘겹게 겨울을 보냈던 기억들은 모두 떨쳐 버리고 이제 봄을 맞이할 시기가 온 것이다. 다시금 움직이는 시작의 계절이.
그러고 보면 참 재미있다. 이렇게 일 년 365일, 이미 정해져 있는 달력의 숫자로 사람들의 기분마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이 말이다. 사람들의 일정이야 달력 속의 까만 숫자로 손쉽게 오간다. 하지만 사람들의 감정은 2월이 끝났다고 해서 겨우내 묵혔던 기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3월이 된다고 해서 금방 ‘하하 호호’할 수 있는 단순한 것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2월이 가고 3월이 오는 것을 기뻐하고,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을 환영하는 것은 다시 한번 시작하고자 하는 스스로의 몸부림이 아닐까 싶다. ‘회복 탄력성’이라는 말이 뭐, 별건가. 그저 지금 이 상황에서 좀 더 벗어나고 싶은 마음, 다시 맞이할 달에는, 다시 시작된 계절에는 저번보다 성장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 그 자체가 ‘회복탄력성’이 아닐까 싶다. 이런 마음의 밑바탕에는 ‘자기 애민’, ‘자기 연민’이 자리 잡고 있다.
평소 자신에 대해 얼마만큼의 ‘자기연민’을 가지고 있는가? 참 특이하게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놀라울 만큼 엄격하고 냉정하다. 모든 일에 대해 ‘엄격함’이 있어야 좀 더 성장이 있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탓인지,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고 대조하고 분석한다. 어떤 훌륭한 성과와 결과를 내도 꼭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섣불리 자신을 위한 칭찬을 하지 않는다. 혹은 지나친 ‘자기 사랑’이 자기 자랑으로 비칠까 두려운 탓인지, 항상 머물러 있는 자신을 경계하고 자꾸만 다그치기만 한다. 생각해 보면, 항상 ‘칭찬’은 다른 사람에게 듣는 말이지, 내가 나를 위해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런 사실을 지금에야 깨닫다니 참 슬픈 일이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아등바등 살아온 나 자신이 참 기특하지 않은가. 거의 백지상태로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를 만나고 형제자매와 함께 경쟁하며 자랐다.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걷고 달리며, 시험을 치는 경쟁이 시작됐고, 사회에 나와서는 일을 하며 끊임없는 비교와 책임 속에서 자신을 혹독하게 채찍질하고 있다.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에게서, 하고 싶은 이상과 꿈속에서 ‘어려움, 불안함, 슬픔, 기쁨’ 등과 같은 복잡한 감정들을 느끼며 ‘나’는 지금 살고 있다. 이 ‘나’는 오고 가는 자연 현상에도 시작의 의미를 찾고 다시 도약할 준비할 만큼 연약하다. 그런 나에게 매번 ‘좀 더 잘하라’라는 다그치는 말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다음에도 잘할 거야. 일단 해 보렴’이라고 다독거리는 자기 연민의 말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혹독한 교관’ 같은 냉정한 자신과 살아왔다면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는 ‘자기 연민’과 같은 따뜻한 자신과 살아도 좋을 듯싶다.
자신을 사랑해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가질 수 있다. 통통 튀어 오르는 용수철 같은 힘으로, 3월, 시작하는 이 봄의 계절에는 모든 긍정의 기운들을 모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자신을 많이 혼냈으니, 이제는 자신을 칭찬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