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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r 19. 2022

그림책 <내가 엄마를 골랐어!>와 함께 한 하루

에르디아 비경쟁 토론

 내가 엄마를 골랐다고 주장하는 꼬마가 있다
이 엄마라는 사람은 청소도 얼렁뚱땅, 요리도 엉망진창이라
다른 아이들은 다 싫어했단다.
그런데 한 아이만은 우직하게 이 엄마를 골랐다.
왜 그랬을까?


 일본의 유명한 그림책 작가 노부미의 <내가 엄마를 골랐어!>의 내용이다.

‘엄마가 뭘 해 주길 바라서가 아니라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아이’

그 아이의 모습에서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의 웃음, 화난 표정, 슬픔.


내가 짓는 표정 하나하나에 반응해 주는 존재가 우리 아이들 말고 더 있을까?

내가 사랑해서 결혼한 내 반쪽마저도 가끔은 사소한 일 하나 가지고도 지지고 볶는 게 현실인데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를 비롯한 많은 부모들은 매일매일 실수를 하며 산다.


아이의 성적을 내 성적으로 보고, 아이의 미숙함과 어설픈 모습들이 나 내 잘못인 것 같다.

아이와 나는 분명히 독립된 객체로, 또 다른 존재인데 자꾸만 아이의 모습 하나하나, 결과 하나하나에 ‘동일시’ 시킨다. 그래서 서로 상처 주는 말들, 마음 아프게 하는 행동과 실수를 너무 쉽게 범한다. 내가 이 아이를 ‘선택'했기에, 내가 이 아이의 인생을 ’결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들이 일상의 행동, 말들에 숨어 있다.


 <내가 엄마를 골랐어!> 책으로 아이를 키우는 많은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눈 날,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자신들의 아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내가 낳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나를 선택했구나, 부족한 나를 선택해 줘서 고맙다.”

 “아이를 키우며 계속 배우고 있다.”

 “낳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나 잊었던 감정들이 생각났다.”

 “매번 ‘숙제했니’라는 말만 주로 하고 있는데, 사랑한다,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말해 줘야겠다.”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던 지난날의 애틋한 감정들은 언제 다 사라져 버린 걸까? 아이들은 처음과 똑같은 감정으로 엄마를 바라보고 따른다. 하지만 나 자신만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아이들을 꾸미고 다듬느라 조급함만 늘었다. 이 마음은 무엇을 위한 조급함이었을까?


 “숙제했니?”

 “준비물은 다 챙겼어?”

 “선생님이 뭐라고 하시니?”


 이런 말보다는,


 “예쁜 우리 아이들, 오늘 어땠니?”

 “오늘 무슨 생각했어?”

 “요즘 뭐가 먹고 싶니?”


 학원이,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따라 아이들을 닦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궁금해하고 좋아하는 것에 더 물어보고 생각해 줘야 하는 데 참 많이 부족했다.



 “맨날 다이어트한다면서 초콜릿 먹는 것 좀 봐,

게으른 데다가 엄청난 먹보야.”


 라고 지금의 엄마를 선택하지 말라고 권유하는 신에게 아이는 대답한다.


“괜찮아요! 나는 엄마가 나한테 뭘 해 주길 바라는 게 아니니까요.”


“나는 엄마를 기쁘게 해 주려고 태어나는 거예요.”


 맨날 다이어트한다면서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몰래몰래 챙겨 먹고, 핸드폰을 열심히 하면서 아이들에게 ‘핸드폰 그만하라’고 소리 지른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보며 툴툴거지만 그래도 항상 해맑게 웃는다.


 그래, 얘들아,

지금은 반품이 안 되니까. 너희들이 생각했던 엄마가 아니라고 다시 돌아가지 마라.

나도 처음이라, 잘 모를 때가 많아. 같이 배우고 느끼며 같이 성장하자.


 <내가 엄마를 골랐어>를 읽은 날, 나 역시도 우리 아이들을 새롭게 보는 ‘나’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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