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즐겨보는 JTBC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에는 ‘사내 연애 잔혹사 편’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이 드라마의 내용 전개는 여느 드라마와 다르다. 기상청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드라마 스토리는 어떨 때는 폭풍우처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처럼, 사람들의 감정 기후를 둘러싼 채 변화무쌍하게 전개된다.
결혼을 앞둔 공인 사내 커플인 진하경과 한기준은 결혼식을 앞두고 갑자기 혼약을 깬다. 기준이 바람을 피운 것이다. 그가 선택한 여성 역시 예사 인물은 아니다. 그녀도 오래된 연인 이시우와 동거 중이었지만 일방적으로 변심을 하고 기준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시우는 우연히 진하경과 만나고 다시 사랑에 빠진다. 여기까지의 보면 스토리 전개가 거의 막장 드라마 수준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주인공들의 상큼한 외모와 훌륭한 연기력에 힘입어 회마다 인기를 더해 가고 있다. 원래 막장 드라마는 씹고 뜯고 욕하는 재미가 있다.
이 드라마의 여러 개성적인 인물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사람은 바로 진하경의 연하 남자 친구인 이시우다. 하경은 지질남 기준과 헤어지고 난 후 우연히 만난 잘생긴 연하남 이시우와 비밀 사내 연애 중이다. 시우는 남자가 보기에도 멋있고 괜찮은 남자지만 복잡한 가정사로 ‘비혼주의’를 추구하는 인물로 나온다. 바로 그의 이런 가치관 때문에 앞서 동거했던 연인은 그와의 이별을 선택했다. 이 드라마의 주요 내용은 여주인공 진하경과 남주인공 이시우의 비밀 사내 연애를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결혼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에피소드들이 중간중간 자리 잡고 있다.
남주인공 이시우는 불행한 가정사로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크고 확고한 비혼 주의자이다. 여주인공 진하경은 결혼식을 앞두고 일방적인 파혼으로 상처를 받은 인물이다. 결혼을 원해서 오래된 연인, 이시우를 버리고 기준을 선택한 유진은 매회 “이 결혼은 자신이 원했던 결혼생활이 아니었다”라며 절망한다. 가장 현실적인 기혼 여성의 삶을 잘 보여주는 오 주임은 갑자기 공부하겠다고 직장을 그만둔 남편 뒷바라지와 어린아이들을 보살피느라 하루하루가 전쟁터다. 결혼, 과연 그 의미는 뭘까?
내가 젊은 시절만 해도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하는 통과의례였다.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을 간다. ‘어느 정도’의 나이가 지나면 또 직장을 가지고 또 결혼을 한다. 그리고 또 ‘어느 정도’의 나이가 차면 아이를 가지고 남편과 그 아이를 뒷바라지하는 것이 거의 통과의례처럼 되었다. 딱딱 떨어지는 인생의 수학 공식처럼 말이다. 바로 그런 시절이 있었다. 언젠가 비슷한 나이의 아이를 가진 친구들과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을 돌보게 될까?’라는 엉뚱한 질문을 서로에게 던진 적이 있다. ‘대학, 결혼, 김장, 손자 손녀 육아’까지 이야기 나오다 서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그냥 “얘들, 그냥 혼자 살라 그래.”라며 씁쓸한 웃음으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요즘 청춘 남녀들은 이 드라마에 나오는 이시우처럼, 가정사의 이유로,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비혼주의’를 선택하는 친구들이 많은 모양이다. 출생률이 나날이 떨어지는 요즘, 이런 젊은 친구들의 선택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한편으로 이해가 간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불안한 세상, ‘나 혼자’ 버티고 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을까? 그들의 선택 속에는 좀처럼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는 국가에 대한 원망도 얼마간 담겨 있는 듯하다.
사실 결혼은 해 보니,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영화 속의 장면보다는 지지리 궁상의 현실의 장면이 더 많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토스트와 우유, 상큼한 오렌지’를 대령하는 로맨틱한 남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실의 나는 새벽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몽롱한 정신으로 급하게 아침 식사를 대령해야 한다. 남편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은 체 기계적으로 음식들을 씹고 있다. 나 역시도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으면 남편과의 하루치 오전의 대화는 끝이다. 그렇게 남편이 서둘러 출근하고 나면 새삼 행복한 얼굴로 자는 둘째를 깨워야 한다. 사춘기 아이들은 ‘자동 음역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는지 아무리 소리 질러도 잘 깨지 않는다. 몇 번의 공룡 소리처럼 커다란 소리로 겨우 깨우고 나면 그때부터 “빨리, 빨리”라는 말이 내 입에서 ‘빠른 랩’처럼 쏟아져 나온다. 그 외에도 챙길 것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정신이 없다. 해야 할 내 일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가족들의 일은 하나하나 다 내 손과 관심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결혼하면 또 다른 삶이 시작된다고 하는 걸까? 결혼은 남자의 삶의 방식도 바꾸지만, 여자의 삶도 하늘에서 땅만큼 크게 바꾼다.
옛 어른들이 말하길, ‘결혼’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내 편’이 생기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예전부터 그 많은 청춘남녀는 하나뿐인 자기편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결혼은 ‘남의 편’이 많이 생기는 일이기도 하다. 서로 좋을 때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아군이지만, 서로 나쁠 때는 자기 비밀을 너무도 잘 아는 강력한 남의 편인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랑 싸우면 제3차 대전보다도 긴박한 감정들이 서로 오가고, 중간자 역할의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진다. 비혼 주의와 결혼, 이 둘 중에 무엇이 좋을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둘 다 장단점이 너무나 뚜렷하다. 결국 자신이 선택하고 자신의 그 선택에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기상청 사람들>의 시우와 하경의 연애는 결국 어떻게 끝날까? 이제 드라마 끝맺음까지 얼마 안 남은 시간, 그들, 청춘남녀의 선택을 조심스럽게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