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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Apr 16. 2022

그날의 기억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사람들을 추모하며

 봄의 벚꽃은 화사하게 꽃봉오리를 피울 때도 예쁘지만 세찬 비를 맞고 땅에 떨어져 있을 때도 마음이 뭉클하게 아름답다. 며칠 전 우산을 쓰고 나갔던 동네 공원, 그 전날까지는 아무 걱정 없는 얼굴로 환한 웃음을 보여줬던 분홍 벚꽃들이 밤새 내린 비들로 땅 위에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마치 하얀 싸리 눈처럼 말이다. 그 위를 조심스레 걸으면 사각사각 하얀 꽃들의 소리 없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벚꽃들이 생각지도 못한 빗방울로 우수수 져 버릴 줄 알았더라면 더 많이 쳐다보고 웃어주며, 그 피어나던 모습들을 눈으로, 마음으로 더 많이 담아둘 것을 그랬다.


 2022년 4월 16일, 오늘의 날씨는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새벽부터 짐을 싸서 설렐 만큼 화창했다. 기분 좋을 만큼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고 바람도 선선했다. 8년 전의 오늘, 고2 아이들은 친구들과 제주도에 가서 추억을 만들 생각으로 얼마나 설렜을까?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게임도 하고, 배를 타는 그 순간까지도 끝없는 수다로 선생님들께 많은 주의를 들었을 것이다.


 올해, 우리 큰 애는 그 아이들과 같은 학년이 되었다. 그 사건 이후 8년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우리 아이가 고등학생이 될 만큼 오랜 시간이었다. 처음 그 일을 생생하게 눈으로 볼 때도 너무나 슬펐고 마음이 아팠지만, 우리 아이가 바로 그 아이들과 같은 나이가 되니 그날의 아픔이 더 가슴 미어지게 다가온다.


 대한민국 부모들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은 충격을 남긴 그 사건은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났다. 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많은 의문점들을 가진 그 일, 우리는 이 사건을 ‘4.16 세월호 참사’라고 부른다. 전체 탑승자 476명 중 304명이 여객선 세월호와 함께 그대로 침수한 대형 사건이지만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의문들이 따라다니고 있다. 세월호 유족들의 애끓는 외침들은 입장이 서로 다른 사람들의 말속에 변색되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매년 4월 16일만 되면 트라우마처럼 생생하게 머릿속으로 그날의 장면들을 떠올렸다.


 2014년 4월 16일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난데없이 전해진 소식으로 모든 사람들의 눈과 귀는 뉴스로 향했다.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여러 승객들이 태운 여객선이 갑자기 침몰하고 있다는 속보였다. 사람들은 순간 긴장하며 재빨리 핸드폰을 주시했지만, 이내 모두 구출되었다는 소식에 안심했다. 하지만 이내 그 뉴스는 오보로 밝혀졌다. 대한민국 국민들을 평생 동안 눈물바다로 잠기게 할 비극의 시작이었다.

 

 며칠 동안 사람들은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배가 서서히 가라앉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바라봤다. 점점 바닷속으로 잠기는 여객선을 바라보며 우리 어른들은 너무도 무력했고 보잘것없었다. 그냥 배 한 귀퉁이를 잡아 올리기만 하면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영웅은 없었다. 영화에서처럼, 영웅이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 사람들을 구출하는 일은 영화에서만 가능했다. 서서히 가라앉는 여객선 안에서  아이들은 조금씩 밀려오는 바닷물을 마시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저 얌전히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여객선 안내 방송을 들으며 꼭 구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놓치지 않았을까?


 그 일 직후, 대한민국 부모들은 품속의 아이들을 몇 번이고 확인하며 부둥켜안았다. 공부보다는 안전이 제일이라며 수영을 앞 다투어 시켰고 어른들의 말을 무조건 믿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저 아이들이 착하고 어른들이 만든 규칙을 잘 지키기보다는 상황에 맞춰 영악하길 바랬다. 비극을 겪은 고등학교가 위치한 안산의 그 동네는 누구도 웃지 못하는 유령 동네가 되었다. 같은 나이의 고등학생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우리 아이들 역시 그 배를 탔을 당사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후일담을 전해 들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2014년 4월 제주도로 향하는 수학여행이 유행이었던 당시, 세월호는 수도권 고등학교들이 경쟁적으로 예약하던 여객선이었다.


 벌써 정권이 3번째 바뀌고 8년이 지난 지금, 세월호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사건이다. 304명의 아까운 생명들이 죽었지만 그 일은 여전히 찜찜함을 남긴 채 점점 기억 속에서 잊혀 가고 있다. 몇몇 정치인들이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게 아이들을 온전히 보내는 일"이라고 했지만 이 일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2014년 4월 16일의 비극, 그 사건에는 대체 어떤 힘이 숨겨져 있는 걸까?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라는 대통령마저 나서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외치지만, 여전히 말뿐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가장 큰 책임자로 지목돼 자리에서 물러났던 '해피아(해양수산부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들이 돌아오고 있는 말마저 들려오는 실정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기억에서도 멀어지는 법일까? 오늘 우리는 여전히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다. 봄 날씨는 화창했고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봄의 정취를 만끽하며 이곳저곳을 산책했다. 그 아이들과 같은 학년인 아이들은 곧 있을 중간고사 준비로 이런저런 학원을 다니느라 분주했다. 공부보다는 아이들의 안전이 최고라며 말했던 어른들 역시 그날의 가슴 아픈 기억들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모두들 8년 전에 가슴 미어지게 흘렀던 눈물들은 이미 바짝 말라 버렸고 일상의 평온 속에 묻혀버렸다.


 슬픔은 어떻게 기억해야 좋을까? 세월호의 아픔을 노래한 정호승 님의 시로 그 마음을 달래 본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정호승 세월호 추모시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별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그대를 만나러 팽목항으로 가는 길에는

아직 길이 없고

그대를 만나러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는

아직 선로가 없어도

오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



푸른 바다의 길이 하늘의 길이 되던 그날

세상의 모든 수평선이 사라지고

바다의 모든 물고기들이 통곡하고

세상의 모든 등대가 사라져도

나는 그대가 걸어가던 수평성의 아름다움이 되어

그대가 밝히던 등대의 밝은 불빛이 되어

오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


한 배를 타고 하늘로 가는 길이 멀지 않느냐

혹시 배는 고프지 않으냐

엄마는 신발도 버리고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아빠는 아픈 가슴에서 그림의 면발을 뽑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을 만들어 주었는데 친구들이랑 맛있게 먹긴 먹었느냐


그대는 왜 보고 싶은 때 볼 수 없는 것인지

왜 아무리 보고 싶어 해도 볼 수 없는 세계인지

그대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잊지 말자 하면서도 잊어버리는 세상의 마음을

행여 그대가 잊을까 두렵다.


팽목항의 갈매기들이 날지 못하고

팽목항의 등대마저 밤마다 꺼졌다고

나는 오늘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봄이 가도 그대를 잊은 적 없고

별이 져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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