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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Apr 04. 2022

정부의 코로나 정책, 소통을 묻다

 2022년 3월 31일, 목요일, 고2 큰 애가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대한민국에서 호적상 정식으로 18세가 되는 생일날, 그 녀석은 웬만해서는 받기 힘든 '코로나 확진'을 생일 선물로 받았다. 사실 큰 애는 코로나에 걸리기 전에도 주변 친구들의 확진 사실을 알리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코로나 걸리면 1주일은 학교에 안 가고 푹 쉴 수 있겠죠?"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는 기숙사 들어가긴 전 '음성'으로 뚜렷하게 드러난 자가 키트 결과를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코로나 확진'은 어쩌면 겨울방학 때도 계속 공부만 해야 했던 그 녀석에게 1주일이라는 황금 같은 휴가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큰 애의 사정과는 다르게 나의 일상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조금씩 비거리기 시작했다. 새벽마다 나가던 산책을 멈췄고, 신속항원검사와 Pcr 검사를 하고, 집안 곳곳에 소독약을 뿌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집 안 환기를 시키며 제발 집안에 맴도는 바이러스들이 빨리 빠져나가기를 바랐다. 집으로 나가야 하는 일정들을 조절하고 둘째 학교로, 매주 봉사하는 도서관으로, 수업하는 곳, 생각나는 곳들마다 연락을 취해야 했다. 큰 애는 자기 방으로 바로 격리되었고 간간히 문틈 너머로, 카톡으로 아이와 연락을 취하며 필요한 것들을 확인했다. 그동안 익숙했던 일상의 평화는 순식간에 깨졌다.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실 재앙이란 모두가 다 같이 겪는 것이지만 그것이 막상 우리의 머리 위에 떨어지면 여간해서 믿기 어려운 것이 된다. 이 세상에는 전쟁만큼이나 많은 페스트가 있다. 그러면서도 페스트나 전쟁이나 마찬가지로 그것이 생겼을 때 언제나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주위에 코로나 걸린 이웃이 없다면 인간관계가 잘못된 것이다’라는 말이 돌 정도로 주변 곳곳이 코로나의 침투를 받는 요즘이다. 처음 큰 애가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  ‘왜 이런 일이 우리 집에 일어났을 까?’라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모두가 다 같이 겪는 일’이지만, 막상 내 가족에게 벌어지니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괜히 큰 애의 섣부른 말 때문에, '말이 씨가 된 것'같아 화도 났다. 알베르 카뮈가 표현한 것처럼, '재앙이란 모두가 다 같이 겪는 것이지만 그것이 막상 우리의 머리 위에 떨어지면 여간해서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코로나는 우리 집이라고 특별히 비껴가지 않았다. 내가 속한 자연은 잔인할 정도로 공평했고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았다.


 2022년 3월부터 정부는 오미크로 확진세가 커지자 코로나 정책을 크게 바꾸었다. 정부의 완화된 정책으로 코로나 확진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정부가 코로나 방역 정책들을 각 기관들의 자체 해석에 맡기면서  여러 가지 기이한 의문들과 상황들이 생겨났다.


 ‘이렇게 코로나 확진자가 많이 생겨도 되는 걸까?’

 '확진이 되어도 그냥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대.'

 '이제는 코로나가 감기 정도의 증상이라 그냥 일주일만 쉬어도 된다더라.'

 '어떤 학교는 여전히 코로나 환자가 반에서 한 명만 나와도 한 반 전체를 집으로 보낸다던데?'

 '그래? 우리 학교는 그 애만 집으로 가던 걸?'


 올해 전염성이 강한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돌며 점점 코로나 확진자를 키우자 정부는 ‘완화된 방역체계’라고 선언했지만 사실상 ‘항복’을 선언한 것처럼 보였다. 겉으로는 ‘코로나 중증 환자 치료 위주 체계’로 바꾸고 경증자들은 ‘자가 치료 체계’로 바꾸는 것이지만, 바꿔 말하면 ‘알아서 살아남아라’라는 말과 비슷해 보였다. 오미크론의 증상이 백신을 맞은 사람들에게는 ‘독감’과 유사한 증상이라 일주일이면 금방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솔직히 믿을 수가 없었다. 코로나에 걸려 아파하는 큰 애를 멀리서 바라보며 많이 두려웠고 걱정이 되었다.


 이 코로나라는 게 참 우스운 것이 막상 아이가 확진이 되고 나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저 아이의 매 끼와 마실 물을 챙기고, 약이 없으면 대리로 약을 받아오고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방은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아이가 격리된 방 앞에서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을 뿐이다. 간간히 기침하는 큰 애의 목소리를 어렴풋이 들으며 아이의 생사를 확인할 뿐이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맞이한 코로나는 멀쩡한 가족들 관계에 딱딱한 단절의 벽을 만들기도 한다.  평범한 일상을 계속 그려 나가야 할 나머지 가족들에게 문 저 너머에서 크게 기침하는 큰 애는 바이러스에 둘러싸인 잠재적으로 위험한 인물이었다. 볼 수 없어서, 함께 있을 수 없어서 더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kf94 마스크를 쓰고 화장실로 향하는 아들은 떡볶이를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여전히 귀여운 우리 큰 애였다.


 코로나에 걸리고 나면 가족도, 확진자도 무척 혼란스럽다. ‘셀프 치료’라는 것이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일방적인  방임이었다. 큰 애가 확진된 지 3일째 되는 날 아들의 약이 바닥났다. 남편과 둘째와 나는 pcr 검사를 하고 난 후 주말에 영업하는 병원들마다 전화해서 비대면 진료 약을 요청했다. 하필 일요일이라 그런 지 몰라도 병원마다 전화는 불통이었다. 겨우 찾은 약국과 병원들은 따끈따끈하게 방금 코로나 양성을 받은 환자들과 피곤한 일반 환자들이 뒤섞여 아수라장이었다. 올해 초 처음 정부가 설계했던 '완화된 코로나 정책'은 최소한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행히 나머지 가족들은 그다음 날, pcr 음성 판정을 받았고, 큰 애는 이제는 자가격리 마지막 날로 향해서 가고 있다.


 경희대 김만권 교수는 <갈라진 마음>이라는 칼럼에서 소통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통하다'라는 뜻을 지닌 영어단어 'communicate'의 어원을 이야기하며  모두에게 속하는 공통의 것을 만든다는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이 용어에는 '정보를 전하다'와 '감정을 전하다'라는 의미가 함께 있다고 한다. 정부는 그동안 코로나 상황에 따라 코로나 방역 정책을 바꾸었다. 어떨 때는 엄격하게, 어떨 때는 완만하게 풀면서 말이다. 그럴 때마다 무수한 반발과 논쟁이 있었지만 최소한 정부가 국민을 끝까지 지켜주리라는 믿음은 있었다. 하지만 '자가 치료 체계'와 '비대면 진료'로 바뀐 이후, 그 최소한의 믿음이 조금씩 없어져 가고 있다. 이 험난한 생존 경쟁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마저 감도는 요즘이다. 이 코로나 완화 정책이 '국민을 내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코로나 상황에 따라 정책을 바꾼 것'이라면, 정부는 '소통의 의미'를 다시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정말로 국민과 정보 전달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소통하고 있는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지 말이다.  끝이 조금씩 보이는 코로나 팬데믹, 소통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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