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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r 24. 2022

프로메테우스의 걱정을 내려놓다

 신화는 항상 은유적인 표현과 인물들 속에 많은 의미를 숨겨 놓는다. 그중에서도 그리스·로마 신화는 수많은 문학적인 표현과 해석들이 숨어 있어 읽으면 읽을수록 매번 새롭다. 요즘 종종 떠오르는 인물이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이다. ‘먼저 생각하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프로메테우스와 ‘나중에 생각하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에피메테우스, 이 두 사람을 보면 자꾸만 나와 둘째의 모습이 생각난다. 미리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노심초사하는 나와 어떻게든 학원 빠지고 놀 궁리만 하는 둘째, 미리 본다는 것, 미리 듣는다는 것은 썩 좋은 일만은 아니다.


 ‘나중에 생각하는 자’였던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진흙으로 만든 동물들에게 마구 재주를 나눠 주다 인간의 차례에서는 아무 기술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동생의 잘못을 메우고 인간을 동물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에게 가서 불과 지혜를 훔쳤다. 그렇게 ‘미리 앞일을 내다보는 자’ 였던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위해 불을 훔친 죄로 코카서스의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생간이 뜯기는 고통을 당한다.


 앞선 생각 속에서 매일 고민하며 살았던 프로메테우스, 날마다 충동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에피메테우스, 이 들 중 가장 행복했던 인물은 누구일까? 요즘 자유분방한 둘째를 생각하니 절로 이런 고민이 떠 오른다. 큰 애는 정말이지 멋도 모르고 키웠다. 선배 엄마들의 조언과 매년 바뀌는 교육 정책에 따라 메마른 나뭇잎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기도 했지만, 뚝심 있게 잘해 주는 큰 애 덕분에 무사히 잘 견뎠다. 하지만 둘째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이지 잘 모르겠다.


 노는 것을 좋아하고, 노력은 싫어하는 둘째, 그런 영향이지, 이 녀석이 다니는 학원은 대부분이 소수정예로, 가볍게 다닐 수 있는 영수 학원들이었다. 올해 둘째가 중3이 되고 보니,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 놀면 나중에 힘들고, 지금 힘들면 나중에 좀 편하다’라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영수 학원들에 전화를 돌렸다. 그렇게 전화를 돌린 결과, 우리 둘째는 이렇게 힘든 학원을 못 버티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동네에서 잘하고 진도를 빨리 뺀다는 수학학원은 주 3회 교육에, 하루 4시간은 기본이었다. 게다가 저녁 시간이 애매하게 걸쳐 있어 매번 저녁은 밖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일정이었다. 순간 노는 것만큼, 함께 쩝쩝거리며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과 둘째 아이의 통곡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듯했다. 결국 우리 둘째는 여전히 적당히 여유 있고, 적당히 숙제해 가도 되는 영수 학원을 그대로 다닌다. 아무리 바꾸려고 용을 써도 본인이 싫으면 그만이다.


 엄마가 되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본의 아니게 ‘프로메테우스’의 심정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 맞춰 미리 수학과 영어 선행을 빼기 위해 학원을 보낸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만 해도  선배 엄마들을 보며 ‘뭘 저렇게 시킬까? 정말 극성이다’라며 내심 흉을 보았다. 지금은 그 모습을 그대로 따라가야 하나 고민 중이다. 미리 안다는 것, 미리 본다는 것은 참 답답하고 조급한 일이다. 둘째 녀석이 겪을 고등학교의 생활을, 숨 가쁘게 돌아갈 입시 미래를 알기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그냥 지켜보고만 있다. 앞서 이미 고등학교 입시 현장 속으로 들어간 큰 애는 매일매일 바쁘게 지낸다. 앞으로 겪을 일, 어쩌면 ‘프로메테우스’의 마음으로 살아가기보다는 어떨 때는 ‘에피메테우스’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좋은 게 아닐지 헷갈린다. 예전에 큰 애가 해맑고 걱정 없는 둘째를 보며 한 말이 문득 떠오른다.


 “엄마, 어차피 공부는 자기가 하는 거예요. 그냥 지켜보세요.”

 “그래? 중3 때도, 고1 때도?”

 “네, 그냥 내버려 두세요.”

 “고2 때도 공부를 안 하면?”

 “음…. 엄마, 그땐 그냥 포기하세요. 이미 늦었어요.”

 음... 그 녀석은 둘째가 자기 아들 아니라고 너무 편하게 이야기한다.


 이렇게 날마다 미리 걱정하고 고민하면서 살지만, 그래도 잘 되겠지. 그냥 그렇게 믿고 기다려 본다. 프로메테우스의 걱정을 내려놓고 편하게. 언젠가 이 걱정도 끝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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