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함께 하는 하루

by 하늘진주

이른 아침,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을 때는 꼭 모닝커피 한 잔을 마신다. 질소 충전으로 빵빵한 커피 분쇄 원두 봉지를 뜯어 여과지에 넣고 뜨거운 물을 위에서 천천히 부으면 아침의 커피 한 잔이 완성된다. 물을 내리는 속도에 따라 때로는 씁쓸한 맛이, 때로는 고소한 맛이 혀끝으로 스친다. 그날 하루의 마음 상태는 커피 여과지에 붓는 뜨거운 물의 속도로도 그대로 드러난다. 오늘 아침의 커피는 급하게 내린 탓에 좀 쓰다.


사실 이렇게 순수한 아메리카노를 즐기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청소년 시절 몰래 마셨던 자판기 커피는 크림과 설탕의 조화가 어우러진 달콤한 음료였고, 결혼하기 이전에 아주 가끔 마셨던 커피 음료는 ‘캐러멜 마키아토’ 위주의 약간 느끼하면서도 달콤한 커피였다. 주로 녹차를 좋아했고, 밀크티를 좋아했다. 예전에 즐겼던 녹차는 수색이 맑고 깨끗해 마시는 내내 마음과 정신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면, 요즘 마시는 커피는 씁쓸하고 색깔마저 까매서 보기만 해도 탄 맛이 진동할 것 같다. 그 옛날, 유럽 사람들이 처음 커피를 보고 “이교도의 음료, 악마의 유혹, 사악한 검은 나무의 썩은 물”이라고 지칭한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다. 솔직히 이렇게 커피를 즐기기 전만 해도 어두컴컴하고 사약 같은 커피의 모양새는 영 가까이할 수 없는 ‘당신’이었다.


하지만 이런 커피의 색과 모양 때문에 마시기를 거부했던 유럽 사람들도 커피를 마신 후 그 효과와 맛에 주목했다. 많은 사람이 커피를 마시며 열광을 했고 그 흔적들은 17세기 유럽 각국에 급속도로 퍼졌던 커피하우스의 열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많은 남자가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다양한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고 수많은 문호가 커피를 마시며 밤새워 글을 써댔다. 몇 년 전, ‘알쓸신잡’에서 소설가 김영하가 보여준 자그마한 휴대용 핸드드립 커피 머신은 작가의 커피 사랑을 잘 느낄 수 있었던 소지품이었다.


요즘은 집 앞만 나서도 카페들이 즐비하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부터 작은 카페까지 온 거리가 각 가게에서 뽑아내고 볶아내는 커피 향으로 가득하다. 10년 전, 지금처럼 카페들이 다양하지 않던 시절만 해도 유명 브랜드의 ‘아메리카노 한 잔’은 비호감의 상징이었다. 사람들은 한 잔에 거의 식사 가격과 육박한 커피를 스스럼없이 마시는 미혼 여성들을 가리켜 ‘된장녀’라고 불렀다. ‘까맣고 쓰디쓴 물 한 잔’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일은 허세였고 사치였다.


그런 ‘허세’였고 ‘사치’스러웠던 커피 한 잔이 21세기 대한민국 성인 남녀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어떻게 이 커피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2가지 이유가 번뜩 떠 오른다.

첫 번째, 커피는 그 옛날 유럽 사람들이 열광했던 것처럼 각성제 효과가 뛰어나다. 쓰디쓴 커피 한 잔을 살며시 감싸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향을 맡으면 마시지 않아도 잠이 깨는 듯하다. 향기로운 향에 깨고, 쓰디쓴 맛에 깨고, 그 자체로 효능이 너무나 훌륭하다.

두 번째, 커피는 함께 마셔도 좋고, 혼자 마셔도 좋고, 사람들의 시간을 너무나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커피 한 잔 마시자”라는 친구들의 말속에는 함께 나누는 대화의 기쁨이 가득하고, ‘홀로 타 먹는 커피’에는 혼자만의 고독에 젖을 수 있다. 커피 한 잔만큼 부담 없이 편하게 시간을 즐겁고 알차게 만들 수 있는 음료는 잘 없다. 숙취의 후유증도 없고, 까다로운 다도의 예도, 성찰의 시간도 이 시간만큼은 필요 없고 자유롭다. 그저 취향대로 우유와 설탕을 넣어 먹고 즐겁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만이다. 효율과 낭만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음료, 그래서 바쁜 현대인들이 이토록 선호하는 것이 아닐까.


벌써 두 잔째 커피를 핸드드립 여과지에 내리며 오늘의 할 일들을 생각해 본다. 이런저런 일들로 오전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반도 하지 못했다. 급하게 대충 내린 커피를 마시니 여전히 쓴맛이 입안에 감돈다. 커피는 원두와 로스팅 정도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진다고 했던가? 뜨거운 불판 위에서 여기저기 몸부림쳤을 초록빛 원두들을 생각하니, 커피의 쓴맛이 이해된다. 커피의 풍미, 고소한 맛, 커피의 여유, 효율, 낭만도 좋지만, 아직 갈팡질팡 마음을 못 잡는 나에게는 커피의 쓴맛이 먼저 다가온다. 커피의 쓴맛, 인생의 쓴맛, 나는 아직 인생의 쓴맛을 즐길 시기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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