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다'의 김영하는 마흔이 넘어 보니 친구관계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성격에 맞추느라 너무 시간을 허비했다는 말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자신에게 더 집중하고 영혼을 풍요롭게 만들었다면 어땠을지 씁쓸하게 덧붙였다. 이처럼 하나둘씩 나이를 먹다 보면 새로운 것들이 조금씩 보인다. 지금까지 충실하게 잘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 안에 숨겨진 '눈먼 일'들이 느껴지면 좀 당황스럽다. 이 일들은 그동안 내가 일부러 외면했던 걸까? 아니면 지금에서야 깨닫는 걸까? 아마 김영하도 그런 사색 속에서 자신의 친구관계를 되씹어 봤을 것 같다.
10대 때의 친구는 험난한 사춘기 시절을 함께 겪는 동지였고 20대 때의 친구는 찬란한 청춘을 같이 보내는 벗이었다. 30대의 친구는 서로 달라진 환경 속에서 각자도생 하는 동료였고 40대의 친구는 현재 진행 중인 물음표이다. 자신의 삶에 지쳐서 연락이 두절된 친구도 있고 서로와의 연락과 관계 속에서 위로를 찾는 친구도 있다. 난 그들에게 어떤 친구일지 잘 모르겠다. 한가 지 분명한 것은 예전과는 다르게 마음을 다 내어줄 수도, 마음을 다 받아줄 수도 없다는 점이다. 특별히 뽀대 나는 삶을 살지 않지만 그렇다고 내 삶을 다 털어놓기도 이제는 창피하다. 각자 서로 모르는 삶의 굴곡이 생기는 나이, 지금은 그동안 힘겹게 살아온 나를 위로하기에도 바쁘다.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친구들과 잘 놀아라. 잘 지내라." 라며 내 교우관계를 신경 쓰셨다. 몇몇 친구들의 안부도 물어보시고 이런저런 관심도 많이 보여 주셨다. 이제 황혼에 접어드신 부모님은 다른 말씀을 하신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행복한 것이 최고라며 이런저런 인간관계에 힘들어하지 말라 신다. 지나면 다 부질없다며. 부모님은 이미 많은 친구들과 아픈 이별을 많이 하셨다. 만일 사람의 삶에도 단계가 있다면 처음 시작단계는 혼자서 힘든 삶을 살기 어려우니 가족과 친구를 주셨고, 마지막 단계는 혼자만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가끔은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깨달아가는 현실이 너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