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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ul 02. 2022

때로는 잔소리보다 칭찬을

 얼마 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중3 둘째의 시험이 끝났다. 아들의 학교는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1학기에 한 번, 2학기에 한 번 시험을 본다. 확실히 공부 부담감은 덜하지만, 시험기간이면 유독 아들의 시험에 대한 긴장감은 평소보다 두세배 더 증가한다.


 그런 영향으로 둘째는 시험 기간이 되면 갑자기 ‘대한민국 시험 전문가’, ‘공부 전문가’가 된 양 호들갑스럽게 질문들을 쏟아낸다.


 “왜 시험을 보는 걸까요?”,

“왜 우리나라와 상관없는 다른 나라의 역사를 왜 알아야 할까요?”,

 “왜 이 단어를 외운다고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평소에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유튜브만 보고 있을 녀석이 시험 기간만 되면 계속 엄마 뒤만 졸졸 쫓아다니며 저렇게 질문을 던져대니 답답한 노릇이다. 예전에 나는 시험기간이면 그렇게 방 청소를 열심히 해 댔는데, 아들 녀석은 갑자기 ‘질문’으로 시험 스트레스가 오는 모양이다. 아들의 질문에 ‘그냥 들어가서 시험공부나 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그 녀석은 ‘이 심오한 궁금증을 푸는 것이 시험 준비보다 가장 큰 숙제’ 인양  "왜요?"라고 몇 번을 외치다 입을 삐죽거리며 방으로 들어간다.


 드디어 시험이 끝난 후, 둘째는 신난 표정으로 집에 들어와서는 시험 성적들을 읊어댔다. 이런저런 과목들의 점수를 먼저 이야기하고는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영어, 수학, 기술가정, 국어, 과학 등등... 그런데 이상하게도 녀석이 싫어하는 역사와 사회의 점수만 쏙 빼고 대충 얼버무렸다. 알고 보니, 너무 못 봐 나름 선별해서 이야기한 것이었다. 아들이 조심스레 말한 그 과목들의 점수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과라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 참에 그 점수를 만든 아들의 벼락치기 공부습관을 바로 잡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문득 아들을 쳐다보니 눈가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있다. 살짝 미안한 생각이 들어 왜 우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들은 억울한 듯 울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왜 엄마는 잘 본 과목들은 싹 무시하고 못 본 과목들만 가지고 이야기해요?”


 참 이상한 일이다. 항상 아이들을 보면 세상을 대할 때 밝고 긍정적인 면을 먼저 보고, 장점을 발견해서 더 키워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아이들을 대할 때만큼은 긍정적인 면보다는 못하고 부족한 면이 더 먼저 눈에 들어온다. ‘조금만’ 노력하면 될 것 같은데, ‘조금만’ 바꾸면 될 것 같은데, 항상 그 ‘조금만’의 노력이 안 되어서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게 안타까워서 계속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반복한다.


 혹 엄마인 내가 그 부족한 점을 꼬집어서 상세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못 고칠까 봐 항상 전전긍긍이다. 저번에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하고 일깨워준다. 엄마가 말하지 않아서 아이들이 자신의 단점을, 개선점을 찾지 못할까 봐 걱정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진짜 아이들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몰라서 못 고치는 걸까? 그래서 매번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자신도 본인의 부족한 점을 너무도 잘 알지만, 실수와 함께 성장하는 ‘사람’인지라, 알면서도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의외로 칭찬에 인색하다. 본인뿐만 아니라, 남들에게도 말이다. 혹 본인은 그동안 항상 칭찬만 들었다고 여겨진다면, 그건, 엄청 완벽하게 잘했거나, 밝고 긍정적인 면만 콕콕 골라서 칭찬을 하는 귀인들을 옆에 둔 탓일 것이다. 나 역시도 지금까지 무조건적인 칭찬을 들어본 험이 없다. 항상 모든 일의 결과가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함께 어우러지다 보니 좋은 점은 아주 가볍게 언급되고, 고쳐야 할 아쉬운 점들만 더 크게 부각되고 했다. 나의 성장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은 단점을 고쳐주는 것이 가장 큰 호의라 믿으며 여러 가지 단점들에 대한 피드백을 늘어놓곤 했다. 더 큰 발전을 바란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물론 이렇게 시간을 내어 피드백을 해 주는 것은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그런 고마움을 익히 알면서도 사람의 심리가 신기한 게 계속 단점에 대한 피드백을 들으면, ‘난 원래 부족한 사람인가? 못난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런 경험이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결국 ‘그래, 이만하면 됐지 뭐. 난 어쩔 수 없나 봐. 이제 그만하자’라며 포기하게 된다.


 좋은 호의로 시작했던 피드백이 이렇게 안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은 왜 일까? 내가 시험을 본 둘째에게 잘 본 과목들을 제치고 못 본 과목들에 대해 잔소리를 했던 이유는 그렇게 해야 아들이 다음 시험을 더 잘 준비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신뢰 뒤에는 내 말에 상처받을 둘째의 마음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내 앞에서

“왜 엄마는 잘 본 과목들은 싹 무시하고 못 본 과목들만 가지고 이야기해요?”

둘째의 한 마디는 케케묵은 믿음이 깨지는 충격을 받았다. 난 왜 아들의 좋은 점을 무시한 채, 못한 점만 가지고 이야기했을까? 나는 왜 이렇게 장점보다는 단점만 부각하는 피드백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던 걸까?


 결국 상처받은 둘째를 달래며 사과를 했다. 엄마가 ‘너의 시험기간 준비했던 노력과 성과를 축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구체적으로 말하면서 말이다. 뭐 못 받은 점수를 콕 집어서 내가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미 아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때론 잔소리를 빙자한 채찍질보다 따뜻한 칭찬의 한 마디가 필요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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