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바쁘고 평범한 일상에 찌든 배고픈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 앞에 놓인 것은 라면 하나와 냄비. 그가 따뜻한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는 먼저 가스 불을 켜고 냄비에 물을 붓고, 라면을 끓일 만큼 냄비 물을 뜨겁게 데워야 한다. 그리고 취향에 따라 수프를 먼저 넣거나 면을 넣어 3분 동안 라면이 익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가 너무 허기져 알맞은 조리시간보다 빨리 불을 끄면 설익고 버석거리는 면발을 묵묵히 감내해야 하고, 너무 늦으면 퉁퉁 분 면발을 숟가락으로 퍼먹으며 정확한 조리 시간을 맞추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일이 라면을 끓이는 것과 비슷하다.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준비하고 시작하며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목표치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기다리는 과정이 생각보다 너무 어렵다. 생각해 보면 기다리지 못해서, 점점 먹어가는 ‘나이’를 핑계로, 포기하고 아쉬움만 삼키던 일들이 너무나 많다.
글쓰기, 운전, 다이어트, 운동, 영어공부 등등, 지금까지 시도했던 일들을 돌이켜 보면, ‘라면’과 ‘물’을 준비하고, ‘불’을 피우고 ‘물’을 데우고 수프와 라면을 넣을 때까지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가끔은 콧노래도 부르고 어떤 맛있는 ‘라면’과 같은 성과를 얻게 될지 기다리는 모든 과정이 설레고 신났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지쳐 마냥 ‘라면 끓이는 냄비’만 바라볼 수 없는 일들이 늘어날수록 점점 지쳐갔다. 괜스레 섣부르게 도전했다가 설익은 결과에 실망하기도 하고, 너무 늦게 ‘냄비 물’을 살폈다가 라면과 수프를 넣을 타이밍을 놓쳐 매번 다시 라면 물을 올려야 하는 일들이 종종 생겼다. 일단 끓는 물에 라면과 수프를 넣기만 해도 어떻게든 맛과 상관없이 라면은 먹을 수 있을 텐데 조급한 마음은 그것마저 포기하게 만들었다.
세상에는 각 분야에서 성공하고 화려한 조명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분명 그 사람들도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스스로를 갈고닦으며 오랜 인내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이미 빛나고 있는 또 다른 이를 바라보며 준비했던 ‘라면 물’을 끓이고 버리고, 끓이고 버리는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했을 것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그 사람들이 더 ‘좋은 라면’과 ‘냄비’를 이미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물을 붓고 불을 켜는 과정은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잘 아는 데도, 왜 자꾸 그 사람들이 맛있게 조리해서 이미 먹고 있는 ‘최고의 라면’만 눈에 보이는지 모르겠다. 아직 나는 ‘라면’과 ‘냄비’만 준비하고, 불을 피우고 냄비를 올리며 ‘라면이 익는’ 시간을 기다리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좀 더 노력하고 기다려야 할 수천수만 가지의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내 숨 가쁜 마음과 생각들은 이미 결과를 향해 달려가고만 있다.
‘판타지 웹소설’을 읽을 때마다 가장 좋기도 하고 화가 나는 부분은 주인공들이 능력을 얻는 부분이다. 소설 속의 수많은 주인공은 빙의하거나 환생할 때 너무도 쉽게 언어를 익히고 능력을 얻는다. 전생에 그들이 읽었던 ‘소설’의 이야기를 토대로 현생의 일들을 예언하고 부를 쌓는다. 그냥 전생에서 벗어나 현생의 다른 인물로 빙의했을 뿐인데 수많은 기억과 언어능력 습득은 기본이다. 독자로서 읽을 때는 그런 주인공들의 행보가 너무 신나지만, 막상 현실의 나와 비교할 때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지금껏 현실 속에서 아웅바둥하던 수많은 노력들이 헛되게 느껴진다. 나는 예전 회사 생활에 했던 영어 공부를 십 년 넘게 계속해도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인데, 저 주인공들은 저렇게 쉽게 언어 구사를 하다니….
예전에는 ‘갑자기!’, ‘순식간에!’에 이루어지는 ‘깜짝 놀랄만한 마법’이 참 부러웠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내 안에는 천재적인 재능이 숨어 있고, 나는 모르지만 내 재능을 주위 사람들은 모두가 눈치채고 있는 그런 ‘로맨틱 판타지’ 같은 사연을 꿈꾼 적이 있다. 뭐, 꿈이야 누구나 꿀 수 있으니까. 이제 나이를 조금씩 먹고 보니, 그와 같은 일들은 다 망상이자, 몽상일 뿐이라는 것을 점점 깨닫는다. 어떤 일이든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하다못해, 라면 하나를 먹기 위해서도 ‘라면’과 ‘물’을 준비하고 끓이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일찌감치 불 지피는 시간을 포기하면 설익은 면발을 맛볼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내 인생에서 최고의 라면은 없다며 좌절하게 되겠지. 그렇다고 너무 불만 지피다 보면 어느새 물이 졸여져 라면과 수프를 넣을 정확한 시간을 놓칠지도 모른다. 물론 면과 수프를 적당한 시간에 넣는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물이 만족스러울 가능성도 없다. 모두에게 최고의 라면은 정확한 시간, 최고의 면발, 적당한 물 양이 만드는 기적이니까. 그래도 솔직히 말하면, 너무 늦기 전에 진짜 인생에서 ‘멋진 라면’ 하나 맛보면 소원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