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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Aug 29. 2022

나를 바라보는 관점

 며칠 전 중3 둘째가 지금까지의 중학 내신성적과 함께 고등학교 신청서를 가지고 왔다. 이미 그 녀석의 성적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고등학교 신청하려고 보니 매우 속상했다. ‘좀 알아서 공부했으면 얼마나 좋아?’라는 생각에 괜스레 그 녀석의 성적표만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몇 년 전, 공부를 잘해서 원하는 고등학교를 골라갈 수 있었던 큰 애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조금 뒤 그런 나를 본 남편이 둘째와 앞으로의 고등학교 삶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속으로 그런 말을 해도 사춘기인 둘째가 얼마나 받아들일까 싶었지만, 의외로 그 녀석은 진지하게 남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남편은 ‘성적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인생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데는 필수 요소’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둘째가 가고 싶은 고등학교’가 없어서 공부에 소홀히 했지만, 앞으로 고등학교 3년을 잘 보내면 원하는 선택을 마음껏 할 수 있으니 힘내라고도 덧붙였다.


 내가 보는 둘째는 ‘공부를 안 하고 유튜브에 게임만 하는 녀석’이지만, 남편이 보는 둘째는 ‘아직 원하는 고등학교가 없어서 그동안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아들’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둘째에게 잔소리 한번, 혼 한번 내지 않았나 보다. 둘째가 지금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방황 중이라고 생각했기에 말이다. 남편은 아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관점은 참 놀랍다. 사춘기 시절, 내가 부모님께 제일 힘들었던 점은 항상 ‘당신들의 기대’에 ‘내가’ 못 미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내가 어떤 일을 잘하는지, 뭘 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항상 특정한 부분에서의 ‘최고’, ‘일등’만 원하시는 부모님의 눈에는 난 항상 모자란 딸이었다. 그래도 중학교까지는 어떻게 ‘머리’만 믿고 나름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는 있었지만, 고등학교 때는 달랐다. 힘겨웠고, 어려웠고 그래서 자포자기하며 '적당히' 노력했다. 그 시절, 부모님의 기대에 눈치 보지 말고 오직 나 자신만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해 살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적어도 지금보다는 덜 돌아서 내 길을 찾아왔을 것 같다.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은 뭘까? 유명 일본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는 자신의 책, <이게 정말 나일까?>라는 책에서 ‘나’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의문들을 재치 있게 풀어놓았다.


 하기 싫은 것들에 지쳐 버린 주인공 ‘나’는 본인을 대신할 도우미 로봇을 산다. ‘나와 똑같이 행동해 달라’는 주인공의 말에 도우미 로봇은 자신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묻는다. 주인공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와 자신이 생각하는 ‘나’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그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구분 지어 말한다. 그렇게 조금씩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신은 매번 시시각각 변했고 과거의 행적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결론이 어떻게 됐을까? 로봇을 내세우려는 주인공의 계획은 결국 실패한다. 엄마에게 들키면서 말이다.


 힘겨웠던 사춘기에 이어 요즘은 제2의 사춘기 고민이다. 부쩍 ‘나’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한다. 얼마 전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과 단합 워크숍을 다녀오며 그런 생각들이 더 깊어진 듯싶다. 평상시에는 일 얘기만 했던 선생님들이 좀 더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되자 편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요즘 그들이 가진 고민, 생각들, 갈등들. 잘 알지 못했을 때는 모두가 완벽하게 자신의 생활을 잘 조절하며 사는 것만 같았는데, 막상 각자의 삶의 뚜껑을 열어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나처럼 일에 대한 고민과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털어놓는 분도 있고, 점점 약해지는 체력에 대한 걱정을 말하는 분도 있었다.


 그래도 요즘의 고민은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적어도 이 고민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나의 성찰들이니까 말이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 너무 멀리 돌아왔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앞으로 더 나를 생각하고 사랑하면 되니까 말이다.


 둘째, 너는 좋겠다. 지금 아빠가 저런 조언을 해 줄 수 있어서... 부럽다.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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