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글쓰기’로 유명한 작가, 강원국의 또 다른 책, <어른답게 말합니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말을 늘려서 발음하며 ‘마알’이 되는데, 마알은 마음의 알갱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말이 마음의 알갱이란 말이다. 말은 곧 자기 생각과 마음이다. 말이 바뀌면 생각과 마음이 바뀌고, 생각과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현실이 바뀐다. 모든 것이 말한 대로 된다.
(p157, in <어른답게 말합니다>)
‘마알’이 마음의 알갱이라는 강원국 작가의 표현처럼 말에는 사람들의 마음들이 알알이 맺혀 있다. 말은 투명한 물과 같다. 물에 무엇을 넣고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서 술이 되고 커피가 되고. 냉수, 우롱차 등등, 갖가지의 종류로 바뀐다. 때론 그 가공된 물이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때론 해로운 독을 품기도 한다. 말도 그렇다.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이 바뀐다. 또 그 생각과 마음은 각각 행동과 습관이 되고 인생을 만든다. 인생을 희극으로 만들지, 비극으로 만들지는 어떤 말을 품고 사느냐에 따라 다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처럼, “말은 현실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말의 힘은 정말 세다.
요즘 내가 자주 했던 말과 생각을 떠올려 본다. “내 나이에”, “이제 와서 뭘”이라는 말들. 그 말들은 계속 싹을 피워 내 생각과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예전에는 내 나이쯤 되면 점점 모든 생활이 안정되고 아무 불안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 앞에 주어진 인생은 걱정의 연속이다. 한 시기의 걱정이 끝났다고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어떻게 건강하게 키울지 걱정, 아이들이 크면 어떻게 제 밥벌이하고 살 지 걱정, 앞으로의 노후는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 등등, 점점 먹어가는 연령대에 따라 걱정거리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났다. 시간이 갈수록 불어나는 걱정들은 점점 현실과 타협하며 편하고 쉬운 길만 가려고 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나와 같은 비슷한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다. 중년에 다시 혼란의 꽃을 피우는 사춘기가 온 것처럼 말이다.
십 대 사춘기 시절은 억누르는 기성세대의 규율과 규범에 반발하며 자신의 존재를 찾는 시기였다. 표현방식은 개인들의 성향에 따라 각각 달랐지만, 미래를 향해 도전하고 싶은 것들이 무척 많았다. ‘지금은 이렇지만 미래에는’이라는 마음으로 기성세대의 규율과 규범을 거부하며 내 인생을 ‘싹’ 고치고 바꾸고 싶은 마음이 무척 강했다.
그러고 맞이한 중년, 중년의 사춘기는 좀 애매했다. 사실 이 증상이 중년의 사춘기 증상일지는 모르지만 크고 작은 걱정과 두려움이 많아졌다. 점점 먹어가는 나이를 탓하고 앞으로 ‘채울 기회의 양’보다는 ‘남아 있는 일’을 헤아리며 적당히 타협하려는 마음이 강했다. ‘이제 와서 뭘’, ‘지금까지도 못했으면 이제 끝났지 뭐’라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말이다. 100세 인생을 생각하면 아직 인생의 반도 살지 않았지만 ‘늦었다는 생각’에 이젠 기회가 없다고 단정 지었다. 넘쳐나는 유능하고 훌륭한 사람들을 보며, 이제는 꼭 그 일에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 때문에 점점 자신감을 잃었다.
남편 역시,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기 직전, 유난히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빈도가 잦았다. 잘 안 보던 드라마들을 찾아보고 사소한 일에 버럭 화를 많이 냈다. 처음에는 ‘이 양반이 권태기인가?’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남편의 눈치를 보며 짜증 내는 사춘기 아들을 대하는 것처럼 피해 다녔다. 나중에는 그 변화가 바로, 중년들이 앞자리 수의 나이가 바뀔 때 겪는 증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말이다. 그때 남편은 왜 그렇게 짜증을 내고 화가 많이 냈을까? 사람이 나이를 먹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10대에서 20대로 바뀔 때보다 30대에서 40대, 50대로 변할 때는 더 부침이 심한 것 같다. 이상하게 점점 마음이 공허하고 불안해진다. 마음은 여전히 ‘꽃다운 청춘’인데 몸이 점점 따라주지 않는다.
이럴 때마다 '신의 한 수'를 떠올린다. ‘신의 한 수’는 어떤 일을 처리하거나 해결하는 데에 매우 뛰어나고 기묘한 수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운명적인 순간, 인생의 절묘한 변화가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이런 ‘신의 한 수’와 같은 기회를, 순간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유키즈 온 더 블록’의 ‘신의 한 수’ 편에 나온 황석희 번역가는 ‘신의 한 수’처럼 특별한 능력, 운명적인 기회를 포착한 사람으로 소개되었다. 마냥 화려한 삶을 산 것 같은 그이지만, 자신의 인생을 한 마디로 '데드풀'의 영화 대사로 표현했다.
“인생은 괴로운 연속극이고 행복은 짧은 광고와 같다.”
그는 때때로 자신의 인생을 지루하고 비극적인 연속극처럼 느꼈지만, 간간이 짧게 방송되는 광고와 같은 희극 덕분에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했다.
‘툭’ 던지는 따뜻한 한마디, ‘토닥토닥’하며 건네는 격려, “다시 해보자, 해보자”라고 외치는 희망찬 사람들의 격려로 다시 용기를 얻는다. 점점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신감은 없어지지만, 긍정적인 마음과 말을 하며 열심히 지내다 보면 ‘신의 한 수’ 같은 순간이 오지 않을까? ‘짧은 광고’와 같은 행복과 희극이 다가오길 기다리며 다시 용기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