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침은 항상 필리핀 강사와의 10분 전화 영어로 시작된다. 사회초년생의 첫 밥벌이로 수출업무를 담당하는 무역회사를 입사하며 시작한 10분 전화 영어니, 벌써 햇수로 20년이 넘었다. 처음의 시작은 단순했다. 주로 호주, 미국, 대만, 베트남 쪽의 업무를 담당하다 보니 당시 영어 회화는 필수였고, 혹시 내 부족한 영어로 잘못 알아들을까 봐 항상 긴장 상태였다. 새벽 시간을 쪼개어 영어학원들을 이리저리 전전하다 겨우 찾은 나의 안식처가 바로 전화 영어였다. 우선 시간과 거리의 부담이 없었다. 때때로 피곤함에 지쳐 시계 알람을 못 들을 때면 매시간 알아서 전화를 걸어 깨워주니 금상첨화였다. 그런 영어와의 동거는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계속 지속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몇 년을 살 때도 영어는 항상 내 곁을 쫓아다녔다. 사실 누구 하나 영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압박을 주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영어학원 비용을 아끼고 싶어서, 혹시 우리 아이들을 이중언어 능력자로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더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다. 익숙지 않은 어린이 영어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아이들의 영어 단어를 하나씩 익혔다. 큰 애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 둘째는 초등 2학년 때까지 집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매일 3시간 동안 집중시키라는 잠수네 영어, 뉴베리를 비롯한 수많은 영어 원서, caillou와 같은 영어 dvd 등 몇 년 동안 여러 가지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영어 노출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과연 도움이 됐을까? 지금은 우리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영어학원을 다닌다. 늦게 영어 학원을 보내든 일찍 보내든 아이들의 영어 학원비는 공평했다. 내 생각과 달리, 어린 시절의 영어 시간 노출이 아이들의 영어 프리패스를 제공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 수업 준비로 힘들었고 아이들과의 관계는 점점 나빠졌다. 게다가 시험의 부담이 없는 나이에는 엄마표 영어가 통했지만, 대입이 코 앞인 시기가 되니 자연스레 불안하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영어 수업을 그만두었다.
그렇게 서서히 아이들의 영어 공부가 내 손에서 떠나고 나니 거의 몇 년 동안은 자연스레 내 영어 공부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도 안 보던 영어 문법책, EBS 입트영, EBS easy writing, 문법 동영상, 영어 회화 스타디, 영어 원서 리딩 스타디 등등 코로나가 오기 전 몇 년 동안은 내 영어 공부의 황금기였다. 매주 1번 원어민 회화 수업을 들었고, 영어에 뜻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치열하게 영어 원서를 읽고 공부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오면서 그런 활동들도 자연스레 지지부진 없어져 버렸다.
현재, 영어 공부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오직 새벽에 진행하는 10분 전화 영어와 아침마다 틀어놓는 EBS 영어 방송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열심히 외웠던 영어 단어들, 문장들이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 경험을 한 이후 영어에서 거의 손을 놓아버렸다. 이만큼 했으면 지금쯤은 뭔가 성과를 이룰 때도 되었건만, 이 영어 공부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한 미션을 완수하면 또 다른 어렵고 힘든 미션이 기다리는 것처럼, 나에게 영어 공부는 그런 존재였다. 그런데도 좀처럼 버릴 수 없는 애증의 공부, 바로 영어였다.
오늘 아주 오랜만에 영어 스터디 멤버들과 만난다. 간간이 카톡으로만 연락을 주고받다 실제로 이렇게 만나는 것은 3년 만이다. 다들 영어는 어떻게 공부를 했을까? 설마 손에서 놓지는 않았겠지? 아마 그들은 계속 영어로 일을 했으니 영어 공부를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들 어떻게 변했을까? 두 근 반 세근반으로 모임 시간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