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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언어에 귀 기울이기

by 하늘진주

<매일 30분 충전 글쓰기> 2021년 11월 2일 06:43-07:13

몸의 언어에 귀 기울이기


내 몸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 그다지 좋은 이야기를 안 할 것 같다. 지금 이렇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순간에도 내 몸이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워진다. 웹툰 원작의 tvN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에서는 사람 몸에는 이성 세포, 사랑 세포, 감정 세포, 깔끔 세포 등이 살고 있다는 설정을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 모았다. 그렇게 치면 사람 몸이 말할 수 있다는 설정도 한 번쯤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우선 컴퓨터 자판을 치고 있는 내 손, 아침을 눈을 떠서 전화 영어를 하고 화장실을 들른 후 손을 씻고 핸드크림을 바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키보드를 한 자 한 자 두드리고 있는 이 순간에도 손의 건조함이 심하게 느껴진다. 바르긴 발라야 하는데 핸드크림을 바른다면 키보드에 핸드크림의 꾸덕꾸덕한 흔적이 그대로 남겠지? 그리고 좀 있다 신랑의 아침을 차리려면 또 손을 씻어야 하니까 그냥 패스하자, 내 두뇌의 한 마디에 메마른 내 손이 노발대발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 이기적인 녀석, 너만 잘났냐?”

물론 두뇌도 이 점에서는 할 말이 많다. 건조한 손이야 내 망각 기능으로 시간이 지나면 다 까먹게 될 테고 어차피 아침을 차릴 건데 지금 바르나 좀 있다 모든 일이 다 끝나고 바르나 무슨 차이가 있어? 나중에 바르기만 하면 돼.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지, 항상 손은 생각이 없어. 언제든 바를 수 있는 로션이 뭐가 중요해? 지금은 뭘 해야 할지 우선순위를 세워야 한다고! 쿨쿨 자는 막내아들도 깨워야지, 스트레칭도 해야지, 주인님 신랑 아침도 차려야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생각 없는 손, “넌 너만 생각하냐?” 두뇌가 손을 야단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두뇌와 손의 싸움, 이 갈등은 항상 흐지부지 끝난다. 두뇌의 표현에 의하면 또 하나의 생각 없고 순둥순둥 한 ‘발’에 의해서. 도무지 말도 통하지 않고 힘든 내색도 하지 않는 발.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고, 아픔이 있어도 힘들어도 최대치까지 견디다 나중에 ‘퉁퉁 부은 얼굴’로 표현하는 발. 약삭빠른 두뇌도 이 무던하고 말수 적은 발에게는 아무 말도 못 한다. 아까도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잠자코 기다린다. 씩씩거리는 손이 기분을 풀고서 요리하길 기다리며. 그런 발을 보면 손은 심호흡한 후 삐죽거리며 두뇌를 쿡 찌른다. ‘흥, 그래 지금 뭘 하면 되는데?’

몸의 기관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을 해 봤다. 솔직히 몇십 년 동안 몸을 움직이고 숨을 쉬고 생활하고 있지만 내 몸을 살펴보는 일은 극히 드물다. 내가 내 몸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내 시야에 보이는 손, 발과 같은 몸의 한 부분, 거울 속에 비치는 몸, 사람들 시선에 비치는 나이다. 내가 나를 온전히 보기보다는 평생 남의 시선, ‘거울’이라는 도구로 투영되는 모습만 보았기에 정확하게 나를 바라보고 온전히 몸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 것이 낯설다. 이제는 남의 시선보다는 온전히 내 몸의 움직임에, 다리의 뻣뻣함에, 손의 건조함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성적인 두뇌와 새침한 손의 다툼도 즐기고 무던한 발도 쓰다듬으면서 좀 더 몸의 언어에 신경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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