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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y 27. 2022

학교 공개 수업을 둘러싼 치열한 눈치싸움

 5월은 바야흐로 학교 공개수업 기간이다. 근 3년 동안 코로나 상황으로 학교 방문이 일절 금지된 탓에 학부모들은 학교 안에서의 아이들의 모습이 무척 궁금하면서도 쉽게 그 속내를 내비치지 못했다. 그런 부모에게 ‘학교 공개수업’이라는 명목으로 발행되는 학교 공식 초대장은 무척 반가운 선물이다. 안타깝게도 이 선물은 부모에게만 해당되는 모양이다. 학교 공개 수업일이 공식적으로 정해지고 나면 부모와 아이들 사이에는 치열한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초등학교 공개 수업일 경우에는 큰 문제가 없다. 학교 선생님과 아이들도 공개 수업을 축제처럼 준비한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공개 수업일을 무척 고대하 즐겁게 참여한다. 실제로 초등학교 공개 수업일에 가면 정말 많은 분들이 온다. 학교 선생님들은 참여하는 부모님들의 관심과 열정을 보답하며 학생과 학부모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공개 수업을 준비한다. 때론 이런 수업 날 집안의 내밀한 사정들이 아이들의 순진한 답변 속에 속속히 드러나기도 한다. 평소 듣지 못했던 아이들의 솔직한 감정들을 샅샅이 들을 수 있다. 혹시라도 공개 수업 전에 아이들을 혼낼 일이 있다면 그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아이의 불평불만이 숨김없이 드러나 공개적으로 망신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이렇게 모두에게 축제와 같은 공개 수업은 아이의 학년이 점점 올라가면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금지일’로 변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학교는 매년 부모님들을 모시고자 학교 문자며, 학교 알림 앱이며 열심히 공문을 띄우지만, 아이들은 그런 학교 사정은 가뿐히 무시한 채 집안에서 치열한 공작을 시작한다. 아이들이 저마다 내 세우는 이유들은 거의 똑같고 단순하다. 신기하게도 그 변명들이 엄마들에게는 너무나 잘 먹힌다. 그래서 아이들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부모님들의 학교 공개 수업일 참석률이 낮아진다.


 모든 엄마들에게 ‘Free pass'처럼 통하는 그 변명은 딱 하나다.

 “엄마, 오지 마세요. 우리 반 부모님들은 아무도 안 온댔어요.”

 대한민국 사람 중에서 학교에서 아무 이유 없이 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특히 아이가 학교를 다니는 경우, 부모는 괜스레 작아진다.

 ‘내 행동 때문에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눈총을 받지나 않을까?’

 ‘엄마가 너무 유별나다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까?’

 ‘혹시 왕따라도 당하지 않을까?’

 그런 조바심으로 부모들은 궁금증을 꾹 누른 채 공개수업 참관을 과감히 포기한다. 단지 우리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이번 공개수업 참관에도 아이들과 엄마의 복잡한 실랑이들이 숨어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번 공개 수업일은 중학생 둘째와 고등학생 큰애의 학교가 겹쳤다. 수업 시간이 오전과 오후로 나뉜 것은 천만다행이었지만 말이다. 둘째의 공개 수업은 비교적 근거리에 있어 쉽게 참관을 결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버스를 2번 갈아타고 가야만 하는 큰 애의 학교는 쉽게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큰 결심을 하고 아이들의 공개 수업일에 모든 일정을 비워두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아이들의 공개 수업 거부에 대한 진입장벽을 넘기는 쉽지 않았다. 그 녀석들이 준비하는 변명 역시 매년 새롭고 교묘해졌다. 특히 큰 애는 혼자라도 학교에 갈 엄마의 성미를 안 탓인지 공개 수업에 오면 안 되는 이유들을 정말 다양하게 준비했다.(사실, 그 녀석이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이미 혼자라도 학교 공개 수업일에 참관한 적이 있다.)


 -엄마, 진짜 다른 부모님들은 아무도 안 오신대요. (응, 괜찮아. 엄마 혼자라도 잘 보고 올 수 있어.)


 -엄마, 차도 없이 버스를 2번 갈아타고 오시면 엄마 몸이 너무 힘드실 것 같아 걱정이에요.(응, 괜찮아. 엄마, 튼튼해)


 그렇게 큰 애가 준비한 1,2단계 변명은 가볍게 넘길 수 있었으나 3단계 변명에서는 그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 학교에서 엄마를 보면 너무 반가워서 학원을 못 갈 것 같아요. 그날 영어 학원은 빠져도 될까요? (음,,, 그건..)


 아이가 교육받는 환경을 살펴보기 위해 공개 수업을 참관하는 것인데, 나 때문에 학원을 빼는 것은 못할 짓이었다. 그래서 매우 아쉬운 마음으로 큰애의 공개 수업 참관을 포기했다. 그런 형과 엄마의 치열한 눈치싸움을 근처에서 바라보던 둘째는 반쯤 포기한 목소리로 “제 공개수업에는 오셔도 돼요.”라고 덧붙였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참여한 둘째의 학교 공개 수업, 다행히 생각보다 많은 부모들이 참여했고 별로 튀지 않은 채 공개 수업 참관을 마무리 지었다. 수업은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즐거웠다. 물론 울 둘째는 쉬는 시간 내내 친구들과 놀기 바빠 한 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가끔 수업 시간에 내 쪽을 힐끗거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쉬는 시간마다 조잘대는 딸들의 손을 잡고 방긋거리는 엄마들 틈에서 나처럼 아들을 가진 엄마들은 애처롭게 게임을 하는 아들들을 쳐다보기만 했다. 세상에, 옆집 엄마가 와도 그렇게는 안 할 텐데......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참여한 중학교 공개 수업은 함께 참여하는 축제의 한 마당이었던 초등학교 공개 수업과는 달리 투명한 어항 속의 풍경이었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이 가른 교실 뒤편에서 아이들은 수업을 받고 부모들은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이 부모의 학교 참관을 거부하는 이유는 단지 ‘부끄럽고 싫다는 이유’였을까? 아이들은 왜 부모의 관심을 거부했을까? 쳐다보는 눈길 속에 섞인 부모들의 기대감 때문에, 혹은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공개수업 참관을 거부하는 걸까?


 공개 수업을 가기 전 남편이 물었다. 생일 선물을 준비할 때도 아이들의 의견을 먼저 묻고, 잘 배려하는 사람이 왜 공개 수업만은 아이들의 의견을 잘 안 듣느냐고. 왜 그럴까? 잘 모르겠다. 그냥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잘 수업을 받고 있는지, 잘 지내는지 그런 걱정과 호기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제 마지막일지도 모를 아들의 학교 공개수업, 나는 그 수업을 다녀왔고, 이제 둘째의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들을 일만 남았다. 학교에서 두 시간 동안 내내 다리 아프게 서 있었건만 또 아들의 잔소리를 들어야 하다니... 그래도 수업을 잘 봤으니 후련하다. 고 녀석, 그래도 수업 시간에 안 졸아서 다행이다. 맨날 노는 줄만 알았더니, 그래도 수업을 잘 듣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다. 둘째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한 날, 고 녀석의 학교 공개수업 참관 소감,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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