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3월, 나는 무엇을 쓰고 지웠을까?”
엘 컴퍼니의 조에스더 님이 진행한 4월 온라인 연수에서 들은 첫 질문이다. 강사는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수업’의 한 대목을 소개하며 ‘지난 3월을 어떻게 기억하냐’고 물었다.
“인간은 어쩌면 지우개가 달린 연필이야. 연필은 기억하고 남기기 위해 있고, 지우개는 흔적을 지우기 위해 있잖아... 지우는 기능과 쓰는 기능을 한 몸뚱이에 달아놓은 그게 우리 인생이잖아. 비참함과 아름다움이 함께 있고 망각과 추억이 함께 있으니 말일세.”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그녀는 ‘인간은 지우개가 달린 연필과 같아서’라는 부분을 인용하며 우리의 인생은 항상 기억하고 지우는 것이 공존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지나간 시간들을 스스로 어떻게 보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같이 연수를 듣는 다른 선생님들은 너무 쉽게 답변을 쓱쓱 채팅방에 적어냈지만, 나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이후 온라인 연수는 나의 고민과 상관없이 계속 진행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지나간 3월 동안 무엇을 쓰고 지웠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 인생이 망각과 추억이 함께’ 공존하지만 내가 보낸 3월은 망각만 가득해서 어영부영 사라져 버린 달처럼 느껴졌다. 올해 2월 초부터 시작된 친정아버지와의 갈등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조금씩 싹 틔워진 작은 미움과 불통의 감정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에 덧씌워졌다. 주변인이 던지는 사소한 말 하나에 상처를 받았고 화가 났다. 그래서 더 생각하기 힘들었고, 지워버리고 싶은 2월이요, 3월 달이었다.
조에스더 강사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감정 통장’이라 비유하며 자신의 감정 통장의 잔액이 얼마 남아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다. 평소 상대방에게서 “와, 멋지다”, “고마워”, 내가 도와줄게 “와 같은 긍정의 언어를 들었다면 순간 그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더라도 이내 그 관계를 쉽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사실 2월 초에 빚어진 친정아버지와의 불화도 이 말이 문제였다. 평소에도 아들과 딸의 차별이 심한 아버지는 항상 딸들에게 ‘출가외인’, ‘쓸모없다’, ‘필요 없다’는 말을 밥 먹듯이 하셨다. 코로나 이전 만남이 잦았던 시절에는 그런 말을 듣더라도 서로의 향한 따스한 눈빛으로 그런 아픔의 말들이 상쇄시킬 수 있었지만, 코로나 이후 전화로만 이루어지는 차가운 대화 속에서는 오해가 쌓이기 충분했다. 항상 오빠와 오빠네 가족들만 우선시하는 아버지를 보며 내 감정 통장들은 점점 잔고가 ‘텅장’이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딸들이 느낀 공통된 감정이었다. 완고한 친정아버지는 자식들을 어릴 때나 성인이 되었을 때 상관없이 여전히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존재로만 대하셨다. 그런 아버지 앞에서 나는 계속 세상이 말하는 일반적인 논리만을 생각했고, 그럴수록 아버지와의 관계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항상 굴복하고 순종하기만을 바라는 아버지 앞에서 그냥 ‘내 말도 들어 달라’고 떼를 쓰고 싶었다. 어쩌면 친정아버지와 나 사이에 필요했던 단어는 서로를 인정해 주는 말 한마디, “고마워, 네가 있어서 너무 고맙다”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3월에 내내 내가 쓴 것은 내 생각만 옳다는 ‘독단’이요, 지워버린 것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감사’의 한마디였던 것 같다. 3월뿐만 아니라, 요 몇 년째, 진실한 ‘감사’의 마음을 잊고 살았다. 내가 열심히 한 결과에 대해 ‘인정’을 받는 것은 당연한 거였고, 종종 내뱉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너무나 상투적이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내 곁에 있는 것도 ‘당연한 거’였고, 내가 숨 쉬고 걸어 다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3월이 되면 꽃이 피고, 4월이 되면 봄기운이 완연한 것을 당연한 이치처럼 받아들이기만 했다. 하지만, 사실 내 주위의 모든 것들, 내 주변의 평범한 일상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 있기에 누릴 수 있는 행운이었고 축복이었다.
문득 자기 방에서 열심히 게임을 하던 중학생 둘째에게 물었다.
“아들, 넌 지금 감사한 것이 뭐니?”
“치킨이요, 지금 바로 치킨만 사 준다면 엄마에게 무지 감사할 것 같아요.”
그냥 저 녀석처럼 단순하게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내 감정 통장은 너무도 쉽게 채워질 텐데 말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지금 내 감정 통장은 비록 ‘0'이지만, 한 달 뒤에는 매일 주변 곳곳에서 ‘감사’를 많이 찾아 억만장자로 태어날 수 있기를 말이다. 그래, 아들아, ‘치킨 사 주는 엄마도 감사하다’고 말한 너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