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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y 09. 2022

좋은 수업을 만드는 첫 번째 조건, 사람에 대한 믿음

 한 단체의 프린랜서 강사로 일하다 보면 참 많은 의뢰인과 만난다. 주로 학생들과 하는 수업이다 보니 끝나고 나면 항상 뿌듯함과 함께 성취감을 많이 느낀다. 물론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들은 매번 어렵고 힘들다. 기존에 만들어 둔 수업 자료들로 ‘재탕, 삼탕’을 하며 수업을 하면 정말 좋겠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의 수업 의뢰인들은 매번 다른 주제를 요구한다. 그래서 수업 의뢰인들의 요구에 맞춰 새로 수업 자료를 만들다 보면 수업 준비 전 과정이 너무나 오래 걸린다. 게다가 내가 주로 하는 퍼실리테이션, 디자인 씽킹 수업은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전달하는 수업이 아니라 참여자들과 만들어 가는 수업이라 항상 ‘Zero’ 상태에서 시작한다.

‘참여자들의 상호작용은 어떻게 이끌어 내야 할까?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야 할까? 참여자들이 정말 원하고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새하얀 백지 위에 하나씩 채워가는 수업이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하고 나면 재미있다. 하지만, 이번에 의뢰받은 프로젝트 수업은 그렇지 못했다. 우선 수업을 의뢰한 선생님이 너무나 열정이 넘치셨고, 의뢰 분야의 전문가셨고, 마지막으로 나를 비롯한 수업할 우리 선생님들을 너무 믿지 못했다. 이 수업은 처음 준비단계부터 마지막 마무리까지 삐걱거림의 연속이었다.


 처음 그분이 우리 단체에 수업을 의뢰하셨을 때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다. 다른 학교와는 다른 주제라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요즘 가장 떠오르는 주제라 오히려 참신했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같이 스타디를 하며 열심히 수업을 준비하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프로젝트 관리를 맡은 PM 선생님 말하길, 갑자기 수업 의뢰인 선생님이 우리 선생님들 첫 스타디에 참여를 하신다는 거였다. 그것은 늦은 10시에 말이다. 처음에는 ‘와, 선생님이 열정이 정말 대단하시구나. 학교 선생님이 이렇게 밤늦은 회의에 참여하시다니….’라고만 생각했다. 연세가 있으신 데도 이토록 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생각하니 더욱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회의에 참여하시는 이유가 학생들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고 앞으로 진행할 수업에서 원하는 요구사항만을 밝힐 줄 알았다. 내 의도와 달리, 그분은 수업 주제와 관련 없는 분야는 30분 이상 이야기하셨고, 대뜸 선생님들에게 이 주제에 대해 수업해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그러면서 다음 스타디에도 계속 참여하겠다고 통보하셨다.


 그 선생님과 하는 스터디는 일주일에 4번 이상 지속되었고, 매일 자정이 넘어서야 끝났다. 하지만 그건 스터디가 아니라 일방적인 전달사항이었다. 그분은 본인이 들은 여러 가지 연수 자료며 1시간이 넘는 영상들을 매번 단톡방에 올려대며 다 보라고 독촉했다. 1주일밖에 안 남은 수업 일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하루 6교시 수업 중, 1, 2교시는 자신의 자료들로 수업을 해 달라며 수업 전날 150페이지가 넘는 ppt를 단톡방에 보냈다. 프로젝트 선생님들은 우리들만이 모인 단톡방에서 저마다 불만을 터뜨렸지만, 그래도 다음 날 만날 학생들을 생각해서 꾹 참았다. 150페이지가 넘는 자료들을 잠을 설쳐가며 다 추리고 빼고 정리를 했다.


 그렇게 시작한 1교시와 2교시 수업, 그 선생님의 자료들을 보여주는데 아이들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다. 이미 이 친구들은 작년에 이런 식의 자료들에 너무 치여서 질려 버린 눈치였다. 그래도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 좋은 분위기로 6차시 수업을 마무리 지었다. 같이 수업한 선생님들도 힘든 미션을 마쳤다는 안도감에 표정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그 선생님과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각 반의 상황을 너무나 알고 싶어 했다. 이미 모든 반을 다 돌아다녔으면서 말이다. 1교시 수업부터 6교시 수업을 마친 다른 선생님들의 몸 컨디션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도 1시간이 넘게 우리는 그 선생님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각 반의 수업 분위기를 소상하게 브리핑했다. 그 후, 집에 가서 각 반 수업 결과물을 모두 정리해서 단톡방에 올렸다.


그런데 여전히 마지막 한 방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하루 뒤, 선생님은 갑자기 단톡방에 카카오톡을 올렸다. 수업 자료를 그 선생님의 틀에 맞춰 다시 한번 상세하게 정리해 달라는 거였다. 아울러 수업했던 ppt와 함께 말이었다. 1, 2차시는 그 선생님의 수업 자료였지만, 3~6교시는 우리 자체적인 콘텐츠라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체 말이다. 우리 수업을 끝난 뒤 아이들에게 온라인 설문을 했는데, 학교에서 진행하던 기존의 학교 수업보다 너무나 좋은 피드백이 나왔다는 거였다. 그 선생님은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궁금해했고 자료를 얻고 싶어 했다. 그런 수업을 학교 선생님들과 스타디를 해서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도 말했다.


 왜 아이들이 그런 피드백을 했을까? 하루짜리 단기 수업을 한 나도 아이들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은데, 아마 그 선생님은 계속 모르실 것이다. 수업을 의뢰한 선생님은 열정도 많고 배움에 대한 욕구도 강하고 참 좋은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그분은 단 하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어 보였다. ‘무조건 내가 다 해야 하고, 남이 하는 것은 다 믿을 수 없어’라는 마음이 강해 보였다. 그래서 4번이 넘는 수업 미팅에서, 매일 자정이 넘는 미팅마다 우리는 이런저런 제안과 아이디어를 말했지만,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미 그분에게는 자신만의 확고한 수업 계획안과 의도가 있었다. 어쩌면 그분은 결사반대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자신의 150장이 넘는 자료를 90분 안에 다 못하리라는 생각하고 아이들의 이해력에 맞게 15%의 자료로 다 줄였다는 것을 알면 말이다. 그분은 선생님들에게 수업 전날 150장이 넘는 자료를 다 넘기고는 다음 날 수업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을까? 그냥 읽어주기만 해도 힘든 자료들인데 그 시간 안에 아이들이 다 이해하리라고 생각했을까?


 이 프로젝트는 아마도 내 수업 경력에서 최고로 힘들었던 수업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난주는 모든 일상을 다 멈추고 오직 이 수업에만 매달렸다. 밤새워 자료를 만들고, 자료를 추리고 채우고 말이다. 하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할 만했다. 어차피, 수업은 언젠가는 끝이 있는 법이니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수업을 준비하면서 느낀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한다’라는 부정적인 감정과 ‘프로 강사가 아그 선생님의 아바타’로 취급되었다는 점이다. 아마 그 선생님은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만난 그분은 학생들을 많이 생각하는 참 좋은 분이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 수업을 자기 수업의 연장선으로 생각했고, 이른바 실험을 했다. 똑같은 프로세스의 수업인데, 다른 외부 강사가 수업할 때 어떻게 아이들이 반응하는지를 보는 것 말이다. 실제로 예전에 학교 선생님들이 진행했던 같은 프로세스의 수업은 아이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그 선생님은 우리 수업의 비밀을 ‘수업 ppt’에서 찾았기에 계속 자료를 요구했다. 솔직히 우리 수업의 비밀은 별다른 것이 없다. 우리 선생님들은 퍼실리테이터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원칙, ‘모든 사람의 의견은 동등하다’를 기본으로 수업을 했을 뿐이다. 본인의 의견을 무조건 앞세우지 말고, 경청하고 공감하고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고 믿고 수업을 진행했을 뿐이다. 그건 우리 단체의 퍼실리테이터라면 누구나 받는 기본 교육의 일부이다. 그 선생님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한, 아마 영원히 이날 했던 우리 수업의 비밀은 영원히 묻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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