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와 "스트레스!"의 차이

by 하늘진주

스트레스, 이 단어는 참 재미있는 친구다. 어떻게 내뱉고 시간차를 두고 발음하는 냐에 따라 말하는 느낌이 달라진다. 첫음절 ‘스’에 좀 더 시간을 두고 발음하면 입 안과 허파 곳곳에 시원한 공기와 바람으로 가득 찬다. 그 시원한 기분이 좋아서 ‘스’ 발음에 오래 머물러 있다가 멍하니 나머지 ‘트레스’ 음절 말하기를 까먹기도 한다. 스트레스, 온전히 이 단어를 다 내뱉고 난 뒤에야 깨닫는다. ‘아, 맞다. 나 스트레스받는 중이었지.’


살아가면서 스트레스를 안 받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였을 때도, 어른이 된 이후도, 눈으로 보는 대중매체 기사들, 상황들에 따라 순간순간 스트레스를 받는 일들이 계속 생긴다. 원래 ‘스트레스’라는 말은 라틴어인 ‘stringer(팽팽히 죄다, 긴장)’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런 어원 탓인지 화살 줄이 순식간에 팽팽히 곤두서는 듯한 스트레스를 느낄 때도 있고, 얇은 거미줄처럼 가는 실타래가 간질거리면서도 성가신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다. 바로 그럴 때가 내가 ‘스트레스’를 달리 발음하는 경우다.


‘스’라는 첫음절에 좀 더 시간을 두고 ‘스트레스’를 발음할 때는 쿰쿰한 조선간장처럼 오래 묵혀 두었던 스트레스를 생각하고 떠올릴 경우이다. 그런 스트레스들은 솔직히 답이 없다. 아무리 스트레스의 실타래들을 한 올 한 올 풀려고 해도 여러 사람의 상황과 감정들이 얼기설기 엉켜 풀 때마다 다시 엉켜버린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했던 내 말들이 또 다른 오해를 부른다.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수록 더 짙고 꾸덕꾸덕한 늪 속으로 파고들어 꼼짝없이 갇혀버린다. 그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오직 망각뿐이다. ‘스’라는 첫음절을 크게 발음하며 내 안에 시원한 공기를 가득 채워 넣고 ‘트레스’라는 나머지 음절로 묵힌 기억을 재빨리 닫아 버린다. 지금은 도저히 풀 수 없는 스트레스, 바로 그때가 바로 내가 ‘스’라는 음절을 더 크고 깊게 늘리며 ‘스트레스’를 발음하는 경우이다.


‘아, 스트레스!’‘라고 강하게 ’스타카토‘로, 혹은 ’랩‘처럼 빠르게 발음할 때는 해결할 수 있지만, ’미루기 신공’을 발휘해서 잘 안 하거나 못하는 스트레스 경우이다. 보통은 욕심 때문에 꾸역꾸역 채워놓았던 일정들이 한꺼번에 터지는 경우가 많다. 분명히 기존에 해야 하는 수많은 일이 있는 데도, 때마다 찾아오는 ’열정 상태‘에 돌입해 이런저런 일들을 벌이다 혼자 발버둥 치고 끙끙대다 주저앉는 경우이다. 이때가 가장 ’선택과 집중’이라는 단어를 많이 떠올리고 ’미루기 신공‘의 유혹을 가장 많이 받는다. 학창 시절, 보통 때는 방 한번 잘 안 치우다가 시험 기간에 방안 살림살이들이 다 뒤집고 청소에 여념이 없었던 것처럼, 평소에 관심이 없었던 드라마, 예능, 책, 뉴스들을 ’천상의 아이템‘처럼 챙겨보며 살펴본다. 시간의 흐름을 잊기 좋은 유혹적인 것들을 하나하나 접하며 해야 할 일들을 미루다 보면 내게 남은 시간은 겨우 며칠, 혹은 하루뿐이다. 그때마다 난 강하게 “스트레스”를 발음한다. 다시는 미루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생각해 보면,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내 스트레스들은 지금보다 더 잘하려고 생각과 고민을 거듭하다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 첫 시작도 안 했으면서 항상 완벽하고 멋진 결과물을 꿈꿨다. 이상과 현실에 너무도 다른 모습에 고민하다 미루고 결국은 놓쳐 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사람들은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며 천천히 ‘일단 한 줄씩’ 시작부터 하라고 했지만, 항상 그 첫걸음 내딛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마감을 못 마쳐 놓쳐 버리고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생각해 보면 첫 시작이, 첫 시도가 미약하고 보잘것없는 것이 분명한 사실인데, 왜 나는 항상 ‘완벽한 결과’에만 집착하고 있었을까? 주위의 빛나는 사람들 역시 그런 서툰 병아리 시절을 거쳐서 지금의 완벽한 위치에 올랐을 텐데, 성급한 나는 “스트레스”라고 빠르게 외치며 다가오는 기회들은 뻥뻥 차 버리곤 했다. 매번 하는 다짐이지만, 또다시 해본다. 나의 성급함으로, 조급한 스트레스로 모든 일을 섣불리 판단하고 포기하지 말자. 다음에는 “아, 스트레스”라는 말보다 “유휴, 릴렉스”라는 먼저 말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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