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도서관

by 하늘진주

즐겨 보는 tvN 예능 <유키즈 온 더 블록>에서는 매주 참여자들에게 공통 질문들을 하나씩 던진다. 그 질문들은 때로는 재미있고, 어떨 때는 생각을 많이 해야만 답이 떠오르는 생각거리들이다. 참여자들은 진행자인 유재석, 조세호가 던지는 공통 질문을 듣고 순발력을 발휘해 기발한 대답을 말하거나 고민에 빠져서 깊은 성찰에서 빚어진 답을 내놓는다. 그런 참여자들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도 그 질문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곤 했다. 그중 인상 깊은 공통 질문 중의 하나가 바로 ‘내 인생을 책이라고 한다면 첫 문장은?’이라는 질문이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삶의 첫 시작은 본인의 의지에 의해 시작되지 않는다. 지구 상의 생명은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부터 자연스레 존재했고, 이런 신비로운 현상은 옛사람들의 자유로운 스토리텔링 소재였다. 어떨 때는 신들의 사랑싸움으로, 혹은 영웅과 신들의 운명적인 이야기로 생명체의 하나하나의 발자취는 아름답게 구전되었다. 이 이야기들은 다시 종교로, 신화, 민화로 인간의 삶 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알 수 없는 무지의 세상을 향한 갈망은 더 많은 호기심과 탐구력을 낳았고, 인간의 끝없는 도전은 신을 향한 끝없는 ‘바벨탑’으로 표현되었다.


최근 발표된 김영하의 신작, <작별인사>에는 이런 인간의 삶과 존재에 대한 질문들이 각 등장인물들의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은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별안간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린 한 소년 철이와 생명에 대한 끝없는 인간의 호기심,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의 구분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저는 의식을 가진 존재, 특히 고통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존재들,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바다의 물고기든 하늘의 새든, 그리고 저를 포함한 모든 휴머노이드들은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무 고통도 없었을 테니까요.(p148)


-의식이 있는 존재는 돌멩이나 버섯과 달리 자기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요. 다른 존재의 고통에도 공감할 수 있고, 우주의 역사나 기원에 대해 알아갈 수 있어요. 자기에게 고통을 준 존재들을 용서할 수 있고, 그 고통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곰곰이 되새긴 다음, 그런 일이 자신에게든, 아니면 다른 누구에게든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어요.

(중략)


-의미 있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인간들은 의미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아까 고통의 의미라고 하셨지요? 고통에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인간들은 늘 고통에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아니, 더 나아가 고통이 없이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말하지요. 과연 그럴까요?(p152)


우리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우리는 어디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그 의미는 무엇일까? 수많은 철학자들과 현자들, 종교인들은 이 질문을 곱씹어 생각하며 수천 년 동안 고민해 왔다. 어떤 사람은 ‘삶이 곧 고통이다’라고 말했고, 또 다른 이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며 고통의 의미를 미화시키기도 했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오랜 경험을 통해 내놓는 대답들은 달랐고 때로는 그 정답들이 우리의 삶과는 맞지 않았다.


한 살 어린 동생은 삶이 너무 버거울 때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삶도 아닌데, 왜 이렇게 삶이 고달픈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모든 일에 대해 마음의 준비가 다 되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안 다음에 이 세상에 나왔다면 우리의 삶은 좀 달라질 수 있을까?


송경동 시인은 ‘삶이라는 도서관’이라는 시에서 삶을 이렇게 표현한다.


다소곳한 문장 하나 되어

천천히 걸어 나오는 저물녘 도서관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게 말하는 거구나

서가에 꽂힌 책들처럼 얌전히 닫힌 입


애써 밑줄도 쳐보지만

대출받은 책처럼 정해진 기한까지

성실히 읽고 깨끗이 반납한 뒤

조용히 돌아서는 일이 삶과 다름없음을


나만 외로웠던 건 아니었다는 위안

혼자 걸어 들어갔었는데

나올 땐 왠지 혼자인 것 같지 않은

도서관


송경동(1967~)


혼자 걸어가는 삶은 때로는 참 외롭다. 분명히 주변에 가족들, 친구들이 있지만 삶의 마지막은 혼자 가야만 하는 길이다. 사람들은 태초의 외로움과 알지 못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마음속에 깊이 품고 산다. 그래서 송경동 시인이 언급한 ‘나만 외로웠던 건 아니었다는 위안, 혼자 걸어 들어갔었는데, 나올 땐 왠지 혼자인 것 같지 않는 도서관’ 대목은 태초의 두려움을 안고 사는 인간을 향한 위로이다.


세상에는 수만 가지의 인생 도서관이 있다. 남들이 저마다 ‘이 길이야 말로 정답이다’라고 주장하는 인생의 길이 본인에게는 ‘터무니없는 오답’ 일 수도 있다. 지금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특별한 인생 책을 쓰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삶의 의미를 찾았는가? 난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제도 힘들게 고민했고 현재도 고민하고 앞으로도, 내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계속 고민할 것이다. ‘내 인생을 책이라고 한다면’ 첫 문장을 이렇게 적고 싶다.


“끝없이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던 사람, 그 사람의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라고.


당신의 인생 책은 첫 문장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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