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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Nov 22. 2021

연을 쫓는 아이를 읽고

  <연을 쫓는 아이, The Kite runner/ 할레드 호세이니 장편소설/열림원>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요.”

 연을 쫓던 아이, 하산이 애타게 바란 탓일까? 드디어 2021년 7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다음 달 말까지 미군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2011년 9월 11일 뉴욕 무역센터 테러가 일어나자 당시 대통령이었던 부시는 테러 배후 조직으로 알카에다를 지목했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그로부터 20년, 미국 정부는 미군 2,400여 명이 죽었고 전쟁 비용으로 2조 달러를 썼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번 달 8월 말이면 완전히 미군을 철수시킨다고 말했다.

 이처럼, 아프가니스탄은 알카에다 탈레반 정부로, 테러의 대명사,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호전적인 나라, 무서운 나라로만 알려진 이 나라를 배경으로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장편소설, ‘연을 쫓는 아이’을 통해 슬프지만 인간미 넘치는 아프가니스탄 인물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이 소설에는 파쉬툰인 아미르와 같이 자란 하자라인 하산이 등장한다. 아미르는 명문가의 자제지만, 태어나면서 엄마를 잃은 탓인지 늘 아버지 바바의 사랑을 갈구한다. 강건한 성격의 소유자 바바는 늘 나약한 아미르를 못마땅해한다.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나갔던 연싸움에서 아미르는 우승을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형제처럼 자란 하산의 불행을 외면하고 만다. 이후 아미르는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하산을 도둑으로 몰아 집에서 내쫓아버린다.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후, 아미르와 바바는 미국으로 피신하고 부유했던 아프가니스탄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이후 소설가로 성공한 아미르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아미르의 정신적 지주였던 라힘 칸의 요청으로 파키스탄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아버지와 하산과 관련된 엄청난 비밀을 듣고 다시 자신의 고향이었던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간다. 아미르는 완전히 파괴된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릴 적 두려워했던 아세프가 하산의 아들 소랍을 성적으로 유린하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연을 쫓는 아이’는 아미르의 성장을 토대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전통을 치밀하게 끼워 넣고 있다. 소설은 1979년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의 침공부터 9.11 미국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전쟁까지 오로지 ‘테러국’으로만 기억하는 딱딱한 정보 외에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생생한 사람들의 삶을 보여 준다. 책 속의 파쉬툰인과 하자라인의 치열한 인종 갈등은  복잡한 아프가니스탄의 지리적 역사를 엿보게 한다. 아프가니스탄은 중앙아시아와 중동, 남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내륙국에 위치하여 일찍이 ‘제국의 무덤’이라 불렸다. 숱한 제국들이 멸망하고 바꿨다. 이렇게 내륙의 중앙에 떡하니 자리 잡아 숱한 비극의 실마리를 안겨준 조상을 탓해야 할지, 비극을 마냥 받아들여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소설 속의 아프가니스탄인의 삶은 너무나 가슴 아프다.

 명문가에 부자인 아버지의 그늘에 아래 자란 아미르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그가 어린 시절에는 피폐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삶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기득권이자 부유한 파쉬툰인 아미르의 시선을 따라 파쉬툰인과 하자라인의 갈등이 무심히 스쳐 지나갈 뿐이다. 하지만 장면이 바뀌고 기득권이었던 아미르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하여 초라한 미국 이민자의 입장이 되면서 아프가니스탄인의 비극적인 삶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비참한 삶을 살지만 옛날의 영광을 그리며 허세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인의 긍지를 잃지 않으려는 인물, 철저한 남존여비 사상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인물 등등 여러 인생 형태가 보인다. 특히 아미르가 라힘 칸의 부름으로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온 이후, 처참한 아프가니스탄인의 삶은 가감 없이 묘사된다. 눈에 잔뜩 끼었던 텁텁한 눈곱들이 매서운 외세의 물보라에 씻겨 나가는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인들의 불행은 아프도록 시리게 눈에 파고든다.

 ‘연을 쫓는 아이’는 한 인간의 성장과 평화의 중요성을 날카롭게 표현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좋아하는 연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좋은 연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줄에 날카롭게 유리조각을 먹이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원하는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고 아픔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에 살고 있지 않아서, 지금 평화로운 세상에 살고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하지만 이 평화는 다른 사람들의 희생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아프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 어쩌면 공도동망의 정신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하나의 운명공동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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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들었던 문구들)


-과거에 대해, 과거를 묻어버릴 방법에 대해 떠들어대는 다른 사람들의 말은 엉터리이다. 아무리 깊이 묻어둬도 과거는 항상 기어 나오게 마련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26년 동안 인적 끊긴 그 골목길을 줄곧 엿보고 있었던 것 같다. (p9)


-속죄받지 못한 죄들로 얼룩진 내 과거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중략)

 갑자기 마음속에서 하산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들려왔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요.”

 연을 쫓아 달려가던 언청이 하산.

 (중략)

 하늘을 날고 있는 두 개의 연을 바라보자 하산과 바바, 알리와 카불이 떠올랐다. 1975년 겨울이 닥치기 이전의 삶도 떠올랐다. 1975년 겨울로 인해 모든 것이 확 바뀌어버렸다. 그리고 그해 겨울로 인해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p10)


-바바가 말을 시작했다.

 “네가 사람을 죽이면 그것은 한 생명을 훔치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아내에게서 남편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고 그의 자식들에게서 아버지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진실을 알아야 할 다른 사람의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네가 속임수를 쓰면 그것은 공정함에 대한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알겠니? (p32)


-"자식이란 스케치북이 아니네. 자네가 좋아하는 색깔로 스케치북을 채울 수는 없어.”

 “내 말은, 내가 어렸을 적에는 저 애랑 완전히 달랐다는 거야. 나랑 같이 자란 친구들 중에도 그런 애들은 아무도 없었어.”

 “때때로 자네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가장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기도 하네.” (p38)


-그러나 바바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더라도 알리를 친구라고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 역시 하산을 친구로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친구가 아니었다. 두 손을 놓은 채 자전거 타는 법과 마분지 상자로 카메라 만드는 법을 서로에게 가르쳐주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략)

 그 모든 것은 중요하지 않다. 역사를 극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어쨌든 나는 파쉬툰인이고 하산은 하자라인이었다. 나는 수니파이고 그는 시아파였다. 그리고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그 사실은 바뀔 수 없었다.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그러나 우리는 어렸을 적에 함께 기어가는 법을 배웠다. 역사도, 인종도, 사회도, 종교도, 그것을 바꿀 수는 없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열두 살까지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하산과 함께 놀며 보냈다. (p42-43)


-글을 읽을 줄 모르는 하산을 위해 책을 읽어주면 하산은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무심하게 풀잎을 따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럴 때면 석류 잎 그림자와 햇살이 하산의 얼굴에서 너울거렸다. 하산 역시 알리나 다른 대부분의 하자라인들처럼 문맹으로 자라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그가 태어난 순간, 어쩌면 달가워하지 않는 사나우바르의 뱃속에 그가 잉태된 순간 이미 결정되었다. 하인에게 글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문맹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것 때문에 하산은 말의 신비에 끌리고 그에게는 금지된 비밀스러운 세계에 유혹되었는지도 모른다. (p46)


-"하산, 네가 그 돈을 훔쳤니? 아미르의 시계를 훔쳤니?“

 하산이 귀에 거슬리는 희미한 목소리로 한마디로 대답했다.

 ”예“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몸이 휘청거리고 가슴이 쿵하며 내려앉았다. 사실을 털어놓으려다가 그것이 나를 위한 하산의 마지막 희생이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만약 하산이 아니오,라고 대답했다면 바바는 그 말을 믿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 하산이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바가 하산의 말을 믿는다면 내가 혐의를 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내가 저지른 짓이 드러날 것이다. 바바가 절대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산의 행동을 통해 또 다른 사실을 깨달았다. 하산은 다 알고 있었다. 내가 골목에서 모든 것을 보았다는 것을. 내가 그곳에 서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내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한번, 어쩌면 마지막으로 나를 구해주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 어떤 사람보다 그를 더 사랑했다. 그에게 내가 숨은 적이며 호수 속의 괴물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이런 희생을 받을 가치가 없었다. 나는 거짓말쟁이에 사기꾼이며 도둑이었다. 마음 한구석이 기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사실을 다 밝혔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곧 끝난다는 사살이 기뻤다. 바바가 그들을 쫓아낼 것이고 조금 고통스럽긴 하겠지만 나는 계속 살아가게 될 것이다. 깨끗이 잊어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다시 숨을 쉬고 싶었다. (p161-162)


-내게는 미국이 과거를 묻을 수 있는 곳이었다.

 바바에게 미국은, 과거를 애도해야 하는 곳이었다. (p196)


-비에 젖은 그의 얼굴에 혐오스럽다는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은 내가 어렸을 적에 넘어져서 무릎이 까져 울 때 나를 쳐다보며 짓던 것과 똑같은 표정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내가 우는 것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p238)


-"자기 아들은 재미 삼아 나이트클럽에도 가고 여자 친구를 임신시켜서 사생아를 낳아도 어느 누구 하나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남자들은 그저 즐기는 것일 뿐이라고 하면서요. 그런데 내가 한 번 실수를 하니까 갑자기 모든 사람이 명예와 자부심 타령을 해요. 평생 그것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살아야 되나 봐요.”


(중략)


“그런데 집 밖으로 나가자 수군거리는 소리들이 들렸어요. 어디를 가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어요. 4년 전에 4천8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이었는데, 지금도 그 소리르 듣고 있어요.” (p269-270)


-제발 생각해보렴, 아미르 잔. 그것은 수치스러운 상황이었다. 사람들이 수군댔을 것이다. 그 당시에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명예와 평판이었다. 만약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퍼져 나갔더라면...... . 우리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너도 그건 잘 알 것이다.”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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