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인 부모님 사랑에 대한 고찰

by 하늘진주

어제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가지고 수업을 하던 남자 조카가 그랬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보면 누가 생각나니’라는 내 질문에 11살 조카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좀 다르긴 하지만 굳이 뽑자면 부모님이요. 그래도 무조건 사랑하고 희생하시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러면서 덧붙였다. 자기는 그런 사랑이 더 좋다고. 나무도 자기가 가진 ‘사과’까지 소년에게

주는 것은 좋은데 ‘자신의 가지와 줄기, 몸통까지 주는 것은 좀 지나치다고 했다. 자기가 만일 그런 사랑을 받으면 좀 귀찮고 부담스러울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작가 쉘 실버스타인의 대표작인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1964년에 출판된 이후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읽히고 있는 스테디 셀러다. 한 사과나무가 소년에게 나무, 나뭇가지, 줄기, 밑동 순으로 아낌없이 베푸는 희생과 사랑의 모습은 많은 독자에게 큰 감동을 안겨 주었다. 나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소년에게 무조건 베푸는 모습을 보며 많은 독자는 부모님의 사랑을 떠올렸다. 어버이날마다 들려오는 노래 가사,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처럼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고 배운 부모님의 사랑은 항상 거룩하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푸는 희생적인 사랑이다. 드라마나 소설, 영화에서 표현되는 부모님의 사랑은 너무나 거룩하고 위대하다. 그래서 가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다 양보하고 희생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생각하며 ‘엄마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닐까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시간적인 여유가 있거나 방학을 할 때마다 꼬박꼬박 아이들에게 ‘청소’와 ‘설거지’를 시키고 가끔은 스스로 밥 차려 먹는 법을 가르쳐주는 나에게 신랑은 ‘계모’라며 놀렸다. 항상 아이들에게 ‘어머니는 자장면 싫다고 하셨어’ god 노래는 엄마에게는 해당이 안 되고. 엄마도 자장면을 좋아한다고 누누이 말했다. 맛있는 것 먹을 때면 엄마, 아빠 것도 챙겨두어야 한다고 꼭 덧붙였다. 그러면서 ‘너희들은 너희들만의 인생이 있고, 엄마, 아빠는 우리만의 인생이 있다’라고 말했다.


대중매체, 특히 남성 작가들은 ‘위대하고 희생적인 모성’을 엄청나게 강조한다. 그래서 나 역시도 그런 이미지에 한동안 갇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모든 것을 희생하고 아이들의 인생에 맞추어서 나를 재조립해야 하는 것을 아닐까 생각을 많이 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힘들어도 우리 아이들을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아이들이 원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너희들을 위해’라는 말로, ‘이것이 무조건 옳다’라는 말로,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을 옭아매고 힘들게 한 적은 없었을까? 나의 조건 없는 희생과 사랑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을까? 아이들만 바라보고, 아이들의 모든 시간에 내 시간을 맞출 때, 나도 우리 아이들도 행복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나의 청소년기도 그랬던 것 같다.


영화 ‘사도’를 본 나와 동생은 한 목소리로 외쳤다. “와, 우리 아빠 같아.” 그랬다. 친정아버지는 영화에 표현된 ‘영조’처럼 꼬장꼬장하고 강한 성격을 지니셨다. 항상 밥 먹는 시간은 아버지가 우리의 성적과 모든 일을 꾸짖는 시간이었다. 친정아버지가 보신 우리는 항상 당신이 지내신 시절보다 풍족한 환경을 누리면서도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부족한 자식들이었다. ‘소를 몰고 농사를 짓지 않는 데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다’라며 항상 못마땅해하셨다. 그래서 항상 친정아버지를 대할 때며 주눅이 많이 들었고 함께 밥을 먹을 때면 체한 듯 꼭 배탈이 났다.


그래서일까? 솔직히 난, 흔히 말하는 ‘무조건적인 부모님의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다. 부모님이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자식이 스스로 알아차려야만 하는 것이 부모님의 사랑일까? 아마도 우리 부모님은 나를 분명히 사랑하셨겠지만, 청소년기를 되돌이켜 생각해 보면, 항상 ‘꾸지람’과 ‘호통’만이 기억난다. 아무리 깊은 사랑도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잘 모르는 법이다. 그 덕분인지 나는 결혼한 이후, 아이들에게 내 마음을, 사랑을 몸으로 잘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나 역시도 기대에 못 미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화가 났다. 그럴 때마다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를 때도 있지만 꼭 내 잘못을 깨달으면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하곤 했다. “엄마가 그때 소리를 지른 것, 미안해. 잘못 생각했던 것 같아. 그때 마음이 아팠지?‘라고 말이다.


요즘 부모님은 또다시 도무지 살갑게 대하지 못하는 우리 형제들을 보며 툴툴거리신다. “다른 자식들은 말이야”라는 말씀으로 시작하다가 “자식들 키워봤자 소용없다”라는 말로 끝맺으신다. 그냥 부모님 표현이 거칠어서. 너무 솔직하셔서 그렇다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생각보다 부모님의 표현과 말씀은 힘이 강하다. 다른 사람들의 말보다 부모님의 말씀은 생각보다 그 아픔과 영향이 오래간다.


조금씩 시간이 가면서 부모님이 ’청소년기의 나‘를 키웠을 나이대로 다가간다. 특히 어머니를 생각하면 여러 가지 복합적인 기분이 든다. 성격이 강한 남편,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 바쁜 일들…. 그 당시 일을 하랴, 아이들을 돌보느라 바빴을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헤아려진다. 아마도 무척 힘드셨으리라. 당신께서는 그 당시 너무 바쁘셨고, 힘드셨기에 아이들의 하나하나의 마음을 다 헤아리고 집중하기는 쉽지 않으셨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난 엄마와의 살가운 추억이 별로 없다. 친정엄마랑 딸과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들 한다. 솔직히, 난 친정 엄마와의 대화가 불편하진 않지만 좀 어색하다. 오빠가 있지만 ‘장녀’라는 위치상, 푸념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고 항상 책임감만 부여받았다. ‘장녀가 잘되어야 동생들도 잘된다’라는 그런 말들. 그래서 항상 입을 다물었다. 뭐, 친정어머니도 나와 관련된 일을 궁금해하지 않고 좋은 이야기만 듣고 싶어 하셨고 말이다. 아마도 자식이 많은 집의 비애일지도 모르겠다. 자식들마다 저마다의 사정과 힘듦이 있으니, 누구 하나쯤은 좋은 이야기로 포장되는 것이 좋겠지.


무조건적인 사랑, 희생하는 사랑은 너무 아름다워 보인다. 어쩌면 우리 부모님들도 강하게 표현하셨지만, 당신의 시간과 돈을 희생하며 힘겹게 우릴 키우셨을 것이다. 솔직히 그 당시에 4형제를 먹이고 재우기는 쉽지 않으셨을 것 같다. 이런저런 외부의 부침도 많으셨을 테고 화가 날일도 많으셨을 것이다. 도무지 당신들 뜻대로, 기대대로 따라주지 않는 자식들의 모습이 참 답답하셨을 것 같다. 부모님께서 ’나무가 소년에게 그랬던 것처럼, ’사과‘도 주고 ’줄기‘, ’밑동‘까지 주며 힘들게 키웠는데, 너희들이 우리에게 해 준 것이 뭐냐?’라고 물으신다면 할 말이 없다. 부모님은 따뜻한 말과 사랑 표현보다는 당장 먹을 밥과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고, 그렇게 힘겹게 세월을 보내셨다. 하지만 가끔은 부모와 자식 간이어도 표현하는 사랑은 중요하다. 아무 말 없이 베풀고 알아주기만 바라는 사랑은, 그 자식이 알아주지 못할 때 비극으로 끝난다. 요즘 자꾸 삐걱대는 부모님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과거를 회상한다. 난 어린 시절 힘들다고 얘기했어야 했을까? 난 바로 표현했어야 했을까? 이미 부모님은 나를 어린 시절부터 ’착한 딸, 착한 장녀’라고 못 박아 버리셨다. 그래서 뒤늦게 의견을 주장하고 부모님의 이미 끝난 결정에 반대하는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못된 딸‘일 것이다.


(원고지 19.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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